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줌인센터’는 이 지역의 창업자, 최고경영자(CEO), 엔지니어, 직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인물을 ‘줌인(zoom in)’해 그들의 성공, 좌절, 극복과정을 들여다보고 지역의 ‘주민’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앞으로 줌인센터에 가능한 많은 주민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사진=최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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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레드우드에 본사를 둔 머신러닝 기반 솔루션 기업 몰로코에 따라붙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실리콘밸리 한국인 창업 1호’, ‘유니콘 기업’ 등입니다. ‘머신러닝 기반 솔루션’이라는 말이 낯설 수도 있는데요. 이 회사는 빅데이터를 분석해 고객사가 효율적으로 광고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개별 사용자의 특성을 파악한 뒤 맞춤형 광고를 노출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입니다.

몰로코는 최근 12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고, 지난해 연간 2억달러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몸값’도 치솟았습니다. 지난달 미국 피델리티와 싱가포르 글로벌 투자사 EDBI등이 2차 주식 공모를 통해 몰로코 주주로 참여했습니다. 피델리티는 시리즈A 투자자인 한국투자파트너스(KIP)로부터 몰로코 주식을 인수했습니다. 이번 거래 과정에서 몰로코의 기업가치는 20억 달러(약 2조6400억) 이상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는 2021년 시리즈C 평가액이었던 15억 달러(약 1조9800억 원)보다 40% 이상 증가한 수치입니다.
사진=최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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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몰로코의 안익진 대표를 레드우드 본사에서 만났습니다. 안 대표는 2004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2006년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석사, 2008년 UC샌디에고대에서 컴퓨터과학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이후 유튜브와 구글 본사에서 근무한 후 실리콘밸리에서 2013년 몰로코를 설립했습니다. 몰로코는 현재 600여명이 전 세계 10개 지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13년 몰로코를 창업한 뒤 10년째 회사를 이끌어오고 있는 안 대표는 인터뷰 동안 회사의 비전은 물론 창업자들을 위한 조언까지 아낌없이 설명해줬습니다. 실리콘밸리의 ‘Pay it forward’ 정신을 다시 한번 실감할 기회였습니다. 안 대표와 나눈 대화들을 ‘10문 10답’으로 정리해봤습니다. ‘실리콘밸리 줌인센터’의 첫 번째 주민입니다.

Q. 머신러닝 기반 솔루션이 왜 중요한가요?

A. 세계 최초의 비디오 셰어링 사이트는 ‘판도라TV’일 것입니다. 그런데 후발주자인 유튜브는 지금 구글에서 가장 빨리 크는 비즈니스 부문 중 하나입니다. 유튜브를 제외한 소위 말해서 UGC, UCC 사이트들은 수익화에 실패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광고 영역에서의 경험이 없는 분들이 보면 광고라는 건 ‘그냥 비디오 광고를 띄우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요. 사실은 유저들의 행동과 취향 등을 보고 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광고를 띄우느냐 안 띄우느냐에 따라 현격한 차이가 납니다.

이렇게 되면 해당 사이트가 광고 플랫폼으로서 위상과 영향력이 강해집니다. 그래서 더 많은 기업이 그 사이트에 광고를 실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광고수익 극대화입니다.
아마존의 광고에서 매출이 한 해 40조원 정도 합니다. 미국에서 3대 광고 업체가 됐습니다. 바꿔 말하면 e커머스 세계에 존재하는 많은 회사가 이와 같은 광고 수익화를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분석과 매칭 작업은 사람이 일일이 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머신러닝으로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이죠.


Q. 몰로코의 미래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계십니까?

A.. 광고 분야를 넘어 비즈니스 솔루션 전반으로 영역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중장기적으로 모든 비즈니스를 도울 수 있는 머신러닝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창업 전 구글에서 일하며 처음으로 유튜브 광고에 머신러닝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이후 창업의 길로 들어서 광고 수익 극대화 부문에 집요하게 파고든 결과 회사가 10년째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3~5년 후 광고 영역에서 머신러닝 적용 범위 확대한 뒤 이후 영역을 비즈니스 솔루션 전체로 확장해 나갈 예정입니다. ‘오퍼레이셔널 머신러닝 기술’을 통해 보다 많은 영역으로 대중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퍼레이셔널 머신러닝 기술은 회사의 비즈니스를 실시간으로 최적화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어떤 특정 시점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쌓이는 데이터를 계속 추적합니다. 이 과정에서 머신러닝 기반 실시간 경영 최적화가 이뤄지는 것이죠.

Q. 시리즈 A, B, C 때마다 투자자들이 중점적으로 보는 것들이 어떻게 다른가요?
A. 시리즈 A 때는 팀과 기술력을 보는 것 같습니다. 창업 아이템을 실현할 기술력과 인적 자원을 가졌는지를 판별하는 것이죠. B의 경우 프러덕트 마케팅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시장과 제품을 찾았는지 보는 것이죠. 이게 적절하다고 판단할 경우 투자를 하면 사업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죠. C 때는 건실하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지, 기술력과 경영능력이 성숙하고 있는지는 보는 것 같습니다.
사진=최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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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CEO 입장에서 시리즈 A, B, C 그리고 이번 신규 투자 때마다 버려야 했던 것, 새로 함양해야 했던 건 어떤 게 있었나요.

A. 시리즈A 때 회사를 가족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후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B는 부족 혹은 타운, C는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규모가 작을 때는 1대1 대화를 많이 하죠. 그러다가 타운 정도 때가 되면 이제 타운홀 미팅을 하게 됩니다. 이후 국가 사이즈가 되면 소위 말해서 공표하게 됩니다. 규모가 커질수록 커뮤니케이션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건 계속해서 꾸준하게 학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변화를 성장의 기회로 보고 학습하는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저희가 즐겨 쓰는 용어로 ‘Embrace the chaos(혼돈을 받아들인다)’가 있는데요, 변화의 고통, 성장통을 인정하고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Q. 함께 오래갈 수 있는 직원, 투자자를 판별하는 노하우가 있는지요.

A. 직원의 경우 스타트업이 성장할 때 성장통이 상당합니다. 많은 과제를 직면하게 되는데요. 새로운 것들을 스스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하고, 학습의지가 있는 사람을 선호합니다.
투자자의 경우 초반에 투자한 뒤 기술이 빌드업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는, 인내심 갖고 기다려주는 투자자가 굉장히 감사했습니다. 기술을 믿고 기다려준 회사인 거죠. 그런 의미에서 시리즈A 투자자인 한국투자파트너스(KIP)에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Q. 얕고 넓은 네크워크 vs 깊고 좁은 네트워크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A. 후자를 택하겠습니다. 제 MBTI가 INTJ입니다. 저는 대학 다닐 때는 굉장히 사교적이고 프레젠테이션도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미국에 와보니 상황이 다르더군요. 한국에서 상당히 외향적인 분들도 미국에선 내성적인 편입니다. (웃음) 제 성격을 단기간에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만의 스타일을 구축해나가는 것이죠. 점점 회사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요. 그리고 저희가 하는 비즈니스에는 이런 성격이 잘 맞는 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Q. 사업을 운영하면서 어떤 법률리스크에 직면했었고, 또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A. 큰 법률리스크를 겪어보지 않았습니다. 예전부터 앞으로 회사가 가고자 하는 방향, 퍼블릭 컴퍼니에 대한 그림을 그려왔는데요. 또 다양한 국가에서 오피스를 운영하다 보니 투명하고, 심플한 운영방식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회사 운영을 단순화했습니다.
그리고 회사 운영과 관련해 로펌들이 컴플라이언스를 강조했는데요. 이와 같은 조언도 잘 받아들여서인지 별다른 법률리스크가 없습니다.

Q. 나스닥 상장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현재 진행상황은 어떻습니까?

A. 아직은 내부적으로 준비 중입니다. 올해는 사업에 더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사업도 있는 만큼 여기서 성과를 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몰로코는 지난 2월 스트리밍‧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를 겨냥한 수익화 솔루션을 내놨습니다. 스트리밍 비디오의 경우 TV 광고 방식과는 다른 정교한 설계를 해야 하는데요. 이로 인해 구글, 메타플랫폼스 등 고도의 기술력을 갖춘 소수 기업이 디지털 광고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몰로코의 신규 솔루션은 머신러닝 기술로 TV 광고보다 더 광범위한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몰로코는 2년 전부터는 e커머스 업체들의 수익성 향상을 지원하는 리테일미디어플랫폼(RMP)도 내놨습니다. 리테일 미디어란 구매 시점의 고객들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 앱이나 웹사이트에 게재되는 광고를 말합니다. 한국의 경우 ‘오늘의집’을 운영하는 버킷플레이스를 비롯해 배달업체 등의 광고 수익모델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국내 대형 홈쇼핑 업체와 중고거래 업체도 저희 고객사입니다. 이런 사업들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사진=최진석 특파원
사진=최진석 특파원
Q. 창업 여부를 고민하는 이들이 가장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사안을 꼽는다면?

A. 사람마다 동기부여 방식은 다를 수 있는데요. 적어도 I타입 분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은 사실 굉장히 원론적인 얘기입니다. 교과서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사실 실제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적어도 이 일을 10년은 할 수 있는가’라고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업이 잘될수록 오래 해야 합니다. 따라서 일이 잘되든 안되든 즐거워야 합니다. 행복해야 하죠. 정말 좋아하는 영역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사업은 어떻게 보면 도박과 같습니다. 성공할 수도 있고, 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죠. 그런데 만약 게임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 게임을 창업했어요. 아마 사람은 회사가 잘 안된다 해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성공여부는 알 수 없지만 선택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바로 좋은 팀입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 인생의 가장 프라임 타임에 많은 부분이 여기에 투입될 수 있는데요. 그렇기에 더욱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말이죠.

Q. 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요?

A. 너무 많이 고민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다행히도 실리콘밸리의 경우 예전에 비해서 창업이 잘 안됐을 때의 사회적인 코스트는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예전에 2000년대 닷컴버블 시대에 적지 않은 이들이 빚을 내서 창업했습니다. 성공하면 대박인데, 실패하면 그냥 진짜 길거리에 나앉았거든요. 지금은 그 정도까지의 리스크를 지지 않아도 창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고 봅니다.

또한 많은 분이 커리어 전환, 스펙 쌓기 등을 위해 해외 연수 가고, 대학원에도 진학하잖아요. 그럼 보통 2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요. 창업도 이와 비슷한 측면에서 나 자신이 굉장히 집중해서 뭔가 시도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창업한 뒤에는 먼 미래를 보면서, 다음 스텝도 동시에 고민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가끔 축구를 예로 들면서 이런 얘기를 하는데요. 축구의 경우 시야를 넓히려면 고개를 들어야 하고, 공을 제대로 차려면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하는데요. 축구 실력자들이 하는 것을 보면 시선을 바닥과 정면의 중간 정도를 봅니다. 미래도 보지만 공도 보는 것이죠. 저는 사업을 할 때 이런 부분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리콘밸리=최진석 특파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