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의 위너' 김태한… "자만하는 순간 큰 무대는 없겠죠" [인터뷰]
바리톤 김태한이 서울 서초구 국립오페라단 오페라스튜디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큰 상을 받았지만 저는 여전히 신인일 뿐이에요. 자만하는 순간, 큰 무대의 부름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연습을 멈추지 않는 이유입니다."

'벼락 스타'란 말은 바리톤 김태한(23·사진)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지난달 벨기에 브뤼셀에서 폐막한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 남자 성악 부문에서 우승하면서 '숨은 보석'에서 'K클래식'의 주인공이 됐다. '세계 3대 콩쿠르'로 불리는 '클래식 올림픽' 남자 성악 부문에서 아시아인이 금메달을 딴 건 김태한이 처음이다.

최근 서울 서초동 국립오페라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태한은 "큰 상을 받았다고 달라진 건 별로 없다"고 했다. '세계적인 오페라 무대에 서겠다'는 더 큰 목표가 그대로인 만큼 연습을 게을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퀸의 위너' 김태한… "자만하는 순간 큰 무대는 없겠죠" [인터뷰]
인터뷰 중인 김태한. 이솔 기자

언뜻 보면 '깜짝 스타' 같지만, 클래식 음악계는 꽤 오래 전부터 김태한을 주목했다. 3~4년전부터 크고 작은 콩쿠르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지난해 5월 독일 노이에슈팀멘 콩쿠르와 올 1월 비냐스 국제 성악콩쿠르에서 잇따라 특별상을 받으면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정점은 지난달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였다. 이 콩쿠르의 최종 후보에 오르면 다음 경연에는 지원할 수 없다. 김태한에겐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던 셈이다.

"뭔가 '승부처가 왔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프로그램을 잘 짜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프로그램을 50번이나 고친 것 같아요. '김태한은 이런 성악가'란 걸 보여주기 위해 곡 순서부터 곡의 언어까지 하나하나 전략을 갖고 구성했습니다. 베르디 '돈 카를로'의 아리아를 이탈리아어가 아닌 불어로 부른 것이 대표적이죠. 벨기에가 프랑스어권이기도 하고 마지막 가사가 ‘플랑드르를 구해주세요’인데, (콩쿨이 열리는) 벨기에가 플랑드르 지역인 점을 감안해 불어로 선곡했습니다. "

결선 무대는 그에게 우승컵과 함께 '자신감'이란 큰 선물을 안겨줬다. 벨기에 보자르 홀을 꽉 채운 2000여 명의 외국 관객들이 건네는 '압박감'을 짜릿함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부담이 된다고 하지만, 저는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객석을 꽉 채운 관객들과 하나가 된다는 기분이 황홀했습니다. 그래서 더 경연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우승 직후 그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오페라 슈퍼스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 소감이 클래식계에선 화제가 됐다. 김태한은 "말을 하다보니 '오페라 스타' 만 얘기를 했지만, 실제론 '가곡 스타'도 되고 싶다"며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처럼 가곡을 잘 부르는 것도 목표중 하나"라고 말했다.

"오페라는 이미 있는 캐릭터를 나만의 캐릭터로 승화하는 음악입니다. 반면 가곡은 저의 해석이나 재량에 따라 아예 음악 자체가 달라집니다. 이러니, 제가 가곡의 매력에 빠질 수 밖에요."

오페라에 대해선 더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페라를 둘러싼 오랜 논쟁이 있습니다. 대중화로 가느냐, 정통성을 지키느냐. 저는 일단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중 없이 어떻게 예술이 살아남겠습니까. 티켓값을 떨어뜨려서라도 오페라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태한은 자신의 퀸 엘리자베스 우승이 국내에서 오페라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콩쿠르를 통해 성악에 대한 인기가 오른다면 주저하지 않고 또 출전할 것"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BBC 카디프 국제 성악 콩쿠르,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최하는 오페랄리아 콩쿠르 등 다른 콩쿠르에 도전하고싶다"고 했다.

그는 궁극적인 목표로 '감동을 주는 성악가'를 꼽았다.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길이다. 선화예고 1학년 시절 독일에서의 기억이 그의 목표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교 1학년 시절 독일에서 친구들과 연주를 한 경험 덕분에 지금도 성악가로 버티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노래를 통해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는 경험을 했어요. 독일의 한 작은 홀에서 친구들과 김효근의 ‘내 영혼 바람되어’를 불렀어요. 한국말로요. 그걸 독일 사람들이 듣더니 몇몇이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이런 게 음악의 힘 아닐까요.”

김태한은 오는 9월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오픈 스튜디오 멤버로 들어간다. 10월에는 한스 아이슬러 국립 음대에서 공부할 예정이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