신축·고가 단지 국힘 우세 … 뉴타운 들어선 동대문 ‘진보 아성’ 깰까

2년 뒤 … 한국외국어대 뒤편, 총 9100가구 신축 아파트촌으로
동대문구 주거 환경 변화와 더불어 민주당 우위 성향도 바뀔 듯
50대 이상 중산층 대거 입주 … 최근 선거서 국민의힘 지지 뚜렷

13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한국외국어대 뒤편에 들어서자 이문휘경뉴타운에 들어설 신축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 중인 아파트만 총 3곳. 낙후된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모여 있던 이곳이 2년 뒤면 총 9100가구의 신축 아파트촌으로 뒤바뀐다. 인근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과거 저가의 주택이 모여 있던 곳이고 주민 상당수는 세입자였다”며 “예상 분양가가 3.3㎡당 2900~3000만원이어서 원주민은 입주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이문1구역(래미안 라그란데) 주택 재개발 공사 현장. 총 3069가구로 2025년 1월 입주 예정이다. /임대철 기자

최근 동대문구에 불어온 변화는 주거 환경뿐 아니다. 고가의 신축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며 10년 가까이 더불어민주당 우위 성향을 보인 정치 지형도 뒤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20년 총선과 지난해 대선에선 고가의 신축 아파트 중심으로 국민의힘 후보의 득표율이 더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신축 아파트에 젊은 층이 유입돼 진보 성향이 강해진 경기 지역과는 다른 흐름이다. 서울의 신축 단지는 10억원 이상의 고가인 만큼 50대 이상의 중산층이 대거 입주하는 현상이 원인으로 꼽힌다.

표심 요동치는 '스윙보터' 지역

동대문구는 강북권에서 스윙보터 성격이 짙은 지역이다. 18대 국회까지 갑을 지역구 모두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차지하다 19대 국회부터는 민주당 계열 후보가 3선을 내리 성공했다. 현재 동대문구 갑·을 지역구 국회의원은 민주당 소속 안규백, 장경태 의원이다.

동대문구는 같은 구 안에서도 정치 성향이 세 부류로 나뉜다. 노령층 비중이 높은 청량리동은 보수 성향이 강한 반면,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밀집해 있고 호남 출신 유권자가 많은 장안동 용신동은 진보 성향이 짙다. 20대 청년 유권자가 모인 서울시립대 경희대 등 대학가(이문동)도 끼고 있다. 한 동대문 구의원은 “동별로 정치 성향이 제각각이고 스윙보터 지역이어서 선거 전 대형 이슈가 터지거나 바람이 불면 표심이 요동친다”고 전했다.

대선·지선 연이어 국힘 승리

그랬던 동대문구에서 최근 보수 지형이 조금씩 넓어지는 추세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를 장안1~2동을 제외한 동대문구 모든 동(洞)에서 앞섰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는 2010년 이후 13년 만에 국민의힘 후보(이필형 구청장)가 구청장에 당선됐다.

자료: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지역 정치권 인사들은 이문휘경뉴타운(1만7200가구)과 전농답십리뉴타운(1만3900가구) 입주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대선 결과를 동별로 보면, 청량리(10.5%)가 두 후보 간 득표차가 가장 컸다. 이어 이문1동(9.1%), 제기동(7.6%), 회기동(7.6%), 휘경1동(5.5%) 순이다. 동대문 갑 지역구에 있는 이문휘경뉴타운은 이문1동과 휘경1동에 걸쳐 있다. 7곳 중 2곳이 입주를 마쳤고 3곳이 공사 중이다.

이곳에서 19대 총선부터 세 차례 총선에 출마한 허용범 국민의힘 동대문갑 당협위원장은 “뉴타운 지역은 과거 노후 주택이 모여 있고 호남 출신 유권자가 많아 민주당 성향이 강했던 곳”이라며 “재개발로 7000~8000가구가 빠져나간 만큼 다음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신축·고가일수록 국힘 우세

아파트 개표 결과를 보면 이런 현상은 더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투표소가 설치된 아파트 19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고가의 신축 대단지 아파트일수록 국민의힘 후보 득표율이 높게 나타났다.

동대문을에서 국민의힘 후보였던 이혜훈 전 의원은 민주당 후보인 장경태 의원에게 6개 동에서 전부 패배했다. 다만 2013년 입주한 2397가구의 래미안 크레시티(전농1동 제5·7·8투표소)에서는 52.2%대 47.8%로 4.4%포인트 앞섰다. 2014년 준공된 래미안 위브(답십리1동 제4·5투표소)에서는 7.7%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답십리1동에서 8.3%포인트 차이로 패배한 것과 대조적이다. 두 아파트는 동대문구 대장주 단지로 래미안 위브는 2021년 전용84㎡가 15억원5000만원에 손바뀜했다.

이와 달리 1997년 입주한 우성그린(답십리2동 제4투표소)에서는 6.2%포인트로 졌다. 같은 동네에서도 고가의 신축 대단지에서 보수 후보 득표가 높게 나타났다는 의미다.

동대문갑에서는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인 허용범 당협위원장이 이문1동에서 후보인 안규백 민주당 의원에게 5.6% 차이로 졌지만, 이문 래미안2차(이문1동 제5투표소)에서 3.7%포인트 앞섰다. 2004년 입주한 구축 아파트지만 대형 평형 비중이 높아 과거부터 중산층 거주 비중이 높은 단지다.

김경진 국민의힘 동대문을 당협위원장은 “래미안 크레시티 등 지역구 내 대단지에서 국민의힘 지지세가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며 “장안현대홈타운 같은 구축 아파트라도 평수와 가격대가 높고 고령층 거주 비중이 높은 곳은 보수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경기 외곽 지역과 다른 '신축 효과'

통상 정치권에선 신축 단지가 들어설 경우 정치 지형이 야권에 유리해질 것이란 해석이 우세했다. 신규 아파트일수록 30~40대 젊은 유권자 유입이 늘어나는 곳이 많아서다. 신도시 개발 이후 정치 지형이 뒤바뀐 경기 김포시, 화성시 등 경기 외곽 지역이 대표적이다.

다만 서울 상당수 지역에서는 그 공식이 맞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5년 간 가파른 집값 상승으로 일부 강북 지역에서도 분양가가 10억원(전용 84㎡ 기준)을 넘는 신축 아파트가 속속 들어섰기 때문이다.

김경진 위원장은 “동대문 기준 신축 단지(전용 84㎡)가 최고 15억원까지 거래됐고, 이 정도 가격이면 최소한 50대 이상의 중산층일 확률이 크다”며 “신축 단지 입주가 여권에 악재라는 인식은 이 지역에서 맞지 않는다”고 했다.

"선거 직전까지 장담 어려워"

내년 4월 총선까지 동대문구에는 뉴타운 외에도 14개 단지의 5344가구가 입주를 했거나 앞두고 있다. 이중 전농동 청량리역롯데캐슬SKY-L65(1425가구), 용신동 청량리역한양수자인그라시엘(1152가구), 용신동 래미안엘리니티(1048가구) 등이 대표적이다.

이달 입주한 전농동 청량리역롯데캐슬SKY-L65(1425가구). 양길성 기자

여권에선 이들 단지 입주로 보수 성향이 보다 짙어질 것이란 해석과 함께 ‘우세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공존한다. 허용범 위원장은 “신축 단지의 경우 맞벌이 부부가 많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 이외에 만나기 힘들어 발로 뛰어도 전체 주민의 20%밖에 만나지 못한다”며 “민심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아무리 고가의 신축 단지가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서울에서 여당의 총선 결과는 대통령 지지율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지역 인사는 “아파트 만큼이나 신축 오피스텔과 원룸도 많이 생겼고, 그쪽에는 젊은 세대가 주로 거주하다 보니 이들 표심 잡는 게 관건”이라고 전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