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는 배고프다"…남 끼니 만드느라 '굶는 날'이 더 많은 우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더 베어>(2022)
!["셰프는 배고프다"…남 끼니 만드느라 '굶는 날'이 더 많은 우리](https://img.hankyung.com/photo/202307/01.34175578.1.jpg)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선 맛있는 음식을 먹어봐야 한다는 논리라면 어느 정도 맞다고 할 수 있겠다. 또 요리사라면 본인이 만든 음식을 맛을 봐야 하고, 맛없는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없으니 본인이 만든 맛있는 음식을 매일 맛보는 게 아니냐는 논리라면 이 또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요리사란 매일 맛있음의 세계에 빠져있는 황홀한 직업처럼 느껴진다.
안타깝지만 요리사의 현실은 황홀함과는 꽤 거리가 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려 애쓰지만 정작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닐 여유도 없고 만든 음식이 늘 맛있으리란 법도 없다. 마치 완벽한 도자기 하나를 위해 수십 개의 도자기를 깨는 장인 마냥 하나의 완성된 맛있는 음식을 위해 수십 번의 맛없음을 감내해야 하는 게 요리사의 숙명이랄까.
요리사의 의의란 본인이 맛있는 걸 먹는 게 아니라 만드는 데 있다. 맛있는 음식을 온전히 즐기는 건 최종 소비자의 몫이다. 정작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단지 음식을 맛있게 먹는 손님을 보며 보람을 느낄 뿐이다. 온 힘을 다해 그날의 서비스를 완벽하게 마치면 다가오는 내일을 위해 또다시 일을 반복한다. 마치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셰프는 배고프다"…남 끼니 만드느라 '굶는 날'이 더 많은 우리](https://img.hankyung.com/photo/202307/01.34175579.1.jpg)
주방에서 진땀 흘리는 주인공을 보며 처음 식당을 오픈했을 당시가 떠올랐다. 나름 야심 차게 준비한다고 했지만 처음이라 일은 제대로 되지 않고 하면 할수록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손님이 올 시간은 다가오는 그 참담한 심정이란.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어 들어가고 싶지만 새 주방이라 쥐구멍도 없는 상황에서 맞는 손님들, 음식이 좋았다고 하지만 진심인지 아닌지 믿을 수가 없어 매일매일 머리를 쥐어뜯었던 암담한 시간들, 야속하게 찾아오는 내일 등 요리사이자 셰프, 그리고 식당 오너로서 겪을 수 있는 스트레스와 압밥감은 그동안 겪었던 어떤 고난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엉겁결에 오너셰프가 된 카미 역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제대로 잠도 못 자고, 겨우 잠들면 꿈에서 자꾸 물건들이 없어지고, 곰이 나타나 자신을 집어삼키려고 하는 것도 모자라 주방에 불을 질러버리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나름의 이유 때문에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하루하루 버텨낸다. 식당에서 어떤 이벤트가 열리게 되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아 수익을 얻으려고 준비하는데 당장 고기 살 돈도 없자 카미는 아끼던 구제 청바지도 헐값에 팔아버린다. 카미가 짊어진 짐의 무게를 아는지 모르는지 직원들은 새로운 레시피를 거부하고 원래 하던 대로 쉽게 가자며 야속하게도 속을 썩인다.
!["셰프는 배고프다"…남 끼니 만드느라 '굶는 날'이 더 많은 우리](https://img.hankyung.com/photo/202307/01.34175577.1.jpg)
더 나은 방식과 시스템으로 식당을 새롭게 바꾸려고 하는 카미의 분투는 어쩌면 무언가를 대표하고 있는 이들 모두가 짊어져야 하는 일의 무게와 다름이 없다. 매일매일 몸과 마음이 다치고 혼돈과 공포 속에서 허우적거릴지라도 그 안에서 천천히 질서를 잡아나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고 배워나간다.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카미는 곰(bear)이라는 공포에 잠식 당해 무너져 버릴까, 아니면 인내하고 버티며(bear)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성장할 수 있을까. 자기 일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진 이들에게 <더 베어>를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