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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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도 적용 최저임금이 9860원으로 결정된 가운데, '60원'을 두고 파장이 일고 있다. 공익위원들이 중재한 합의안(9920원)을 근로자위원들이 거부하고 1만원만을 고집하면서, 되레 최저시급이 중재안 보다 60원 낮아지는 '자충수'를 둔 꼴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다.

20일 노동계에 따르면 내부에서도 "시급 60원은 저임금 근로자들에게 결코 적지 않은 돈"이라며 근로자위원들의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석호 "민주노총, 시급 60원이 하찮나"

지난 18일 오후 3시 시작된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는 15시간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19일 오전 6시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9860원으로 결정했다.

회의 막바지에 공익위원들은 올해보다 3.12% 인상된 9920원을 합의안(조정안)으로 노사 양측에 제안했다. 이에 대해 사용자위원 9명과 공익위원 9명, 한국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은 찬성의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이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노총 근로자위원들이 결국 민주노총 근로자위원들의 뜻에 따르기로 결정하면서, 근로자위원들은 "사용자안(9860원)과 근로자위원안(1만원)을 각각 표결에 부치자"고 제안했다.

결국 사용자 위원들의 요구안인 9860원이 26표 중 17표를 얻어 채택됐고, 9860원으로 최종 결정되면서 공익위원들이 제시된 합의안 9920원에서 60원이 줄어든 꼴이 됐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부에 ‘합의 결정’이라는 트로피를 안겨주기 싫었던 노동계가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은 19일 본인의 SNS에 “민주노총 조합원 다수에게 시급 60원은 하찮을지 몰라도, 잔업 특근으로 적은 임금을 보충하는 다수의 최저임금 노동자에게 시급 60원은 단순한 60원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1만원 미만에 합의할 수 없다는 명분, 그렇게 합의하면 내부에서 욕먹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9920원을 걷어차고 9860원으로 결정되도록 만든 꼴인데 답답한 노릇"이라며 "민주노총의 시각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전 민주노총 소속 노동운동가 한지원 씨도 “최저임금제도는 영향력에 비해 결정 과정이 가장 엉망인 제도"라며 "노사정 모두 문제지만 특히 민주노총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민주노총은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조직 중 하나지만, 이 제도를 운영할 능력이나 책임이 있는지 회의적이다. 당분간 법으로 결정하는 게 낫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내부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산별노조 관계자는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을 우습게 본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며 “예년처럼 강력하게 항의를 하고 퇴장한 것도 아니고, 표결에 끝까지 참여한 것도 이상하다. 내부에서 불만을 표하는 목소리가 꽤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 역시 합의안에 찬성한다는 의사까지 내놓고도 결국 민주노총에 끌려다니면서 입장을 번복하는 바람에 체면을 구겼다. 제1 노총으로서 명분과 실리 모두 놓쳐버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구속된 김준영 사무총장의 공백을 여실히 느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사무처장의 구속으로 원래 9명이던 최저임금위 근로자위원은 한국노총 추천 4명, 민주노총 추천 4명으로 동수를 이뤘다.

○“시장에서 흥정하듯 결정"...개편 논의 탄력 받나

결국 공익위원들이 양쪽을 어르고 달래면서 접점 찾아가는 주먹구구식 결정 과정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최저임금위 자체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저임금위는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돼 양측이 제시한 최초요구안을 좁혀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당연히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를 쥘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다 보니 공정성 시비에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4일 10차 전원회의에서 근로자위원들은 지난 1일 ‘최저임금이 시간당 9800원대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한 보도가 나온 것을 두고 “정부가 최저임금위에 모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 드러났다”며 공식적으로 문제 삼았다. 근로자위원들은 공익위원들에게 “독립적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겠다는 성명을 내라”고까지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심의가 지체되자 근로자위원들은 “공익위원 역할이 뭐냐”고 문제제기하고 나섰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양측의 요구안을 두고 중재안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호가를 부르듯 무리한 제시안을 내놓는 것도 문제다.

이번 최저임금위 전원회의에서 근로자위원 측은 최초요구안으로 1만2210원을 불렀다. 경영계도 행여나 주도권을 빼앗길까, 동결안을 '디폴트옵션'으로 가져갔다.

결국 35년 묵은 최저임금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엔 노동계도 개편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논의가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최저임금 결정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국노총은 이제 최임위에 결단의 시기를 가지려 한다. 근본적으로 최저임금 제도 취지를 확립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겠다"며 "매년 반복되는 사용자위원의 동결, 업종별 차등적용 주장, 정부의 월권과 부당한 개입에 사라진 최임위의 자율성, 독립성, 공정성을 확립하는 방안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겠다"고 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