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원자력본부 전경. 오른쪽이 1호기, 왼쪽이 2호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원자력본부 전경. 오른쪽이 1호기, 왼쪽이 2호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지난 12일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원전 1, 2호기. 원전에 가까워지자 바다를 배경으로 커다란 콘크리트 돔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가동된 국내 첫 상업 원전, 2호기는 1983년 가동된 국내 세 번째 상업 원전이다. 두 원전은 해수처리시설, 터빈실 등을 공유하는 ‘쌍둥이’다. 외형은 물론 내부 설비도 닮았다.

하지만 운명은 정반대다. 1호기는 2017년 6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탈핵시대를 열겠다며 최초 설계수명(40년) 만료와 함께 영구 정지를 선언한 뒤 해체를 기다리고 있다.

반면 2호기는 지난해 최초 설계수명이 만료됐지만 원전 정상화를 내건 윤석열 정부가 설계수명 10년 연장을 신청하면서 계속운전을 준비 중이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지만 정부 정책에 따라 한쪽은 폐기돼 고철로 전락할 운명인 반면 다른 한쪽은 발전을 계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리 1호기 내부는 작업자 한 명 없이 고요했다. 1호기 설비 곳곳엔 ‘영구정지 관련 미사용기기’라는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다. 수년째 사람 손을 타지 못한 설비들이 깨끗하게 유지돼 있는 게 마치 박물관의 전시품 같은 느낌을 줬다.

고리 1호기는 2021년 해체 승인을 신청했다. 인허가 심사가 끝나면 해체 공사가 시작된다. 고리 1호기는 가동 중지 전 매년 477만㎿h의 전기를 생산했다. 부산시 전 가정에서 쓰는 전기의 106%에 해당하는 발전량이다. 지금은 그만큼의 전기를 다른 에너지원으로 메워야 하는 상황이다. 모상영 고리1발전소장은 “오늘도 1호기를 지나왔는데 당장이라도 가동할 수 있는 시설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고리 2호기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1호기에서 패널 문만 열면 2호기로 연결되는데, 2호기 내부는 수십 명의 작업자로 분주했다. 고리 2호기도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1호기와 달리 ‘폐쇄’를 피했고, 정부 승인을 거쳐 2025년 6월 재가동될 예정이다.

국내에는 설계수명이 만료됐거나 만료를 앞둔 원전이 적지 않다. 고리 2호기를 포함해 고리 3·4호기, 한빛 1·2호기 등 총 10기의 설계수명이 2030년 이전에 만료된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이들 원전을 모두 폐쇄하고 액화천연가스(LNG)로 대신할 경우 10년간 총 107조6000억원의 비용이 더 필요하다. 설계수명 연장을 통해 이만큼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설계수명 연장이 위험한 원전을 계속 가동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설계수명은 운영허가 당시 안전성 평가를 위해 가정한 최소한의 기간일 뿐이며 안전 문제만 없다면 수명 연장을 통해 원전을 계속 가동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수원은 설명했다. 실제 고리 1호기와 같은 모델로 설계수명이 40년이던 미국의 포인트비치 원전은 1970년 운전을 시작했지만 두 차례 수명 연장을 통해 총 80년간 운영될 예정이다.

‘고리 1호기를 이제라도 살릴 순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웅 고리1발전소 안전관리실장은 “이미 너무 멀리 왔다”고 했다. 한수원은 고리 1호기를 예정대로 해체해 방사성 물질을 완전히 제거하고, 고리 1호기 부지도 산업부지로 쓸 수 있을 만큼 깨끗이 돌려놓는 게 목표다. 고리 1호기 해체 비용은 약 8100억원으로 추산된다. 한수원은 고리 1호기 해체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원전 해체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부산=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