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완벽한 휴가'에 필요한 너무 재밌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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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최지인의 탐나는 책
이소영 장편소설 < 알래스카 한의원 >(사계절, 2023)
이소영 장편소설 < 알래스카 한의원 >(사계절, 2023)
한여름이 다가오기 전에 편집자들은 휴가철을 겨냥한 도서를 고민하기 마련이다. 3월 말에 출간된 책이기는 하지만 올해 누가 여름 휴가지에서 읽을 책을 묻는다면,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물리치고 당신의 모공을 서늘하고 보송보송하게 만들어줄 책으로 <알래스카 한의원>을 꼽겠다.
지명에서부터 한기가 느껴지는 알래스카의 작은 마을. 그곳의 유일한 한의사 ‘고담’을 찾아간 주인공 ‘이지’는 사소한 교통사고 이후로 오른 팔과 손에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을 느낀다. 그녀가 왜 이런 고통을 겪는지 추적하는 3백여 페이지의 여정은 무겁고 우울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산뜻하다.
이야기 속에 문득 출몰하는 묘령의 귀신은 모공을 쫀쫀하게 당기고, 대체로 개성 넘치는 이 내향형의 인물들은 무심한 듯 다정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게 만든다. 뿌리 깊은 고통을 다루지만, 이를 이겨낼 굳센 의지와 든든한 우정이 읽는 이를 쓰러지지 않게 단단히 붙잡기도 한다.
재기발랄한 이들이 만들어가는 코믹한 장면들과, 가본 적 없지만 머릿속에 아련하게 펼쳐지는 추운 나라의 풍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기게 된다. 책을 읽다가 어느새 흘러버린 시간을 확인하고 깜짝 놀라서, 이 책을 읽는 나야말로 시차유령에 들려버린 건 아닐까 어리둥절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문학 편집자에게 소설책이란 이제 더 이상 재미의 원천보다는 항상 쌓여 있는 검토할 숙제처럼 생각되곤 한다. 평생 가장 사랑하던 일이 직업으로 전환되고 나서 피할 수 없게 된 숙명과 같다. 순수하게 즐거움을 느끼기가 쉽지 않아서 이소영의 <알래스카 한의원>을 읽고서는 감사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휴, 너무 재밌다.’ 이것이 책장을 덮으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었기에. 물론 훌륭한 문장과 치밀한 플롯이 이만큼의 가독성을 끌어올렸으리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던 동시에.
이 책의 저자 이소영은 소설가로서 낯설었지만 이력을 찾아보니 익히 잘 알고 있던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였다. 물론 호러영화를 보고 나면 지독한 꿈을 꾸는 탓에 남들만큼 즐겨 보진 못했지만, 그런 나도 본 영화들이 있었다. 이런 거물이 소설을 쓰다니! 그런데 나는 몰랐다니!! 왠지 아쉬운 마음으로 쩝쩝거렸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올해 내게도 여름휴가 기간에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담당 편집 도서가 있다. (그것은 정보라 작가의 화제작 <저주토끼> 개정판!) 하지만 아흔아홉 섬의 쌀자루를 쌓아놓고도 한 섬 더 아쉬워하듯, 편집자의 욕심은 끝이 없다.
지명에서부터 한기가 느껴지는 알래스카의 작은 마을. 그곳의 유일한 한의사 ‘고담’을 찾아간 주인공 ‘이지’는 사소한 교통사고 이후로 오른 팔과 손에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을 느낀다. 그녀가 왜 이런 고통을 겪는지 추적하는 3백여 페이지의 여정은 무겁고 우울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산뜻하다.
이야기 속에 문득 출몰하는 묘령의 귀신은 모공을 쫀쫀하게 당기고, 대체로 개성 넘치는 이 내향형의 인물들은 무심한 듯 다정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게 만든다. 뿌리 깊은 고통을 다루지만, 이를 이겨낼 굳센 의지와 든든한 우정이 읽는 이를 쓰러지지 않게 단단히 붙잡기도 한다.
재기발랄한 이들이 만들어가는 코믹한 장면들과, 가본 적 없지만 머릿속에 아련하게 펼쳐지는 추운 나라의 풍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기게 된다. 책을 읽다가 어느새 흘러버린 시간을 확인하고 깜짝 놀라서, 이 책을 읽는 나야말로 시차유령에 들려버린 건 아닐까 어리둥절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문학 편집자에게 소설책이란 이제 더 이상 재미의 원천보다는 항상 쌓여 있는 검토할 숙제처럼 생각되곤 한다. 평생 가장 사랑하던 일이 직업으로 전환되고 나서 피할 수 없게 된 숙명과 같다. 순수하게 즐거움을 느끼기가 쉽지 않아서 이소영의 <알래스카 한의원>을 읽고서는 감사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휴, 너무 재밌다.’ 이것이 책장을 덮으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었기에. 물론 훌륭한 문장과 치밀한 플롯이 이만큼의 가독성을 끌어올렸으리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던 동시에.
이 책의 저자 이소영은 소설가로서 낯설었지만 이력을 찾아보니 익히 잘 알고 있던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였다. 물론 호러영화를 보고 나면 지독한 꿈을 꾸는 탓에 남들만큼 즐겨 보진 못했지만, 그런 나도 본 영화들이 있었다. 이런 거물이 소설을 쓰다니! 그런데 나는 몰랐다니!! 왠지 아쉬운 마음으로 쩝쩝거렸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올해 내게도 여름휴가 기간에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담당 편집 도서가 있다. (그것은 정보라 작가의 화제작 <저주토끼> 개정판!) 하지만 아흔아홉 섬의 쌀자루를 쌓아놓고도 한 섬 더 아쉬워하듯, 편집자의 욕심은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