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일방적으로 흑해곡물협정 종료를 선언하면서 세계 농산물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식품업계에 대한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압박 등으로 안정세를 이어가는 국내 가공식품 가격도 해외 계약물량이 국내로 들어올 때까지 걸리는 반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다시 상승 압박을 받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T)에 따르면 전날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흑해곡물협정 종료를 발표한 뒤 밀 선물 가격은 이날 장중 3.49% 급등해 부셸당 6.89달러로 치솟았다. 김광래 삼성선물 연구원은 “러시아가 협상에 복귀하기 전까지는 밀 가격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옥수수 선물 가격은 부셸당 5.26달러까지 뛰었고, 대두 선물 가격은 부셸당 13.88달러까지 올랐다.

세계적 이상기후 현상도 농산물 가격을 자극하고 있다. 설탕의 원료인 원당 선물은 지난 4월 말 파운드당 24.3센트를 넘어서며 11년 반 만에 최고가를 경신했다. 주요 생산국인 인도에서 가뭄으로 사탕수수 생산량이 대폭 줄어서다.

글로벌 원재료 가격이 들썩이자 올해 들어 경기 부진 등으로 가뜩이나 고전 중인 국내 식품업계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원가 부담을 가중하는 요인이 하나둘이 아닌데도 최근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이 전방위적으로 거세지고 있어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분기에 SPC삼립(전년 동기 대비 7.7% 증가), 롯데칠성(2.4%) 등은 영업이익이 한 자릿수 증가에 그친 것으로 추정된다. CJ제일제당(-36.0%), 대상(-46.9%), 하이트진로(-50.5%) 등은 감소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으로 분석된다.

연간으로 기간을 넓게 잡아도 실적 둔화 흐름에는 큰 차이가 없을 전망이다. 오리온, 롯데칠성, SPC삼립, 삼양식품 등은 올해 영업이익 증가세가 지난해보다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대형 업체를 중심으로 해외시장 공략으로 국내 실적 악화분을 상쇄하고 있지만, 흑해곡물협정발(發) 원가 부담이 더해지면 수익성을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식품·증권업계의 시각이다.

한경제/뉴욕=박신영 특파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