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시크'의 영원한 아이콘, 아듀! 제인 버킨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파리지앵보다 더 파리지앵 같았던 영국인"
세르주 갱스부르의 뮤즈이자 버킨백의 주인공
자유분방하고 파격적이었던 예술가
영화 음악 연극 패션계에서 수십 년간 사랑받아
반전 시위와 히피즘…'프렌치 시크'의 상징
시대를 거슬러 인정받는 패션의 아이콘
장 뤽 고다르 ·아녜스 바르다 등 거장과 작업
한국엔 세 번의 내한…홍상수 영화에도 출연
미얀마 인권운동과 동물 보호 캠페인 등에 매진
세르주 갱스부르의 뮤즈이자 버킨백의 주인공
자유분방하고 파격적이었던 예술가
영화 음악 연극 패션계에서 수십 년간 사랑받아
반전 시위와 히피즘…'프렌치 시크'의 상징
시대를 거슬러 인정받는 패션의 아이콘
장 뤽 고다르 ·아녜스 바르다 등 거장과 작업
한국엔 세 번의 내한…홍상수 영화에도 출연
미얀마 인권운동과 동물 보호 캠페인 등에 매진
▲1995년의 제인 버킨. Getty Images
"파리지앵보다 더 파리지앵 같았던 영국인이 우리를 떠났다."
76세의 나이로 1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자택에서 세상을 떠난 제인 버킨에 대해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이 한 말이다.
그녀의 이름은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버킨백'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이름 하나로만 기억하고 떠나 보내기엔 그의 예술적 여정은 거대한 포물선을 그린 것처럼 크고 넓었다. 1970년대 반전 시위와 히피즘의 상징으로, 말년엔 동물 보호 등 사회 운동가로도 활약했다. 2021년 14번째 앨범을 냈고 2018년에는 월드투어를 하는 등 최근까지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프렌치 시크의 아이콘으로, 패션계의 뮤즈로, 세르주 갱스브루와 펼쳐낸 세기의 로맨스로, 지난 세기의 '영원한 뮤즈'로 남을 그의 인생을 돌아본다.
갱스부르의 뮤즈 …부서질 듯 청아했던 '프렌치 보이스'
1946년 영국 런던에서 해군 장교의 딸로 태어난 버킨은 1965년 배우로 데뷔, 단역 모델로도 활동하다 프랑스로 건너갔다. 전국적인 반정부 학생시위로 혼란스럽던 1968년 프랑스 샹송 음악의 거장이자 배우였던 세르주 갱스부르(1928~1991)와 만났다. 영화 '슬로건'에서 상대역을 연기하면서다. 스무 살 차이를 극복한 연인으로 발전해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냈다.▲제인 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 Getty Images
결혼을 하지 않고 13년 간 연인 관계를 유지했던 갱스부르와 버킨은 1969년 함께 부른 노래 '사랑해…나도(Je t'aime…moi non plus)'로 유명해졌다. 노골적이고 성적인 소리가 녹음됐다는 이유로 방송이 금지되기도 했다. 버킨은 2006년 미국 CNN 방송에 나와 “갱스부르와 나는 이 노래 때문에 이상한 방식으로 가장 유명한 커플이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버킨은 1980년 갱스부르의 술 버릇과 불 같은 성격에 지쳐 그를 떠났지만, 예술적인 교류는 이후에도 이어갔다. 버킨은 평생 갱스부르의 노래에 충실했다. 1973년부터 1990년까지 발매된 6개의 버킨 솔로 앨범을 통해 그의 노래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그와의 만남부터 이별까지 그들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음악에 녹여냈다. 예를 들어 'Ex fan des sixties(1978)', 'Baby Alone in Babylone(1983)'은 주로 부부의 이별을 다룬다.
버킨은 부서질듯 가녀린 음색과 살짝 떨리는 음정, 그 사이를 채우는 허스키한 가성은 지금도 프랑스 여가수를 상징하는 목소리로 불린다. 평소의 성격과 스타일처럼, 그의 노래 역시 어떤 가식과 꾸밈도 없이 솔직하고 겸손한 매력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75년 칸 영화제에서 카메라를 든 제인 버킨. Getty Images
갱스부르의 음악적 동반자로 불렸지만, 그는 최근까지도 독립적인 음악가로 살았다. 솔로 앨범 'Enfants d'hiver(2008)'와 'Oh! Pardon tu dormais …(2020)' 등이 그랬다. 영국과 프랑스를 잇던 전방위 예술가
버킨은 영국과 프랑스의 미묘했던 관계를 화해 무드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녀의 아버지 였던 버킨 사령관은 달빛 없는 밤에 배를 타고 영국 해협을 건너 연합군 스파이, 발 묶인 공군, 프랑스에서 탈출한 전쟁 포로를 데려오는 임무를 했다.▲1974년 칸 영화제에서의 제인 버킨. Getty Images
버킨은 18세에 제임스 본드 영화의 트레이드마크 테마를 편곡한 것으로 알려진 영국 작곡가 존 배리와 결혼해 딸 케이트를 낳았는데, 배리가 곧 그녀를 떠나면서 '싱글맘'으로 빨리 일자리를 찾아야 했던 것. 이후 프랑스 영화에 출연하고, 프랑스 남자와 사랑에 빠진 뒤 그곳에 정착한 버킨을 프랑스인들은 '진정한 파리지앵'으로 여겼다. 버킨은 평생 영국식 억양을 섞은 프랑스어 발음을 버리지 않았고, 그 특유의 억양을 프랑스인들조처 사랑스러워했다고.
'파리지앵의 상징'이자 에르메스 버킨백의 뮤즈
▲버킨 백이 만들어지기 전에 버킨은 밀짚 바구니를 들고 있는 모습이 자주 찍혔다. Getty Images
버킨백의 탄생 일화 또한 유명하다. 1983년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에 탄 당시 에르메스 수석 디자이너(이후 CEO가 된) 였던 장 루이 뒤마는 우연히 버킨과 옆자리에 앉게 됐다. 좌석 위쪽 짐칸에 자신의 가방을 넣으려다 내용물이 쏟아진 버킨은 뒤마에게 “가죽으로 만든 마음에 드는 주말용 가방을 찾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전까지 그녀는 '나무 바구니를 든 여인'으로 유명했다. 여성의 핸드백 안엔 생각보다 많은 물건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에 맞는 가방을 찾을 수 없어 어떤 스타일에도 커다란 나무 바구니 백을 들고 다녔다.
▲버킨은 2018년 "난 바구니를 들고 다녔다. 여자들은 생각보다 핸드백에 많은 걸 넣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Getty Images
비행기에서 내린 뒤마는 버킨을 위해 부드러운 검은 가죽으로 만든 가방을 새로 만들었다. 개당 수천 만원~수 억원을 호가하는 버킨백은 지금도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가방으로 유명하다. 버킨은 2015년 에르메스에 “내 이름을 빼 달라”고 요구했다. 이 가방을 만들기 위해 잔인한 방식으로 동물 가죽을 취하는 것에 항의하는 차원이었다.
버킨은 이외에도 패션계의 아이코닉한 여성으로 통했다. 청바지에 흰 티셔츠, 불규칙하게 잘라 내린 앞머리와 헝클어진 긴 머리가 대명사였다. 시스루 드레스와 딱 붙는 짧은 티셔츠, 컷오프 청바지와 에스파드류를 즐겨 입고 신었던 그는 지금도 '제인 버킨처럼 스타일링 하는 법', '파리지앵 스타일'을 검색하면 다수의 사진들이 나올 만큼 '꾸미지 않은 듯 꾸민 스타일'로 유명했다. 패션 디자이너 안나 수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스타일은 미국 스타일과 매우 달랐다. 약간 구겨진 영국식 모양이지만 고전적인 프랑스 코드와 융합된 영국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파격적이고 자유분방했던 여배우
버킨은 사회적 통념을 벗어난 파격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한 캐릭터를 다수 연기하며 반전과 히피즘이 휘몰아치던 1960년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각광받았다. 1980~90년대 프랑스 최고 권위의 영화제 세자르 시상식 후보에 3번 선장됐다. 1985년 제 42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영화 '더스트'로 여우주연상 유력 후보였으나 심사위원들은 배우가 아닌 영화 자체에 상을 줘 버킨 개인의 수상을 불발됐지만 그의 연기력은 많은 이들로부터 인정 받았다.장 뤽 고다르, 아녜스 바르다, 홍상수 등 여러 거장 감독의 작품에 출연했다. 버킨은 한국과도 인연이 많다. 2004·2012·2013년 내한공연을 했다. 공연 때마다 스태프에게 친절을 아끼지 않았고, 관객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모습으로 호평 받았다. 2012년 내한 당시 “배우로서 홍상수 감독을 존경한다. 기회가 된다면 홍 감독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밝혔고, 이후 홍 감독의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 출연했다.
▲ 제인 버킨이 첫 결혼에서 낳은 딸 케이티 배리와 함께. Getty Images
버킨은 첫째 딸 외에 두 명의 딸을 더 낳았다. 1971년 갱스부르와의 사이에서 샤를로트 갱스부르를, 이후 프랑스 감독 자크 드와이옹과 루 드와이옹을 뒀다.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2009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루 드와이옹 역시 유명한 가수이자 패션계 인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의 첫째 딸인 사진작가 케이트 배리는 2013년 46세의 나이로 파리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4층 창문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 2016년 파리에서 열린 생 로랑 쇼.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왼쪽)와 루 두아이용과 제인 버킨 Getty Images
수천 만원의 '버킨백'의 주인공이었던 제인 버킨은 낡은 옷을 입고 인권이 위협받는 지역이나 재난 지역을 찾아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미얀마의 민주화와 아웅산 수지의 석방을 위해 수년간 노력했고, 아이티와 태국 등을 찾아 다니며 사람들을 도왔다. 2021년 가벼운 뇌졸중을 앓았고,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아 예정된 콘서트 등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