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오페라 극장 메운 톰 브라운, 비둘기와 2천명의 '종이 군중'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최지희의 아트 & 럭셔리
20년 걸려 오뜨 꾸뛰르 데뷔한 톰 브라운
58벌의 의상 선보이며 한 편의 거대한 연극 무대
20년 걸려 오뜨 꾸뛰르 데뷔한 톰 브라운
58벌의 의상 선보이며 한 편의 거대한 연극 무대
프랑스 파리 9구 팔레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 19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극장은 파리를 대표하는 곳이다. 지난 3일 이곳에 기차역 플랫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무대가 차려졌다.
막이 오르자 한 여성이 무대 위에 오른다. 여성은 톰 브라운의 시그니처 디자인이 도배된 '캐리어 가방'들을 잔뜩 자신의 등 뒤에 둔 채 먼 허공을 응시한다. 마치 기차역엔 도착했으나 막상 어디로 떠날 지 모르는 방랑자처럼.
1980년에 나온 영국 밴드 비지지의 곡 '페이드 투 그레이'와 함께 등장한 이 방랑자의 이름은 알렉 웩. 그녀는 밀레니얼 시대를 대표하는 모델이다. 프랑스 오페라 극장에 무대를 올린 이 40분간의 쇼는 연극도, 뮤지컬도 아닌, 바로 미국 브랜드 톰 브라운의 2023년 가을·겨울 컬렉션 패션쇼다. 패션 배운 적 없는 판매사원의 반전
톰 브라운은 수많은 스타의 사랑을 받는 미국 브랜드다. 프랑스 파리에서 1년에 단 두 번 열리는 오트 쿠튀르 무대에 서기엔 역사가 20년밖에 안 된 브랜드. 역사가 짧은 이 브랜드가 엄격한 ‘오트쿠르’ 패션협회 심사를 통과했다는 것 자체로도 화제를 모았다.
톰 브라운은 196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나 노트르담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다 중퇴한 인물. 영화배우를 꿈꾸다 1997년 뉴욕으로 건너와 조르지오 아르마니 매장에서 판매 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클럽모나코 디자이너로 스카우트된 뒤 크리에이티브팀을 이끌면서 패션 디자인을 모두 현장에서 익힌 ‘실전파’다.
2001년 클럽모나코를 나와 뉴욕 트라이베카에 자신의 이름을 건 ‘톰 브라운’ 매장을 연 그는 오직 그레이 슈트만 제작했다. 획일적인 남성 슈트의 틀을 깨고 위트와 감성으로 접근한 그는 ‘맞춤 정장’만 고집했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톰 브라운은 브룩스브라더스, 몽클레어 등과 협업하며 사세를 키웠다. 협업하는 컬렉션마다 성공하며 톰 브라운의 브랜드 가치도 덩달아 상승한 것. 클래식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디자인의 톰 브라운은 레드, 네이비, 화이트의 ‘삼선’ 시그니처를 만들어냈다. 랄프 로렌, 닉 우스터 등이 그를 지지했다. 2000명의 가짜 ‘골판지 군중’
톰 브라운에게 올해는 브랜드 창립 20주년의 해다. 오트 쿠튀르는 그에게도 꿈의 무대와도 같았다. ‘고급’을 뜻하는 오트, ‘바느질’을 의미하는 쿠튀르라는 어원에 맞게 이 쇼에 오르는 의상 한 벌을 제작하는 데 적어도 100시간이 걸린다고.
쇼 참가 신청을 위해서는 브랜드의 예술성, 창의성, 장인정신을 담은 고급 공정 과정은 물론 모든 컬렉션이 무조건 ‘핸드 메이드’로 제작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 까다로운 벽을 넘은 톰 브라운은 그의 디자인 철학처럼 다시 오지 않을 패션쇼의 무대를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줄 연극 무대’처럼 꾸미기로 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방랑자, 웩이 입고 있는 회색 재킷은 톰 브라운의 가장 초창기 재킷 모델이다. 대중에게 ‘톰 브라운 성공의 시작’으로 불린다. 공허한 나그네 웩이 자리에 앉아 먼 산을 응시하는 동안 뒤로는 차례로 모델들이 톰 브라운의 새로운 컬렉션을 입고 등장했는데, 모든 옷은 ‘비둘기’였다. 평화의 상징에서 어느샌가 혐오의 대상이 된 비둘기가 명품 브랜드 런웨이의 메인 콘셉트가 됐다.
프랑스 기차역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손님인 비둘기처럼 모델들의 손과 발에는 깃털을 떠올리게 하는 여러 디테일이 달려 있다. 한껏 꾸민 이들의 머리 위엔 비둘기 모자가 씌워졌고, 런웨이의 핵심과도 같은 구두도 비둘기의 발을 본떠 만들었다. 이른바 ‘비둘기 룩’을 선보이는 모델들은 워킹을 선보이며 비둘기가 날개를 퍼덕이는 듯한 제스처도 취한다.
더 화제를 모은 건 객석이었다. 좌석을 가득 채운 2000명의 사람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짜 인간이 아니라 모두 골판지 모형이다. 극장의 가장 노른자 자리를 진짜 관람객이 아닌 가짜 사람으로 채운 것도 그만의 위트가 돋보이는 연출이었다. 이 사람들 또한 쇼 기획팀이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었다고.
58점의 ‘비둘기룩’…“미국 패션의 새 역사”
쇼의 한 대목이 끝나면 이 골판지 인형들이 앉은 자리에서 환호와 박수 소리를 내는데, 이 소리도 모두 톰 브라운이 직접 사람들의 소리를 미리 녹음해 재생한 음향이다. 마치 2000명의 군중이 모델들을 향해 환호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이날 진짜 관객은 단 300명. 이들은 무대 위쪽에 마련된 좌석에 앉았다. 단조롭고 단정한 회색 슈트는 쇼가 계속될수록 점점 화려한 색과 무늬를 입었다. 금색과 은색 스팽글이 한가득 덮이기도 하고, 시골 마을 풍경이 그려진 조각보를 이어 붙이기도 했다.
이날 브라운은 총 58벌의 옷을 선보였다. 모두 손으로 한땀한땀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그 노동의 시간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톰 브라운은 변태적 수준의 수작업 마니아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메트 갈라에서 가수 리조에게 코트를 입히기로 한 브라운은 의상팀과 무려 2만2000시간을 들여 직접 그 옷을 제작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쇼의 대미는 올해 새롭게 선보이는 브라이덜 컬렉션이 차지했다. 컬렉션을 입은 모델들이 모두 나오며 브라운의 약 40분간 데뷔 드라마가 끝났다. 보통 브랜드의 패션쇼가 15분 정도 이뤄지는 것을 생각하면 두 배가 넘는 시간을 쏟은 셈이다.
이날 무대에 오른 톰 브라운은 자신이 만든 브랜드의 20주년을 자축했다. 그러면서 “프랑스 정통 명품이 아닌 미국 패션의 전통을 쿠튀르 무대에 세웠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라며 “이번 쇼는 단순히 우리 브랜드를 넘어 미국 패션을 대표할 만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허공만 쳐다보던 방랑자는 손을 흔들며 기차역을 떠난다. 어딘가 그 목적지는 알 수 없지만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비둘기들 사이로 자취를 감추는 모델은 쇼를 감상하는 대중에게 패션과 새로운 작품 그 이상의 여운을 남겼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1980년에 나온 영국 밴드 비지지의 곡 '페이드 투 그레이'와 함께 등장한 이 방랑자의 이름은 알렉 웩. 그녀는 밀레니얼 시대를 대표하는 모델이다. 프랑스 오페라 극장에 무대를 올린 이 40분간의 쇼는 연극도, 뮤지컬도 아닌, 바로 미국 브랜드 톰 브라운의 2023년 가을·겨울 컬렉션 패션쇼다. 패션 배운 적 없는 판매사원의 반전
톰 브라운은 수많은 스타의 사랑을 받는 미국 브랜드다. 프랑스 파리에서 1년에 단 두 번 열리는 오트 쿠튀르 무대에 서기엔 역사가 20년밖에 안 된 브랜드. 역사가 짧은 이 브랜드가 엄격한 ‘오트쿠르’ 패션협회 심사를 통과했다는 것 자체로도 화제를 모았다.
톰 브라운은 196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나 노트르담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다 중퇴한 인물. 영화배우를 꿈꾸다 1997년 뉴욕으로 건너와 조르지오 아르마니 매장에서 판매 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클럽모나코 디자이너로 스카우트된 뒤 크리에이티브팀을 이끌면서 패션 디자인을 모두 현장에서 익힌 ‘실전파’다.
2001년 클럽모나코를 나와 뉴욕 트라이베카에 자신의 이름을 건 ‘톰 브라운’ 매장을 연 그는 오직 그레이 슈트만 제작했다. 획일적인 남성 슈트의 틀을 깨고 위트와 감성으로 접근한 그는 ‘맞춤 정장’만 고집했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톰 브라운은 브룩스브라더스, 몽클레어 등과 협업하며 사세를 키웠다. 협업하는 컬렉션마다 성공하며 톰 브라운의 브랜드 가치도 덩달아 상승한 것. 클래식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디자인의 톰 브라운은 레드, 네이비, 화이트의 ‘삼선’ 시그니처를 만들어냈다. 랄프 로렌, 닉 우스터 등이 그를 지지했다. 2000명의 가짜 ‘골판지 군중’
톰 브라운에게 올해는 브랜드 창립 20주년의 해다. 오트 쿠튀르는 그에게도 꿈의 무대와도 같았다. ‘고급’을 뜻하는 오트, ‘바느질’을 의미하는 쿠튀르라는 어원에 맞게 이 쇼에 오르는 의상 한 벌을 제작하는 데 적어도 100시간이 걸린다고.
쇼 참가 신청을 위해서는 브랜드의 예술성, 창의성, 장인정신을 담은 고급 공정 과정은 물론 모든 컬렉션이 무조건 ‘핸드 메이드’로 제작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 까다로운 벽을 넘은 톰 브라운은 그의 디자인 철학처럼 다시 오지 않을 패션쇼의 무대를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줄 연극 무대’처럼 꾸미기로 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방랑자, 웩이 입고 있는 회색 재킷은 톰 브라운의 가장 초창기 재킷 모델이다. 대중에게 ‘톰 브라운 성공의 시작’으로 불린다. 공허한 나그네 웩이 자리에 앉아 먼 산을 응시하는 동안 뒤로는 차례로 모델들이 톰 브라운의 새로운 컬렉션을 입고 등장했는데, 모든 옷은 ‘비둘기’였다. 평화의 상징에서 어느샌가 혐오의 대상이 된 비둘기가 명품 브랜드 런웨이의 메인 콘셉트가 됐다.
프랑스 기차역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손님인 비둘기처럼 모델들의 손과 발에는 깃털을 떠올리게 하는 여러 디테일이 달려 있다. 한껏 꾸민 이들의 머리 위엔 비둘기 모자가 씌워졌고, 런웨이의 핵심과도 같은 구두도 비둘기의 발을 본떠 만들었다. 이른바 ‘비둘기 룩’을 선보이는 모델들은 워킹을 선보이며 비둘기가 날개를 퍼덕이는 듯한 제스처도 취한다.
더 화제를 모은 건 객석이었다. 좌석을 가득 채운 2000명의 사람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짜 인간이 아니라 모두 골판지 모형이다. 극장의 가장 노른자 자리를 진짜 관람객이 아닌 가짜 사람으로 채운 것도 그만의 위트가 돋보이는 연출이었다. 이 사람들 또한 쇼 기획팀이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었다고.
58점의 ‘비둘기룩’…“미국 패션의 새 역사”
쇼의 한 대목이 끝나면 이 골판지 인형들이 앉은 자리에서 환호와 박수 소리를 내는데, 이 소리도 모두 톰 브라운이 직접 사람들의 소리를 미리 녹음해 재생한 음향이다. 마치 2000명의 군중이 모델들을 향해 환호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이날 진짜 관객은 단 300명. 이들은 무대 위쪽에 마련된 좌석에 앉았다. 단조롭고 단정한 회색 슈트는 쇼가 계속될수록 점점 화려한 색과 무늬를 입었다. 금색과 은색 스팽글이 한가득 덮이기도 하고, 시골 마을 풍경이 그려진 조각보를 이어 붙이기도 했다.
이날 브라운은 총 58벌의 옷을 선보였다. 모두 손으로 한땀한땀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그 노동의 시간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톰 브라운은 변태적 수준의 수작업 마니아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메트 갈라에서 가수 리조에게 코트를 입히기로 한 브라운은 의상팀과 무려 2만2000시간을 들여 직접 그 옷을 제작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쇼의 대미는 올해 새롭게 선보이는 브라이덜 컬렉션이 차지했다. 컬렉션을 입은 모델들이 모두 나오며 브라운의 약 40분간 데뷔 드라마가 끝났다. 보통 브랜드의 패션쇼가 15분 정도 이뤄지는 것을 생각하면 두 배가 넘는 시간을 쏟은 셈이다.
이날 무대에 오른 톰 브라운은 자신이 만든 브랜드의 20주년을 자축했다. 그러면서 “프랑스 정통 명품이 아닌 미국 패션의 전통을 쿠튀르 무대에 세웠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라며 “이번 쇼는 단순히 우리 브랜드를 넘어 미국 패션을 대표할 만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허공만 쳐다보던 방랑자는 손을 흔들며 기차역을 떠난다. 어딘가 그 목적지는 알 수 없지만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비둘기들 사이로 자취를 감추는 모델은 쇼를 감상하는 대중에게 패션과 새로운 작품 그 이상의 여운을 남겼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