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친 손을 거쳐…내앞에 향긋한 커피가 왔다
‘별다방’과 ‘콩다방’이 전국적으로 기세를 떨치던 2010년 무렵. 이제 겨우 아메리카노가 국민 음료 대열에 오르고 있을 때 몇몇 카페에서 ‘스페셜티 커피’라는 이름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뜻이 뭔지 정확히 몰랐지만, 일반 커피와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커피 산지의 국가명이나 농장, 농부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 맛과 향에 대한 설명과 비유가 따라붙었다는 것. 그리하여 희미하게나마 지구 어딘가 꽤 먼 곳과 내가 있는 이곳이 연결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거다. 물론 기존 커피에 비해 가격이 좀 비싸다는 것까지 포함해서.

10여 년이 지나 그 스페셜티 커피도 흔해졌다. 커피는 지금 우리에게 ‘마실 것’ 그 이상이다. 하루를 깨우는 루틴으로, 지친 몸을 잠시나마 일으키는 연료로,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동력으로, 어딘가로 향하게 하는 목적지로 기능한다. 스페셜티 커피가 일상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리가 몰랐던 수많은 청년의 고민과 수고와 노력이 숨어있다. 그들은 지구 반대편의 그 멀고 먼 ‘커피벨트’를 찾아가 농부들을 마주하고, 산지를 탐험했다. 더 건강한 방식으로 소규모 농가들과 ‘관계’를 맺고 매년 그해 최상 품질의 다양한 원두를 국내에 직접 들여오는 데 시간과 비용을 들였다. 다이렉트트레이딩이라는 이름으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고집스럽게 해왔다는 얘기다.

커피는 원래 불편한 음료다. 커피 생산과 거래를 둘러싼 힘의 불균형은 여전히 존재한다. 유럽 식민지이던 땅에서만 유독 잘 자랐던 커피나무. 지금의 커피는 역사적으로 서구의 수요를 맞추기 위한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어쩔 수 없는 노동에서 비롯됐다. “더 오래, 지금처럼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 있을까”란 질문에 커피산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머뭇거린다. 기후의 문제, 무역 분쟁과 가격의 문제, 노동력의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다. 그런 불균형에 작게나마 균열을 내는 게 지금의 스페셜티 커피 종사자들이다.

습관처럼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을 두고 피곤한 의무감을 강요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앞으로도 커피를 마시는 일이 지금처럼 지속되려면 머나먼 커피 산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 지난 10년간 중남미와 인도 등 산지를 다니며 소규모 농가들과 일해온 프릳츠커피 전문가, 그리고 커피라는 취미를 핑계 삼아 커피 산지로 여행을 즐기는 한 커피 칼럼니스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알면 다르게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이번 호 웨이브를 읽고 단 한 사람이라도 산지의 노동과 커피 트레이더들의 수고를 알아차려 주기를. 일상을 지탱하는 음료로서의 커피가 우리 곁에서 오랫동안 시들지 않기를.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