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조림똥 괴짜'가 섰던 나무 발판…伊 근현대 걸작의 '서울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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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미술관
아트선재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현대 미술에 영향 준 '아르테 포베라'
일상의 값싼 것들로 작품 만드는 사조
유럽 미니멀리즘과 팝아트의 효시
거울 앞 '피스톨레토 조각' 설치 작품
관람객 비치며 작품의 일부로 느껴져
'예술가의 똥'으로 유명한 만초니
생전 발판위 춤추며 "이게 진짜 조각"
-자세한 내용은 기사 하단에 있습니다.
오늘도 미술관
아트선재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현대 미술에 영향 준 '아르테 포베라'
일상의 값싼 것들로 작품 만드는 사조
유럽 미니멀리즘과 팝아트의 효시
거울 앞 '피스톨레토 조각' 설치 작품
관람객 비치며 작품의 일부로 느껴져
'예술가의 똥'으로 유명한 만초니
생전 발판위 춤추며 "이게 진짜 조각"
이탈리아를 빼놓고는 결코 세계 미술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헬레니즘 미술이 유럽을 넘어 신라의 석굴암 불상에까지 영향을 미친 건 그리스 미술을 고도화하고 널리 퍼뜨린 로마 제국 덕분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등 피렌체의 르네상스 거장들은 세계 문화의 판도를 바꿔놨고, 베네치아에서 활동한 티치아노와 틴토레토 등은 중세 유럽 왕족이 가장 선호하는 ‘1타 화가’였다. 카라바조는 바로크 회화의 문을 열어젖힌 거장이다. 이런 이탈리아 미술은 루벤스와 고야 등 후대의 수많은 중세와 근세 유럽 거장들에게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여기까진 국내에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현대미술의 영향력과 매력도 과거 못지않게 찬란하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전 세계 현대미술에 영향을 준 미술사조 ‘아르테 포베라’가 단적인 예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흔하고 값싼 것들로 작품을 만드는 이 사조는 유럽 미니멀리즘과 팝아트의 효시로 꼽힌다. 하지만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 전시는 이탈리아 근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전시장에 적혀 있는 작가들의 이름은 조금 낯설지만, 작품 중에 왠지 낯익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다. 김장언 아트선재센터 관장은 “작품들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건 아르테 포베라가 전 세계 미술에 영향을 미치며 스며들었기 때문”이라며 “유럽으로 유학 간 작가들을 통해 1970~1980년대 한국 현대미술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건 아르테 포베라의 거장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청동 조각을 거울 앞에 세운 설치작품 ‘에트루리아인’이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된 적 있는 유명 작품으로, 가까이 다가간 관람객은 거울에 모습이 비치며 작품의 일부가 된다. 현대미술 거장 피에로 만초니가 자신의 발자국을 나무 좌대 위에 새긴 ‘마법의 발판’도 주목할 만하다. 만초니는 자신의 대변을 통조림에 넣은 뒤 ‘예술가의 똥’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개념미술로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작가. 생전 만초니는 이 발판 위에 서서 각종 포즈를 취하거나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이게 바로 진짜 조각”이라고 했다. 포스터 작품이자 이탈리아 신표현주의 작가 산드로 키아의 1990년대 그림인 ‘무제’도 인상적이다. 걸어가는 사람의 몸이 마치 바람에 펄럭이며 밀려나는 것처럼 표현돼 있는 조각은 움베르토 보초니의 유명 작품 ‘공간에서 연속하는 단일한 형태’로, 일부 백과사전에 작가와 별도로 작품명이 실릴 정도로 이름 난 작품이다. 마리오 마리니의 소박하면서도 힘 있는 조각 ‘말’ 역시 작품명은 몰라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작품들이 속한 ‘파르네시나 컬렉션’은 이탈리아 외교협력부의 컬렉션이다. 예술과 무관한 정부 부처가 미술품 컬렉션을 시작한 배경이 재미있다. 1960년대까지 외무부는 금과 대리석으로 장식된 로마 시내의 유서 깊은 건물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로마 변두리의 소박하고 특색 없는 건물로 이전하게 됐고, 직원들은 크게 실망했다. 독일 주재 외교관으로 활동하다 1998년 귀국한 움베르토 바타니 베네치아 국제대학 총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현대미술 작품으로 건물을 꾸미기로 했다.
특이한 건 이 컬렉션이 소장품이 아니라 대여한 작품들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컬렉션에 포함된 작품도 수시로 바뀐다. 바티니 총장은 “대여는 예산이 적게 들뿐더러 이탈리아 현대미술의 변화상을 실시간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처음 로비에만 걸렸던 미술품들은 지금 7층 건물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덕분에 외교협력부는 이탈리아를 방문하는 외국 VIP들에게 국가의 위상을 과시하면서도 예술이라는 소재로 협상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있다. 컬렉션은 해외 전시를 통해 이탈리아의 현대미술을 알리는 역할도 한다. 이번 전시는 순회전으로 앞서 일본, 인도, 싱가포르를 거쳐 한국에 도착했다.
이번 전시 기획은 세계적 미술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인 아킬레 보니토 올리바(84)가 맡았다. 그는 백남준이 베네치아비엔날레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할 때(1993년) 총감독을 맡았던 인물이다. 1995년에는 베네치아비엔날레에 한국관을 설치하는 데 도움을 주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이탈리아 현대미술의 ‘창의적 기풍’을 한국 관객들이 즐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씩 웃으며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미술관 3층에서 열린다. 넓지는 않지만 올해 초 리모델링을 마친 아트선재센터 공간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높은 수준의 작품과 큐레이팅, 은은한 조명 덕분에 서울 한복판에서 잠시나마 유럽의 전통 있는 작은 미술관에 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전시는 다음달 20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등 피렌체의 르네상스 거장들은 세계 문화의 판도를 바꿔놨고, 베네치아에서 활동한 티치아노와 틴토레토 등은 중세 유럽 왕족이 가장 선호하는 ‘1타 화가’였다. 카라바조는 바로크 회화의 문을 열어젖힌 거장이다. 이런 이탈리아 미술은 루벤스와 고야 등 후대의 수많은 중세와 근세 유럽 거장들에게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여기까진 국내에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현대미술의 영향력과 매력도 과거 못지않게 찬란하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전 세계 현대미술에 영향을 준 미술사조 ‘아르테 포베라’가 단적인 예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흔하고 값싼 것들로 작품을 만드는 이 사조는 유럽 미니멀리즘과 팝아트의 효시로 꼽힌다. 하지만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 전시는 이탈리아 근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전시장에 적혀 있는 작가들의 이름은 조금 낯설지만, 작품 중에 왠지 낯익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다. 김장언 아트선재센터 관장은 “작품들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건 아르테 포베라가 전 세계 미술에 영향을 미치며 스며들었기 때문”이라며 “유럽으로 유학 간 작가들을 통해 1970~1980년대 한국 현대미술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건 아르테 포베라의 거장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청동 조각을 거울 앞에 세운 설치작품 ‘에트루리아인’이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된 적 있는 유명 작품으로, 가까이 다가간 관람객은 거울에 모습이 비치며 작품의 일부가 된다. 현대미술 거장 피에로 만초니가 자신의 발자국을 나무 좌대 위에 새긴 ‘마법의 발판’도 주목할 만하다. 만초니는 자신의 대변을 통조림에 넣은 뒤 ‘예술가의 똥’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개념미술로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작가. 생전 만초니는 이 발판 위에 서서 각종 포즈를 취하거나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이게 바로 진짜 조각”이라고 했다. 포스터 작품이자 이탈리아 신표현주의 작가 산드로 키아의 1990년대 그림인 ‘무제’도 인상적이다. 걸어가는 사람의 몸이 마치 바람에 펄럭이며 밀려나는 것처럼 표현돼 있는 조각은 움베르토 보초니의 유명 작품 ‘공간에서 연속하는 단일한 형태’로, 일부 백과사전에 작가와 별도로 작품명이 실릴 정도로 이름 난 작품이다. 마리오 마리니의 소박하면서도 힘 있는 조각 ‘말’ 역시 작품명은 몰라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작품들이 속한 ‘파르네시나 컬렉션’은 이탈리아 외교협력부의 컬렉션이다. 예술과 무관한 정부 부처가 미술품 컬렉션을 시작한 배경이 재미있다. 1960년대까지 외무부는 금과 대리석으로 장식된 로마 시내의 유서 깊은 건물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로마 변두리의 소박하고 특색 없는 건물로 이전하게 됐고, 직원들은 크게 실망했다. 독일 주재 외교관으로 활동하다 1998년 귀국한 움베르토 바타니 베네치아 국제대학 총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현대미술 작품으로 건물을 꾸미기로 했다.
특이한 건 이 컬렉션이 소장품이 아니라 대여한 작품들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컬렉션에 포함된 작품도 수시로 바뀐다. 바티니 총장은 “대여는 예산이 적게 들뿐더러 이탈리아 현대미술의 변화상을 실시간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처음 로비에만 걸렸던 미술품들은 지금 7층 건물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덕분에 외교협력부는 이탈리아를 방문하는 외국 VIP들에게 국가의 위상을 과시하면서도 예술이라는 소재로 협상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있다. 컬렉션은 해외 전시를 통해 이탈리아의 현대미술을 알리는 역할도 한다. 이번 전시는 순회전으로 앞서 일본, 인도, 싱가포르를 거쳐 한국에 도착했다.
이번 전시 기획은 세계적 미술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인 아킬레 보니토 올리바(84)가 맡았다. 그는 백남준이 베네치아비엔날레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할 때(1993년) 총감독을 맡았던 인물이다. 1995년에는 베네치아비엔날레에 한국관을 설치하는 데 도움을 주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이탈리아 현대미술의 ‘창의적 기풍’을 한국 관객들이 즐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씩 웃으며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미술관 3층에서 열린다. 넓지는 않지만 올해 초 리모델링을 마친 아트선재센터 공간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높은 수준의 작품과 큐레이팅, 은은한 조명 덕분에 서울 한복판에서 잠시나마 유럽의 전통 있는 작은 미술관에 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전시는 다음달 20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