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에서 마이크 사용은 옳은가 그른가? 지난달 어느 연극의 제작발표회에서 소극장임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를 착용하는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한 배우가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무대에 설 경우 가짜 연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복귀한 이번 연극에서는 마이크를 사용하고 영화나 TV 드라마에서와 같이 나의 연기를 하고 싶었다."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그런데 이 발언이 뒤늦게, 그것도 기자가 아니라 다른 작품에 출연 중인 선배 배우의 SNS를 통해 조명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짐작컨대 답변의 취지보다는 ‘가짜 연기’라는 표현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연극의 연기는 ‘가짜 연기’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에 지어져 지금까지 그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에피다우로스 극장은 1만4000석 규모의 초대형 노천극장이지만, 당시 배우들은 바로 이곳에서 주옥같은 비극과 희극들을 육성으로 공연했다. 1599년 건축돼 셰익스피어의 수많은 히트작들을 배출했던 런던의 글로브 극장도 객석 900석, 입석 700석의 대극장이었다. 만약 이 연극들이 ‘가짜 연기’에 의한 것이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오이디푸스 왕>도 <햄릿>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연극에서 마이크 사용 옳은가, 그른가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와 16세기 런던의 배우들은 어떻게 마이크 없이 연극을 할 수 있었을까?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지혜롭게 인프라를 구축하고 몸을 단련했기 때문일 것이다. 에피다우로스 극장은 무대 정중앙에서 떨어뜨린 동전 소리가 맨 뒷자리까지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완벽한 음향 효과를 재연한다.

대사가 운문이라는 점 역시 중요하게 작용했다. 19세기 후반 입센과 체호프 이전의 모든 연극은 운문으로 쓰였다. 희랍 비극은 짧고 긴 운율을 여섯 번 반복하는 단장 6보격 운율로 쓰였다.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가장 일반적인 운율 패턴은 약-강의 강세로 이루어진 운율 단위가 한 줄에 다섯 번 반복되는 형식이었다. 이렇게 균형 잡힌 약한 강세와 강한 강세가 반복되는 패턴은, 현대극의 대사처럼 날렵하거나 속삭이지는 않더라도, 마치 노래처럼 배우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흐름과 감정을 살리면서도 크고 분명하게 객석 끝까지 대사를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왔다.

딱히 극장이라 할 수 없는 야외에서 공연되던 우리 전통극에도 4·4조의 운율이 많이 쓰였으며, 판소리에서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 등 대체로 4분박 형태의 장단에 맞추어 4음보격의 사설이 사용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근대 이후 우리 연극은 희랍 비극이나 셰익스피어의 유산에 전통극의 장점을 접목시키며 발전해 왔다. 하지만 산업화와는 거리가 멀었던 2000년대 이전, 극단 주도의 연극 신에서 고가의 와이어리스 핀 마이크 사용은 대개 언감생심이었다. 그래서인지 현장에 있다 보면, 배우들 스스로 소위 ‘연극 발성’이 되는 배우와 그렇지 않은 배우의 급을 나누거나, 마이크를 사용하는 연극을 부끄럽게 여기는 경우를 종종 마주치곤 한다.

하지만 연극에서의 마이크 사용을 그 자체만으로 옳고 그름의 잣대 위에 놓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다. 앞서 말했듯이 마이크 사용은 공연장 규모는 물론, 규모와는 별개로 건축 자체의 음향 환경, 대사의 문체와 배우의 발성 스타일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연극에서 마이크 사용은 전자식 마이크가 개발된 1920년대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늘날 보편적인 와이어리스 핀 마이크는 1960년대에 등장했다. 이로 인해 대사 전달이 용이해지면서 배우들은 목소리의 세기와 음량을 조절하여 더욱 표현력 있고 다이내믹한 연기를 하고, 영상매체에서처럼 산문 대사로 일상 그대로의 모습을 연기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배우가 동시다발적으로 대사를 하거나, 대사와 동시에 음향효과나 배경음악을 사용하는 것도 보편화되었다. 결국 ‘가짜 연기’의 반대말을 ‘진짜 연기’라 칭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실주의적인 연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극에서 마이크 사용 옳은가, 그른가
그런데 ‘연극 무대’에서 ‘진짜 연기’란 마이크만 있으면 가능할까? 연극에서 마이크 사용의 이상적인 목표는 바로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들리게 하는 것이다. 미디의 목표가 실제 악기 소리를 완벽하게 구현하여, 미디가 아닌 악기로 연주한 것처럼 들리게 하는 것이듯, 마이크의 목적은 목소리를 확대하고 표현의 뉘앙스는 살리되 마이크를 쓰지 않는 것처럼 들리게 하는 데에 있다.

셰익스피어의 후예인 웨스트엔드의 공연들을 보면 연극은 물론 심지어 뮤지컬에서도 핀 마이크를 사용하는 것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확성의 정도가 자연스럽다. 핀 마이크의 위치도 머리와 이마의 경계선이나 귀 옆 구레나룻에 숨겨 잘 보이지 않는다. 연극에서는 핀 마이크 대신 무대 곳곳에 지향성이 강한 샷건 마이크를 숨겨두어 멀리서 발화하는 배우의 목소리를 포착하기도 한다.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는 관객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스피커로 객석에 들리는 소릿값과 무대 위 배우의 자연 발성 값이 조화로워야 한다. 무대 위 육성보다 객석의 확성이 지나치게 클 경우, 관객에게 배우의 소리는 그가 무대 전후좌우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평면적으로 들린다. 라이브 공연의 필수 요소인 라이브니스, 즉 스피커에서 전달되는 소리가 갖추어야 할 현장감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한편, 무대 위 배우가 ‘공기 반 소리 반’으로 속삭이거나 말끝을 흐릴 경우, 스피커로 객석에 들리는 소리가 무대 위 육성과 조화를 이루기는 힘들다. 영상매체에서는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붐 마이크가 클로즈업 한 배우들의 실낱같은 목소리도 흡음하여 촬영할 수 있다. 연극배우가 처음 출연할 경우 아무리 작게 소리를 내도 ‘과하다’라는 지적을 듣기 십상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두 시간가량의 라이브 무대에서 소릿값이 제각각인 다수의 배우가, 근접한 상대의 목소리까지 빨아들이는 핀 마이크를 착용한 채 이합집산을 반복할 경우, 특히 출연진과 극장의 규모가 클수록 모든 소리를 또렷하게 포착하여 객석에 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연극에서 마이크 사용 옳은가, 그른가
결국 연극에서 마이크 사용은 선택의 문제다.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가짜 연기’도 아니요, 사용하는 것이 ‘진짜 연기’인 것도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한 무대에 선 배우들의 발성 스타일과 소릿값이 얼마나 균등한가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대 위 모든 배우가 자신의 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 동료들의 소리를 듣는 것에도 집중해야 한다.

오페라의 프리마돈나도 합창단과 함께 조화롭게 노래할 수 있는 것처럼, 동료들의 소리에 따라 각자의 소리를 키울 줄도, 줄일 줄도 알 때에 비로소 연극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연극이란 무대, 배우, 관객의 ‘소통’으로 창조된 하나의 세계이다. 우리가 ‘가짜’ 혹은 ‘진짜’ 연기라는 표현에 매몰되어 소통하지 못할 때, 그 세계의 벽에 균열이 생기고, 관객들은 손가락 사이로 떨어지는 모래알처럼 균열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