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박시온 기자
서울행정법원. /박시온 기자
개인 대주주가 기부 목적으로 기업에 맡긴 기금은 법인세 부과 대상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회사의 순자산을 늘린 수익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김순열 부장판사)는 SK브로드밴드(SKB)가 동수원세무서와 서울지방국세청을 상대로 "법인세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SKB는 2020년 5월 티브로드를 흡수합병했다. 티브로드는 앞서 2017년 3월 개인 대주주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중소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Program Provider) 운영 및 지원을 위한 공동 협력 양해 각서'를 체결해 100억원의 기금을 받았다.

해당 협약은 이 전 회장이 국내 방송산업 진흥을 위해 100억원을 기부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티브로드는 2017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6회에 걸쳐 중소PP에 38억3900만원을 지급했다. 2019년 12월 티브로드는 이 전 회장과 양해각서를 해지했고 나머지 금액인 61억7900만원을 이 전 회장에게 돌려줬다.

세무당국은 2020년 티브로드에 대해 법인세 통합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당국은 기부금 100억과 이자수입을 익금(순자산을 증가시킨 거래로 생긴 수익)으로 보고 티브로드에 대해 법인세 25억5000만원을 고지했다.

티브로드를 합병한 SKB는 이에 불복해 2021년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지만 청구가 기각되자 행정소송을 걸었다. SKB 측은 "양해각서에 따른 법률관계는 민법상 위임 혹은 신탁법상 신탁에 해당한다"며 "기부금이 티브로드에 실질적으로 귀속됐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SKB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법인세 부과 처분이 부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양해각서에 따른 법률관계는 중소PP에 대한 지원이라는 목적을 위해 재산을 이전하는 신탁 또는 그와 유사한 비전형계약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기부금은 티브로드의 고유재산과 분리돼 별도로 집행·관리됐고 티브로드의 자산으로 회계 처리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티브로드의 순자산을 증가시킨 것으로서 티브로드에 실질적으로 귀속된 것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세무당국은 배임죄로 처벌받은 이 전 회장이 티브로드가 입은 피해 변제를 위해 기금을 증여한 것이라고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사자들이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