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방폐장 없는 원전 건설
방사성 폐기물은 오염도를 기준으로 고·중·저준위로 나뉜다. 저준위 폐기물은 원전 내 작업자들이 사용한 장갑, 덧신, 걸레, 작업복과 여과기, 필터 등 방사능 정도가 낮은 것을 뜻한다. 중준위는 냉각수 등 다소 높은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것을 말한다. 고준위 폐기물은 사용하고 남은 핵연료 또는 핵연료 재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것으로 방사능 세기가 매우 강하다.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 시설은 후보지 4곳 중 주민투표 찬성률이 가장 높은 경주로 확정돼 2015년부터 가동 중이다. 관건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이다. 정부는 2013년부터 공론화를 여러 번 거치고, 2021년 말 ‘2차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수립을 통해 부지 선정 절차를 시작한 이후 37년 이내에 영구 처분시설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고준위 방폐장 설치를 서두르는 것은 시급성 때문이다. 현재는 방사성 폐기물 영구 처분장과 중간 저장시설이 없어 원전 부지에 임시로 저장하고 있다. 이제 그 시설도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말 주요 원전별 사용후 핵연료 포화율이 고리 87.5%, 한빛 77.9%, 월성 75.5%, 한울 74.7% 등이다. 정부의 원전 부활 정책으로 포화 시점은 예상보다 1~2년 당겨져 2030년부터 차례차례 다가올 예정이다. 사용후 핵연료 양이 예상보다 더 늘고 있지만, 첫발도 떼지 못하고 있다.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 건설에만 7년이 걸린다. 당장 건설을 시작하지 않으면 7년 뒤 원전이 순차적으로 멈춰 설 수밖에 없다. 방폐장 부지 선정을 놓고 지역 반발이 거세진다면 사업이 마냥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국회 관련법 논의는 하세월이다. 국회에는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절차, 주민 지원 방안 등의 내용이 담긴 특별법 3건이 계류돼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소극적인 자세 탓이 크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 특별법을 발의해 놓고 윤석열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자 미온적으로 돌아섰다. 여야는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특별법을 조속히 심의, 통과시켜 방폐장 건설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원전을 ‘화장실 없는 아파트’와 같은 처지로 만들 순 없지 않은가.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