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준·서경환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가 종료되면서 사법부 수뇌부 교체 작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대법관 두 명이 이달 교체되고 두 달 뒤엔 김명수 대법원장이 물러난다. 진보 성향 대법관이 과반이던 대법원 구성이 바뀌면서 법리 다툼이 첨예한 노동사건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가 내년 이후로 늦춰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산업계에선 대법원의 인적 구성 변화가 친노동 성향 판결 감소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대법관 교체기…'친노동 판결' 바뀌나

진보파 과반시대 종료 눈앞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구성하는 대법관 13명(대법원장 포함) 중 진보 대법관은 7명이다. 김 대법원장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대법원은 그동안 상징성이 큰 노동사건을 전원합의체에 올려 진보 성향 판결을 이끌어 냈다. 지난달 “불법파업에 참여한 노동조합원에게 기업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는 조합원별로 책임 정도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판결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산업계에선 이 판결 당사자인 현대자동차처럼 생산라인을 점거당해 손해를 봤더라도 쟁의행위를 한 조합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훨씬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대법원이 지난 5월 “근로자 과반의 동의 없이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바꿀 수 없다”고 판결한 것도 비슷한 사례다. 법원은 이 판결 전까지 45년간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 없이 이뤄진 취업규칙 변경이라도 사회 통념상 합리성을 갖췄다면 효력을 인정해왔다. 하지만 오랫동안 유지된 판례가 깨지며 기업 경영진은 작성·변경권이 있음에도 취업규칙을 바꾸기 어려워졌다. 작년 5월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만으로 직원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 역시 노사 간 소송전에 불을 댕긴 사례다.

18일 대법관 두 명이 교체되면 대법원의 이 같은 움직임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진보 성향인 박정화 대법관과 중도 성향인 조재연 대법관 대신 중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와 서 후보자가 합류하기 때문이다. 9월 말 퇴임을 앞둔 김 대법원장의 후임까지 중도 또는 보수 성향 인물로 결정되면 진보 대법관 수는 5명으로 줄어든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퇴임을 앞둔 김 대법원장이 또 한 번 전원합의체를 꾸려 민감한 사건을 판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란봉투법’ 유사 사건 줄줄이 연기될 듯

현재 대법원에 올라와 있는 노동사건 중 집중 조명받는 사건으로는 HD현대중공업이 하청 근로자들과 단체교섭할 의무가 있느냐를 두고 금속노조와 다투는 소송이 꼽힌다. 1·2심은 회사가 승소했는데 상고심 결론은 4년7개월째 나오지 않고 있다. 대법원이 원심을 뒤집는 판결을 내놓으면 원청은 하청 근로자들의 연이은 교섭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뿐만 아니라 하청 노조가 원청 사업장에서 쟁의를 벌이는 것도 허용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 소송의 쟁점은 “사용자의 개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한다”는 노란봉투법 제2조 내용과 비슷하다.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만한 사건이기 때문에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경영성과급이 평균임금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근로자들과 벌이고 있는 퇴직금 청구소송도 주목받는 사건이다. 일단 두 회사 모두 원심에서 회사 측이 승소했지만 같은 쟁점을 두고 벌어진 다른 하급심 사건 중에서 근로자 측이 이긴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에 최종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 재직 중인 근로자만 받도록 규정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인지를 두고 세아베스틸과 근로자들이 다투는 소송 역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진보 성향 대법관의 과반 구성이 종료된 데다 새 대법관들이 오자마자 민감한 사건을 판단하기도 어렵다”며 “올해 안에 전원합의체를 꾸려 첨예한 노동 사안을 판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경진/김진성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