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낮 최고 기온이 48도로 20일 연속 43.3도(화씨 110도)를 넘겼다. 기상 관측 이래 최장 기록이다. 시 당국은 낮에 외출할 때 반드시 주변에 행선지를 알리고 휴대폰 배터리와 차량 상태를 확인하라고 경고했다. 45도가 넘으면 스마트폰이 과열로 다운되기도 한다. 길에서 넘어지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아스팔트 온도가 80도에 육박해 몇 초 만에 화상을 입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환경과학기술 저널은 “블랙아웃으로 에어컨이 멈추면 피닉스 인구 절반이 입원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마리아 네이라 세계보건기구(WHO) 환경·기후변화·보건국장은 “각국 정부는 폭염 피해를 관리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미국 남부뿐 아니라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남유럽과 중국 내륙, 중동 등 세계 곳곳에서 온열 질환으로 사망하는 등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지구 다른 쪽에선 대형 산불과 집중호우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인류가 받을 재난 청구서가 사상 최대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기상재난 피해 규모, 핀란드 GDP 육박

폭염·홍수·산불 피해 年3000억弗…'열받은 지구'가 내민 청구서
영국 ‘데이터 속 세계’ 연구소가 옥스퍼드대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6~2020년 기상 재해로 전 세계가 입은 피해액은 연평균 1629억2157만달러로 30년 전인 1986~1990년 193억1124만달러의 여덟 배가 넘었다. 라인강 대홍수가 독일과 벨기에를 할퀸 2021년 피해액은 2452억달러에 달했고, 파키스탄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긴 작년 피해액은 2750억~3130억달러가량으로 추정된다. 핀란드의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태풍 시즌에 엘니뇨(동태평양 해수면 온도 상승)의 영향으로 대형 재난이 발생할 가능성도 커졌다. 이상 고온이 지속된 이후에는 집중호우가 뒤따르고, 태풍도 거세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파키스탄을 국가 부도로 몰아넣은 대홍수는 같은 해 봄 높은 기온이 지속된 여파라는 분석이 있다. 이탈리아 북부는 올봄까지 70년 만에 가장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는데, 지난 5월 중순 불과 3시간 만에 연간 강수량의 3분의 1에 달하는 400㎜의 비가 쏟아져 피해를 입었다.

○‘뉴노멀’이 된 기상이변


최근 수년 동안 폭염과 폭우 등이 일상화해 더 이상 ‘기상이변’이 아니라는 얘기도 나온다. 2015년 유엔 파리기후협정 당시 전문가들은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후 1.5도 이하로 제한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달 지구 온도는 17도에 달해 12만 년 만에 가장 높았고, 산업화 시기인 1850~1900년에 비해 1.47도가량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오차 범위를 고려하면 마지노선을 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니퍼 프랜시스 우드웰기후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에 “일부 지역은 생존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기온이 올라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선 동시에 발생한 기상 이변이 상호 작용을 일으켜 이른바 ‘퍼펙트 스톰’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캐나다 산불은 남한 면적보다 넓은 10만1171㎢의 산림을 불태웠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달엔 한국 일본 인도뿐 아니라 미국 북동부의 집중호우로 피해가 속출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유엔 기후변화 패널 자료를 인용해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동시에 또는 빠르게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두 개 이상의 기후 재난이 벌어지면 개별 부분의 합보다 훨씬 극심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해 예방 인프라에 돈 쏟는 정부


주요 선진국은 온실가스를 감축해 기후 변화를 억제하는 장기 과제뿐만 아니라 눈앞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 인프라 투자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네 반데카스틸레 유럽환경청(EEA) 연구원은 뉴욕타임스에 “각국 정부가 전체 행정 단위를 동원해야 한다”며 “건물부터 교통, 건강, 농업, 생산성까지 전 분야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럽에선 최근 기존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신소재로 재포장하는 사업과 도심 교통 거점마다 휴게소를 설치하는 프로젝트 등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2021년 통과시킨 1조달러 규모 인프라 패키지에 포함된 허리케인·홍수 대응 예산 투입 속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현일/오현우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