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하늘로 떠나는 날까지 음악회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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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 지음
황국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396쪽|2만원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원고
"젊은 시절 나는 망나니 같았지만
늙고 병들면서 욕망에서 벗어나"
책에서 한국과 인연 계속 언급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 지음
황국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396쪽|2만원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원고
"젊은 시절 나는 망나니 같았지만
늙고 병들면서 욕망에서 벗어나"
책에서 한국과 인연 계속 언급
<나는 몇 번이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는 일본 잡지 ‘신초’에 지난해 7월부터 올 2월까지 류이치 사카모토가 연재한 글을 중심으로 출간됐다. 마지막 원고가 잡지에 게재된 다음달인 2023년 3월, 그는 직장암으로 별세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현대 음악계를 풍미한 천재의 예술에 대한 천착을 담은 철학서인 동시에, 10년 가까이 암과 싸우며 각종 작품을 탄생시킨 습작 노트이기도 하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에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노(老)대가의 투병기다.
책 표지의 낡은 피아노는 제작된 지 100년이 넘은 제품을 구입해 사카모토가 자신의 미국 뉴욕 자택 뜰에 놓아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이대로 어떻게 썩어갈 것인가. 인간이 어떻게 나이 먹어가야 하는가”를 느꼈다. 이처럼 책에선 다가오는 죽음을 응시하는 스산함이 시종 느껴진다. 책 제목은 자신이 음악을 맡은 영화 ‘마지막 사랑’의 대사에서 따왔다.
사카모토는 삶의 지평 끝까지 충실하게 채워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별세 두 달 전에 마지막 앨범 ‘12’를 내고, 중국 청두에서 열리는 설치 음악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었다.
한국과의 작지 않은 인연도 여러 차례 언급한다. 그는 백남준과 이우환 화백을 존경했고, 방탄소년단 슈가와의 인상적인 만남도 책에 남겼다. 말년에 ‘미스터 션샤인’ 등 한국 드라마에 빠진 사카모토는 장시간 수술의 후유증으로 섬망에 빠져 자신이 한국 지방도시에 있는 작은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사카모토는 22세에 이미 일본에서 인정받는 음악가가 됐고, 35세가 된 1987년엔 영화 ‘마지막 황제’ OST로 오스카상과 그래미상을 받았다. 그는 패션모델로 런웨이에 설 정도로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1983년 배우로 출연한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선 절정의 미모를 과시하던 데이비드 보위에게 뒤지지 않는다. 여기서 내놓은 영화 음악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는 가장 유명한 곡이 됐다.
그는 한평생을 천재로, 유명인으로 살았다. 하지만 책에서 사카모토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하며 “망나니 같았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환갑을 넘기고, 큰 병을 앓고, 속세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청빈한 상태가 됐기 때문에 비로소 자신이 올라야 할 산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겠죠. 큰 나선을 그리듯 빙 돌아 원점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사카모토는 예술에 대한 자신만의 식견도 보여준다.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해 전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자신은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것을 전복하는 것이 전위인데, 지금은 모두가 공유하는 ‘기존’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인 만큼 전위도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영화 개봉과 관련한 생각도 흥미롭다. “어차피 관객에게는 개봉이 언제가 되든 처음 보는 작품인데, 완성 후 얼른 세상에 내놓지 않으면 작품의 기세가 약해진다고 할까. 뭔가 시들해지고 맙니다. 마치 가지처럼요.”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2001년 국내에 출간된 사카모토의 피아노 악보집을 펼쳐 오랜만에 몇 곡을 연주해봤다. ‘BTTB(back to the basic)’ 앨범이 나온 직후 출간된 악보집인 만큼 대부분은 BTTB 수록곡으로 채워졌다.
노경목 기자/사진=코나미 지로
그러니까 이 책은 현대 음악계를 풍미한 천재의 예술에 대한 천착을 담은 철학서인 동시에, 10년 가까이 암과 싸우며 각종 작품을 탄생시킨 습작 노트이기도 하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에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노(老)대가의 투병기다.
책 표지의 낡은 피아노는 제작된 지 100년이 넘은 제품을 구입해 사카모토가 자신의 미국 뉴욕 자택 뜰에 놓아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이대로 어떻게 썩어갈 것인가. 인간이 어떻게 나이 먹어가야 하는가”를 느꼈다. 이처럼 책에선 다가오는 죽음을 응시하는 스산함이 시종 느껴진다. 책 제목은 자신이 음악을 맡은 영화 ‘마지막 사랑’의 대사에서 따왔다.
사카모토는 삶의 지평 끝까지 충실하게 채워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별세 두 달 전에 마지막 앨범 ‘12’를 내고, 중국 청두에서 열리는 설치 음악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었다.
한국과의 작지 않은 인연도 여러 차례 언급한다. 그는 백남준과 이우환 화백을 존경했고, 방탄소년단 슈가와의 인상적인 만남도 책에 남겼다. 말년에 ‘미스터 션샤인’ 등 한국 드라마에 빠진 사카모토는 장시간 수술의 후유증으로 섬망에 빠져 자신이 한국 지방도시에 있는 작은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사카모토는 22세에 이미 일본에서 인정받는 음악가가 됐고, 35세가 된 1987년엔 영화 ‘마지막 황제’ OST로 오스카상과 그래미상을 받았다. 그는 패션모델로 런웨이에 설 정도로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1983년 배우로 출연한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선 절정의 미모를 과시하던 데이비드 보위에게 뒤지지 않는다. 여기서 내놓은 영화 음악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는 가장 유명한 곡이 됐다.
그는 한평생을 천재로, 유명인으로 살았다. 하지만 책에서 사카모토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하며 “망나니 같았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환갑을 넘기고, 큰 병을 앓고, 속세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청빈한 상태가 됐기 때문에 비로소 자신이 올라야 할 산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겠죠. 큰 나선을 그리듯 빙 돌아 원점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사카모토는 예술에 대한 자신만의 식견도 보여준다.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해 전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자신은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것을 전복하는 것이 전위인데, 지금은 모두가 공유하는 ‘기존’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인 만큼 전위도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영화 개봉과 관련한 생각도 흥미롭다. “어차피 관객에게는 개봉이 언제가 되든 처음 보는 작품인데, 완성 후 얼른 세상에 내놓지 않으면 작품의 기세가 약해진다고 할까. 뭔가 시들해지고 맙니다. 마치 가지처럼요.”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2001년 국내에 출간된 사카모토의 피아노 악보집을 펼쳐 오랜만에 몇 곡을 연주해봤다. ‘BTTB(back to the basic)’ 앨범이 나온 직후 출간된 악보집인 만큼 대부분은 BTTB 수록곡으로 채워졌다.
노경목 기자/사진=코나미 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