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 할인율 제한' 도서정가제에 또 합헌 결정 나왔다
책의 가격 할인 폭을 제한한 도서정가제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오는 11월 정부의 도서정가제 3년 주기 재검토 시한을 앞두고 이와 같은 판결이 나오면서 현행 도서정가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헌재는 도서정가제를 규정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22조’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20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헌재는 “지나친 가격 경쟁으로 인한 간행물 유통 질서의 혼란을 방지함으로써 출판산업과 독서문화가 상호작용해 선순환하는 출판문화산업 생태계를 보호·조성하려는 이 사건 심판 대상 조항의 입법목적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헌재는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종이책 매출이 감소하고 지역 서점의 매장 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는 인터넷 발달과 같은 사회 경제적 환경의 변화가 초래한 결과로 도서정가제와 같은 독과점 방지 장치가 없었다면 이와 같은 현상이 더욱 가속화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종이 출판물 시장에서 자본력, 협상력 등의 차이를 그대로 방임할 경우 지역 서점과 중소형출판사 등이 현저히 위축되거나 도태될 개연성이 매우 높고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화적 다양성 축소로 이어진다”며 “가격할인 등을 제한하는 입법자의 판단은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고 봤다.

출판 후 일정 기간이 지난 도서는 자유롭게 할인하게 해달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구간 도서를 가격할인을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해 간행물 유통 질서를 해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가격경쟁력 차이로 인해 신간 도서의 제작·판매가 위축될 개연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형 서점에만 정가 판매 등 의무를 부과하면 현행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조차 가격할인을 제공할 여력이 없는 다수의 중소형서점은 시설과 서비스경쟁력에서는 대형서점에, 가격경쟁력에서는 강소형서점에 뒤처지는 등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경쟁환경 속에서 존폐의 기로에 내몰릴 개연성이 높다”고 했다.

전자책을 도서정가제 적용 예외로 해달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략적으로 종이출판을 포기하고 전자출판물만을 출판하는 형태가 증가할 것”이라며 이 경우 종이출판 산업과 오프라인 서점이 쇠퇴하는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서정가제는 유통 과정에서 정해진 비율 이상으로는 책값을 할인할 수 없도록 정한 제도를 말한다. 2014년 개정된 후 정가의 10%까지만, 각종 마일리지까지 포함하면 최대 15%까지만 할인할 수 있도록 제한을 뒀다.

이번 헌법소원을 청구한 A씨는 웹소설 작가로 온라인 전자책 서비스 플랫폼 업체 설립을 준비하던 중 도서정가제로 인해 책 시장이 위축됐다며 2020년 헌법소원을 냈다.

청구인 측은 당시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한정하거나 출간 후 일정 기간이 지난 구간은 법 적용을 제외하는 등 대안이 있는데도 강력히 제한하기만 한다”고 주장했다.

헌재 관계자는 “도서정가제를 정한 출판법 규정이 간행물 판매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에 관해 판단한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출판계는 대체로 헌재의 결정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성명을 통해 “오늘 판결은 지난 2014년 개정 강화된 현행 도서정가제의 취지의 정당성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준 것”이라며 “출판문화와 책 생태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판결을 통해 점점 더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면서도 가격 및 유통 방식에 있어 혼란이 계속되고 있던 전자책에 대한 도서정가제 정책 적용 방식에 원칙이 잡혔다”며 “저작자와 출판사들의 저작물 창작과 유통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한국출판인회의도 “전자출판물에 대해서만 도서정가제 조항을 적용하지 않을 경우 종이출판산업이 쇠퇴할 것이 자명하고, 건강한 출판생태계 조성이라는 도서정가제 목적의 효용성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매우 타당하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전자책 업계와 도서관 측에서는 반대하는 여론이 높다. 전자책 사업자는 웹소설과 웹툰 등의 웹콘텐츠를 종이책과 동일하게 정가 판매 대상으로 규정한 점을, 도서관 측은 도서정가제 개정으로 할인율이 감소하면서 장서 구입량이 줄어든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이번 합헌 결정은 올해 11월까지인 정부의 도서정가제 타당성 검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행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도서정가제 유지 타당성을 3년마다 검토해 폐지, 강화, 완화 또는 유지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11월에도 제도 개편을 놓고 논란이 있었지만 현행 유지로 결론이 났다. 그로부터 3년 뒤인 오는 11월까지 다시 타당성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