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지난해 주요국 중 세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14위에서 10년 만에 11계단 수직 상승했다. 가계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나는 속도는 주요국 중 2위였다. 현재 가계부채는 성장에 부담을 주는 수준으로 분석됐다.

GDP보다 가계빚 많은 한국

17일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5.0%를 기록했다. BIS가 집계하는 주요 43개국 중 스위스(128.3%)와 호주(111.8%)에 이어 3위였다.
韓 가계빚, 10년새 세계 14위→3위로
10년 전인 2012년만 해도 한국은 이 비율이 77.3%로 주요국 중 14위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본격화한 2020년 103.0%로 GDP 규모를 초과했고, 2021년엔 105.8%까지 치솟았다. 코로나19 이후 주요 선진국은 부채를 축소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을 보여주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경우 한국은 2021년 12.8%에서 지난해 13.6%로 0.8%포인트 높아졌다. DSR 수준과 증가 폭 모두 주요 17개국 중 호주(13.5%→14.7%로 1.2%포인트 증가)에 이어 2위였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과 비교하면 한국의 DSR 증가폭은 1.4%포인트로, 17개국 중 가장 컸다. 2위 스웨덴(0.6%포인트)의 두 배 수준이다. 17개국 평균은 -0.3%포인트다. 즉 대부분 국가는 코로나19 이후 가계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부담이 줄었지만 한국은 큰 폭으로 늘었다.

성장 막는 가계부채

한은은 ‘BOK 이슈노트’에서 한국의 가계부채가 최근 급격히 늘어난 원인으로 부동산·주식 투자 급증을 꼽았다. 특히 2016년 이후 전세대출이 연평균 20~30% 늘어난 게 가계부채 확대에 영향을 줬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DSR 규제가 다른 국가에 비해 늦은 2019년 말에야 도입되면서 가계부채 제어에 실패했다는 평가다. 은행도 기업대출보다 수익성 높은 가계대출에 집중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은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를 넘으면 장기적으로 성장에 부담을 줄 것으로 봤다. 단기적으론 대출 증가가 소비 확대로 이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가계의 빚 부담 증가로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GDP보다 가계부채가 많은 한국은 가계빚이 이미 성장률을 훼손하고 있다는 의미다.

부채 축소에 10여 년 걸릴 듯

한국의 부채 축소에는 10여 년이 걸릴 것으로 한은은 예상했다. 명목 성장률이 4%를 유지하고 가계부채 증가율이 3% 내로 제한돼야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2029년께 100% 밑으로 내려오고, 2039년께 90%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성장률이 낮아지거나 가계부채 증가율이 높아지면 가계부채 축소도 더뎌질 수밖에 없다.

앞서 가계부채가 GDP를 추월했다가 부채를 줄이는 데 성공한 유럽 국가도 부채 축소는 장기간 완만하게 이뤄졌다. 덴마크와 네덜란드는 약 18년 만에 가계부채 비율이 100% 아래로 낮아졌다. 아일랜드와 노르웨이는 약 5년 만에 벗어났다. 반면 스위스는 23년째, 호주는 17년째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초과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은은 가계부채 축소를 위해 거시건전성 강화를 제안했다. DSR은 ‘적용 예외’를 축소해야 한다고 봤다. 현재 전세 대출과 중도금 대출, 일정 금액 이하 대출은 DSR 산정 때 배제하는데, 점진적으로 이런 예외를 없애야 한다는 취지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부채는 GDP 대비 80%까지 내리는 것이 좋다”며 “금리정책과 부동산담보대출 제도 변화 등을 정부와 이야기하면서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