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발로 뛴 경찰 정보통…윤석열 정부 '실세'로 떠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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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감·경정 승진 시험도 전국 수석 차지한 엘리트
尹 검사 시절에 만나 인연 … 2016년 국회 입성
무소속 출마 경험 살려 내년 공천관리위 부위원장 활동
2016년 20대 총선에서 강원 동해·삼척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입당해 21대에도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초선 시절에는 국방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등에 소속됐다. 재선인 21대 국회에선 산자위 당 간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으로 분류된다. 국민의힘 입당부터 대선 경선과 당선 이후까지 윤석열 대통령과 밀접하게 일했다. 지난 3월에는 김기현 신임 국민의힘 당 대표에 의해 당 사무총장 자리에 올랐다. 사무총장은 조직과 자금 등 당의 실무를 책임진다. 내년 총선 공천 실무도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맡게 된다. 사무총장은 원내대표, 정책위 의장과 함께 당 3역 중 하나로 꼽힌다.
이철규 사무총장의 탄탄한 정보력은 경찰 시절부터 널리 인정받은 능력이다. 경찰 시절의 그를 소개하는 기사들은 '경찰 내 대표적인 정보통으로 꼽힌다'고 전했다.
종로경찰서 정보과장 시절이었던 1998년, 그는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발탁되며 주목받았다. 당시 인수위는 대부분 경무관급이 파견되는데 두 계급 아래인 그가 발탁되며 화제가 됐다. 강원도 출신으로는 최초로 경찰청 정보국장을 역임한 것도 그의 능력을 뒷받침한다는 평가다. 경찰청 정보국장은 '모든 정보'의 길목에 서 있는 자리다. 시골 마을부터 국회까지 경찰청 정보국은 동(洞) 단위의 지역정보부터 정당·기업·공항·노동·시민단체·언론사 등 사회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정보를 취합한다. 정보국장은 이렇게 수집한 정보를 받아 대통령실에 보고한다. 경찰 조직에서 '요직 중 요직'으로 손꼽히는 자리다.
그는 2015년 국회의원 예비후보를 등록하며 밝힌 출마의 변에서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 사무총장은 "제가 34년간 경찰조직에서 열정을 바쳐 주로 뛰었던 분야는 '정보 분야'였습니다"며 "정보라는 게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서 그치는 게 절대 아니다. 빠르고 정확해야 하고 종합적인 판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썼다.
●앨빈 토플러도 설득한 ‘협상의 제왕’
이 사무총장을 주변에서 지켜본 인물들은 그가 '탁월한 협상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말한다. 정보국장으로 일하며 쌓은 두터운 신뢰와 탄탄한 인맥, 그리고 살뜰한 협상으로 성사되지 못할 일들을 해결해냈다는 설명이다.
2005년 9월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와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과의 만남이 일례다. 토플러는 허 당시 청장과 한국의 공항 보안 검색에 대해 면담을 진행했는데, 이를 성사 시킨 인물이 이 사무총장이라는 것이다. 당시 토플러는 산업자원부 주최로 열리는 ‘산업혁신 포럼 2005’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방문했었다. 워낙 빡빡하게 일정을 짜두었기 때문에 8일간의 일정에서 비는 시간은 없었다. 당초 경찰청 방문도 예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청 외사1과 과장을 맡고 있었던 이 사무총장은 불가능해 보이던 이 면담을 성공시켰다. 인적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협상력을 십분 발휘해 토플러의 일정을 변경토록 한 것이다. 토플러 측 관계자와 인연이 있던 이 사무총장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토플러 측에게 인천공항까지 빠르게 갈 수 있도록 하는 방편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파 없는 정치인에서 윤핵관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로, 대표적인 윤핵관으로 꼽힌다. 이 사무총장은 경찰 시절부터 윤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무총장은 1998년 7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양평경찰서장을 맡았다. 윤 대통령은 검사로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에서 1997년 2월부터 1999년 2월까지 일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한 이후 그를 국민의힘에 영입했다. 경선부터 시작해 당선 이후까지 함께했다. 국민의힘 대통령 경선 때는 캠프 조직본부장을,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일 땐 중앙선거 대책위원회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다.
당선 이후에는 당선인 총괄 보좌역에 임명됐다.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의 공부 모임 '국민 공감'의 총괄간사를 맡으며 윤핵관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지난해 8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친윤계 핵심'이라며 그를 실명 비판하기도 했다. '친윤계' 이전에는 어느 계파에도 소속돼 있지 않은 정치인으로 분류됐다. 2016년 3월에는 '진박(진짜 친박근혜)'이라는 점을 내세웠지만, 결국엔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같은 해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에 관련해서는 "지역민들의 의견을 따르겠다"며 탄핵소추안에 찬성 의견을 던졌다.
●경찰주의자
“검사가 신(神)은 아니잖아요. 경찰 수사권 독립도 중요하지만, 검찰의 수사권과 공소권을 분리해야 이런 일이 또 벌어지는 걸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이철규, 2013년 11월 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윤핵관'으로 분류되지만, 경찰 조직 내에서 수사권 독립을 위해 전면에 나선 인물이다. 경찰 재직 시절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처음으로 거론했다. 1998년 인수위에 파견됐던 시절 그는 경찰 수사권 독립을 김대중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사무총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1990년대 경찰 수사는 일일이 검찰의 지휘를 받는 ‘영혼 없는 수사’였다”며 “고성이 오갈 정도로 부딪히고 인수위원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하면서 수사권 독립을 공론화했다”고 회상했다.
2005년에도 허 당시 청장과 함께 경찰 수사권 독립을 위해 전면에 나섰다. 후에도 이를 자랑스럽게 회고했다. 2013년 퇴임사에서 그는 “1998년 대통령직인수위에 파견돼 경찰 수사권 독립을 공론화한 데 대해 무한한 긍지를 느끼고 있으며, 2005년 허준영 전 경찰청장과 함께 수사구조 개혁에 동참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고 했다.
검찰을 '적폐 권력'이라고 칭하며 대립각을 세운 인물이기도 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면 인권 침해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데 인권 침해는 권력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으로 역대 적폐 모두 기득권을 가진 검찰에 의해 쌓인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검찰과 날을 세웠던 이 사무총장이 검사 출신 대통령과 어떻게 가까울 수 있냐고 지적도 나온다. 이를 두고 당 관계자들은 "정무적인 판단이라고도 볼 수 있고 당시 이 사무총장은 경찰이었기에 이익을 대변한다는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경찰 엘리트'의 길을 걷던 이 사무총장의 경찰복을 벗긴 것은 검찰 수사였다. 경찰로 재직하던 시절 두 차례 구속됐고, 이후 승진 인사에서 제외됐다.
경기 안산경찰서장 재임 시절이었던 2003년, 그는 2001년 뇌물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구속됐고 직위에서 해제됐다. 관내 업체로부터 20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2005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내며 경찰에 복직했다. 이후 충북경찰청장과 경찰청 정보국장을 거쳐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으로 꼽히는 경기경찰청장까지 올랐다. 하지만 '검찰과의 악연'은 끝나지 않았다. 2012년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구속됐다. 제일제축은행이 경찰 수사를 받던 당시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수천만원 안팎의 금품과 수사 무마 청탁을 받았다는 혐의다. 당시 경찰청은 현직 지방청장으로서 업무 수행이 어렵다고 보고 그를 대기발령 하기도 했다. 이 사무총장은 이 시기를 '참담하다'고 곱씹으며 전문기관에서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2013년 10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으며 복직했지만, 그해 치안정감 승진·보직 인사에서 제외됐다. 2013년 12월 10일,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당시 경찰 수장이었던 이성한 전 경찰청장은 경찰 간부 후보생 2기 후배였다.
후에 이 사무총장은 이러한 '풍파'가 국회의원에 도전하게 된 계기였다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평범하게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면 선거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갖은 풍파를 겪고 나니 우리 사회에 내재돼 있는 모순을 인식하게 됐고 직접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무소속 출마
이 사무총장이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시기는 2015년이다. "고향에 헌신하겠다"는 출마의 변을 밝힌 그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삼척원전 반대와 복선전철의 동해·삼척 연장 공약 등 지역 밀착형 공약을 내세우며 표밭을 갈았다.
하지만 선거를 한 달 앞두고 '기호 1번'을 달고 출마하지 못할 위기에 몰렸다. 강원도 동해 삼척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컷오프(공천배제)됐기 때문이다. 법조인 출신인 박성덕 당시 새누리당 후보에 밀렸다. 당시 이 사무총장은 "지지율 1위 후보를 경선에서 배제하는 이런 공천이 어디 있느냐"며 "무엇이 상향식 공천인가"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이 사무총장은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된다. 선거를 앞두고 "투표로 이철규를 지켜주세요"라고 호소하기도 했던 그는 결국 20대 총선에서 48.5% 득표율로 2위인 박성덕 후보(34.1%)를 제쳤다. 강원도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인물은 그가 유일했다. 당선 2개월 뒤인 그해 6월,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주호영, 장제원 의원 등과 함께 새누리당에 복당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경험이 있기에 그는 특히 '공천의 공정성'을 강조한다.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이 사무총장은 "(당시)인센티브나 특혜를 바란 게 아니라 그저 공정한 기회를 원했는데 그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니 얼마나 서운했겠나"며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이 얼마나 서운한지 잘 알기 때문에 공천 과정에서 나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데 방점을 두려 한다”고 했다. 그가 현재 맡고 있는 당 사무총장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구성되는 공천관리위원회에 당연직 부위원장으로 참여한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
尹 검사 시절에 만나 인연 … 2016년 국회 입성
무소속 출마 경험 살려 내년 공천관리위 부위원장 활동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강원 동해, 삼척, 태백, 정선을 지역구로 둔 경찰 출신의 재선 정치인이다. 1981년 경찰 간부후보(29기)를 수석 입학하고 수석 졸업했다. 경감 및 경정 승진 시험에서도 전국 수석을 차지한 '엘리트'다. 경기 안산경찰서장(총경), 경찰청 외사1과장(총경), 강원지방경찰청 차장(경무관), 충북지방경찰청장(치안감), 경찰청 정보국장(치안감), 경기지방경찰청장(치안정감)을 역임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강원 동해·삼척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입당해 21대에도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초선 시절에는 국방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등에 소속됐다. 재선인 21대 국회에선 산자위 당 간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으로 분류된다. 국민의힘 입당부터 대선 경선과 당선 이후까지 윤석열 대통령과 밀접하게 일했다. 지난 3월에는 김기현 신임 국민의힘 당 대표에 의해 당 사무총장 자리에 올랐다. 사무총장은 조직과 자금 등 당의 실무를 책임진다. 내년 총선 공천 실무도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맡게 된다. 사무총장은 원내대표, 정책위 의장과 함께 당 3역 중 하나로 꼽힌다.
이철규를 설명하는 키워드
●34년 경력의 ‘정보통’이철규 사무총장의 탄탄한 정보력은 경찰 시절부터 널리 인정받은 능력이다. 경찰 시절의 그를 소개하는 기사들은 '경찰 내 대표적인 정보통으로 꼽힌다'고 전했다.
종로경찰서 정보과장 시절이었던 1998년, 그는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발탁되며 주목받았다. 당시 인수위는 대부분 경무관급이 파견되는데 두 계급 아래인 그가 발탁되며 화제가 됐다. 강원도 출신으로는 최초로 경찰청 정보국장을 역임한 것도 그의 능력을 뒷받침한다는 평가다. 경찰청 정보국장은 '모든 정보'의 길목에 서 있는 자리다. 시골 마을부터 국회까지 경찰청 정보국은 동(洞) 단위의 지역정보부터 정당·기업·공항·노동·시민단체·언론사 등 사회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정보를 취합한다. 정보국장은 이렇게 수집한 정보를 받아 대통령실에 보고한다. 경찰 조직에서 '요직 중 요직'으로 손꼽히는 자리다.
그는 2015년 국회의원 예비후보를 등록하며 밝힌 출마의 변에서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 사무총장은 "제가 34년간 경찰조직에서 열정을 바쳐 주로 뛰었던 분야는 '정보 분야'였습니다"며 "정보라는 게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서 그치는 게 절대 아니다. 빠르고 정확해야 하고 종합적인 판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썼다.
●앨빈 토플러도 설득한 ‘협상의 제왕’
이 사무총장을 주변에서 지켜본 인물들은 그가 '탁월한 협상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말한다. 정보국장으로 일하며 쌓은 두터운 신뢰와 탄탄한 인맥, 그리고 살뜰한 협상으로 성사되지 못할 일들을 해결해냈다는 설명이다.
2005년 9월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와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과의 만남이 일례다. 토플러는 허 당시 청장과 한국의 공항 보안 검색에 대해 면담을 진행했는데, 이를 성사 시킨 인물이 이 사무총장이라는 것이다. 당시 토플러는 산업자원부 주최로 열리는 ‘산업혁신 포럼 2005’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방문했었다. 워낙 빡빡하게 일정을 짜두었기 때문에 8일간의 일정에서 비는 시간은 없었다. 당초 경찰청 방문도 예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청 외사1과 과장을 맡고 있었던 이 사무총장은 불가능해 보이던 이 면담을 성공시켰다. 인적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협상력을 십분 발휘해 토플러의 일정을 변경토록 한 것이다. 토플러 측 관계자와 인연이 있던 이 사무총장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토플러 측에게 인천공항까지 빠르게 갈 수 있도록 하는 방편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파 없는 정치인에서 윤핵관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로, 대표적인 윤핵관으로 꼽힌다. 이 사무총장은 경찰 시절부터 윤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무총장은 1998년 7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양평경찰서장을 맡았다. 윤 대통령은 검사로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에서 1997년 2월부터 1999년 2월까지 일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한 이후 그를 국민의힘에 영입했다. 경선부터 시작해 당선 이후까지 함께했다. 국민의힘 대통령 경선 때는 캠프 조직본부장을,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일 땐 중앙선거 대책위원회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다.
당선 이후에는 당선인 총괄 보좌역에 임명됐다.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의 공부 모임 '국민 공감'의 총괄간사를 맡으며 윤핵관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지난해 8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친윤계 핵심'이라며 그를 실명 비판하기도 했다. '친윤계' 이전에는 어느 계파에도 소속돼 있지 않은 정치인으로 분류됐다. 2016년 3월에는 '진박(진짜 친박근혜)'이라는 점을 내세웠지만, 결국엔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같은 해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에 관련해서는 "지역민들의 의견을 따르겠다"며 탄핵소추안에 찬성 의견을 던졌다.
●경찰주의자
“검사가 신(神)은 아니잖아요. 경찰 수사권 독립도 중요하지만, 검찰의 수사권과 공소권을 분리해야 이런 일이 또 벌어지는 걸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이철규, 2013년 11월 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윤핵관'으로 분류되지만, 경찰 조직 내에서 수사권 독립을 위해 전면에 나선 인물이다. 경찰 재직 시절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처음으로 거론했다. 1998년 인수위에 파견됐던 시절 그는 경찰 수사권 독립을 김대중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사무총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1990년대 경찰 수사는 일일이 검찰의 지휘를 받는 ‘영혼 없는 수사’였다”며 “고성이 오갈 정도로 부딪히고 인수위원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하면서 수사권 독립을 공론화했다”고 회상했다.
2005년에도 허 당시 청장과 함께 경찰 수사권 독립을 위해 전면에 나섰다. 후에도 이를 자랑스럽게 회고했다. 2013년 퇴임사에서 그는 “1998년 대통령직인수위에 파견돼 경찰 수사권 독립을 공론화한 데 대해 무한한 긍지를 느끼고 있으며, 2005년 허준영 전 경찰청장과 함께 수사구조 개혁에 동참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고 했다.
검찰을 '적폐 권력'이라고 칭하며 대립각을 세운 인물이기도 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면 인권 침해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데 인권 침해는 권력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으로 역대 적폐 모두 기득권을 가진 검찰에 의해 쌓인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검찰과 날을 세웠던 이 사무총장이 검사 출신 대통령과 어떻게 가까울 수 있냐고 지적도 나온다. 이를 두고 당 관계자들은 "정무적인 판단이라고도 볼 수 있고 당시 이 사무총장은 경찰이었기에 이익을 대변한다는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이철규의 결정적 순간
●두 차례의 구속'경찰 엘리트'의 길을 걷던 이 사무총장의 경찰복을 벗긴 것은 검찰 수사였다. 경찰로 재직하던 시절 두 차례 구속됐고, 이후 승진 인사에서 제외됐다.
경기 안산경찰서장 재임 시절이었던 2003년, 그는 2001년 뇌물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구속됐고 직위에서 해제됐다. 관내 업체로부터 20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2005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내며 경찰에 복직했다. 이후 충북경찰청장과 경찰청 정보국장을 거쳐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으로 꼽히는 경기경찰청장까지 올랐다. 하지만 '검찰과의 악연'은 끝나지 않았다. 2012년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구속됐다. 제일제축은행이 경찰 수사를 받던 당시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수천만원 안팎의 금품과 수사 무마 청탁을 받았다는 혐의다. 당시 경찰청은 현직 지방청장으로서 업무 수행이 어렵다고 보고 그를 대기발령 하기도 했다. 이 사무총장은 이 시기를 '참담하다'고 곱씹으며 전문기관에서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2013년 10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으며 복직했지만, 그해 치안정감 승진·보직 인사에서 제외됐다. 2013년 12월 10일,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당시 경찰 수장이었던 이성한 전 경찰청장은 경찰 간부 후보생 2기 후배였다.
후에 이 사무총장은 이러한 '풍파'가 국회의원에 도전하게 된 계기였다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평범하게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면 선거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갖은 풍파를 겪고 나니 우리 사회에 내재돼 있는 모순을 인식하게 됐고 직접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무소속 출마
이 사무총장이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시기는 2015년이다. "고향에 헌신하겠다"는 출마의 변을 밝힌 그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삼척원전 반대와 복선전철의 동해·삼척 연장 공약 등 지역 밀착형 공약을 내세우며 표밭을 갈았다.
하지만 선거를 한 달 앞두고 '기호 1번'을 달고 출마하지 못할 위기에 몰렸다. 강원도 동해 삼척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컷오프(공천배제)됐기 때문이다. 법조인 출신인 박성덕 당시 새누리당 후보에 밀렸다. 당시 이 사무총장은 "지지율 1위 후보를 경선에서 배제하는 이런 공천이 어디 있느냐"며 "무엇이 상향식 공천인가"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이 사무총장은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된다. 선거를 앞두고 "투표로 이철규를 지켜주세요"라고 호소하기도 했던 그는 결국 20대 총선에서 48.5% 득표율로 2위인 박성덕 후보(34.1%)를 제쳤다. 강원도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인물은 그가 유일했다. 당선 2개월 뒤인 그해 6월,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주호영, 장제원 의원 등과 함께 새누리당에 복당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경험이 있기에 그는 특히 '공천의 공정성'을 강조한다.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이 사무총장은 "(당시)인센티브나 특혜를 바란 게 아니라 그저 공정한 기회를 원했는데 그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니 얼마나 서운했겠나"며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이 얼마나 서운한지 잘 알기 때문에 공천 과정에서 나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데 방점을 두려 한다”고 했다. 그가 현재 맡고 있는 당 사무총장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구성되는 공천관리위원회에 당연직 부위원장으로 참여한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