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 츠베덴은 달랐다…극한 에너지 쏟아낸 서울시향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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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지휘
베토벤 교향곡 7번
거대한 음향·소리의 균형 살려내
다채로운 색채로 심오한 서정 표현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정교한 앙상블·극적인 표현 돋보여
급한 템포 아쉬우나…유연성·통일성 탁월
베토벤 교향곡 7번
거대한 음향·소리의 균형 살려내
다채로운 색채로 심오한 서정 표현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정교한 앙상블·극적인 표현 돋보여
급한 템포 아쉬우나…유연성·통일성 탁월
오케스트라에서 음악감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똑같은 단원들로 똑같은 레퍼토리를 연주해도 누가 음악감독을 맡느냐에 따라 소리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미 정상급 오케스트라인 뉴욕 필하모닉의 현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이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차기 음악감독으로 선임됐다는 소식에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이 한껏 들떴던 이유다.
지난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츠베덴의 서울시향 공식 데뷔 무대가 열렸다. 그에 대한 높은 관심을 증명하듯 평일 늦은 시간임에도 공연장은 인파로 가득 찼다. 츠베덴이 선보인 작품은 베토벤 교향곡 7번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협연 없이 오로지 지휘자와 악단 간 호흡에 집중할 수 있는 교향곡 레퍼토리로 정면승부를 본 그는 역시 ‘오케스트라 트레이너’란 별명이 아깝지 않은 명장이었다. 서울시향에 정명훈 전 음악감독 시절 이후 ‘제2의 전성기’가 올 것이란 기대를 품어볼 만한 연주였다.
오후 8시. 큰 보폭으로 무대를 걸어 나온 츠베덴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첫 곡은 역동적인 춤곡풍 리듬과 환희의 악상으로 채워진 베토벤 교향곡 7번이었다. 리스트가 ‘리듬의 신격화’, 바그너가 ‘춤의 신격화’라고 예찬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츠베덴은 첫 소절부터 각 악기군의 소리를 섬세히 조율하면서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음향을 만들어냈다. 현악의 포근한 음색과 선명하게 뻗어나가는 목관의 선율, 금관의 깊은 울림은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베토벤 특유의 밝으면서도 웅장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악단이 유기적인 호흡을 이루는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깔끔한 리듬 표현은 작품 고유의 생동감을 살려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장송곡을 떠올리게 하는 2악장에선 츠베덴의 정교한 지휘가 돋보였다. 선율에 새로운 성부가 더해지는 순간순간 아주 얇은 종이를 쌓아 올리듯 색채의 깊이를 더하면서 베토벤의 심오한 서정을 펼쳐냈다. 빠른 스케르초 악장(3악장)에선 베토벤의 에너지와 재치가 면밀히 살아났다. 엄청난 속도로 쏟아지는 음표의 파도에서도 강약 대비, 선율의 방향성 등을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마지막 악장에서 츠베덴은 마치 악단의 능력치를 시험해보겠다는 듯 극한의 속도로 연주를 몰아쳤다. 악상의 순간순간을 온전히 느끼기엔 다소 급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으나, 작품 특유의 격렬함을 극대화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지휘자에 대한 신뢰, 단단한 결속력과 집중력으로 쉼 없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는 연주는 우레와 같은 함성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2부는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쓴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이었다. 그의 교향곡 중 가장 극적인 작품이자 열정적 악상이 들끓는 곡으로 꼽힌다. 츠베덴은 ‘운명’의 주제를 알리는 금관의 팡파르 선율을 거칠다고 느껴질 정도로 장렬한 음향으로 끌어내면서 동성애자였던 차이콥스키가 가혹한 운명에서 느낀 절망감을 전면에 토해냈다.
마치 작은 눈덩이를 굴리며 서서히 몸집을 키우듯 섬세하게 진행되는 셈여림 변화와 소리의 길이까지 꿰맞춘 듯 하나로 통일된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게 연주하는 기법)에서 악단이 츠베덴의 지휘와 해석에 온전히 몰입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각 악기군의 음색을 켜켜이 포개가며 만들어내는 응축된 에너지와 풍성한 색채, 강한 추진력은 일관성 있게 나타났다. 전경에 자리할 때 명료한 음색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다가도 금세 소리를 줄여 기꺼이 후경으로 빠지는 현악과 관악의 정교한 앙상블은 입체적인 음향을 살려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느린 2악장에선 관악과 현악으로 이뤄지는 두 개의 선율이 정교하게 맞물리면서 우수에 젖은 차이콥스키의 서정을 살려냈다.
스케르초 악장(3악장)에선 활 없이 오로지 오른손 손가락으로 현을 튕기면서 소리 내는 피치카토가 주를 이루는데, 현을 뜯는 세기를 정교하게 조율하면서 진동의 폭까지 맞춰내는 현악의 안정적인 음향 덕에 그 위에 덧입혀지는 목관의 유려하면서도 묘한 선율의 매력이 한껏 살아났다. 마지막 악장은 1부와 마찬가지로 통상 연주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진행됐다. 현악의 단단한 음향과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금관의 울림, 목관의 맑은 색채가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밀도 높은 연주는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의 긴장감을 선사했다.
현악의 아티큘레이션은 귀에 꽂힐 정도로 선명했고, 음역에 따라 색채까지 바꿔가면서 풍성한 음향을 만들어내는 관악의 유연함은 환희의 감정을 쏟아내기에 적절했다. 스위치를 번갈아 누르듯 순식간에 소리의 강약과 표현의 완급을 변화시키는 츠베덴의 지휘는 청중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뒤로 갈수록 급해지는 템포에 일부 구간에서 소리가 어긋난 점은 아쉬웠으나, 전체 악기군이 통일성을 잃지 않고 본연의 색채와 리듬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상쇄할 만했다.
"이제 우리의 여정은 시작됐다. 당신들과 놀라운 결과를 만들 것을 100퍼센트 확신한다." 이번 공연을 앞두고 츠베덴이 서울시향에 건넨 말이다. 그의 말이 헛되지 않음을 믿도록 할 만큼, 츠베덴과 서울시향이 새로 써 내려갈 기록을 기다리도록 할 만큼 가치 있는 무대였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지난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츠베덴의 서울시향 공식 데뷔 무대가 열렸다. 그에 대한 높은 관심을 증명하듯 평일 늦은 시간임에도 공연장은 인파로 가득 찼다. 츠베덴이 선보인 작품은 베토벤 교향곡 7번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협연 없이 오로지 지휘자와 악단 간 호흡에 집중할 수 있는 교향곡 레퍼토리로 정면승부를 본 그는 역시 ‘오케스트라 트레이너’란 별명이 아깝지 않은 명장이었다. 서울시향에 정명훈 전 음악감독 시절 이후 ‘제2의 전성기’가 올 것이란 기대를 품어볼 만한 연주였다.
오후 8시. 큰 보폭으로 무대를 걸어 나온 츠베덴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첫 곡은 역동적인 춤곡풍 리듬과 환희의 악상으로 채워진 베토벤 교향곡 7번이었다. 리스트가 ‘리듬의 신격화’, 바그너가 ‘춤의 신격화’라고 예찬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츠베덴은 첫 소절부터 각 악기군의 소리를 섬세히 조율하면서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음향을 만들어냈다. 현악의 포근한 음색과 선명하게 뻗어나가는 목관의 선율, 금관의 깊은 울림은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베토벤 특유의 밝으면서도 웅장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악단이 유기적인 호흡을 이루는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깔끔한 리듬 표현은 작품 고유의 생동감을 살려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장송곡을 떠올리게 하는 2악장에선 츠베덴의 정교한 지휘가 돋보였다. 선율에 새로운 성부가 더해지는 순간순간 아주 얇은 종이를 쌓아 올리듯 색채의 깊이를 더하면서 베토벤의 심오한 서정을 펼쳐냈다. 빠른 스케르초 악장(3악장)에선 베토벤의 에너지와 재치가 면밀히 살아났다. 엄청난 속도로 쏟아지는 음표의 파도에서도 강약 대비, 선율의 방향성 등을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마지막 악장에서 츠베덴은 마치 악단의 능력치를 시험해보겠다는 듯 극한의 속도로 연주를 몰아쳤다. 악상의 순간순간을 온전히 느끼기엔 다소 급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으나, 작품 특유의 격렬함을 극대화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지휘자에 대한 신뢰, 단단한 결속력과 집중력으로 쉼 없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는 연주는 우레와 같은 함성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2부는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쓴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이었다. 그의 교향곡 중 가장 극적인 작품이자 열정적 악상이 들끓는 곡으로 꼽힌다. 츠베덴은 ‘운명’의 주제를 알리는 금관의 팡파르 선율을 거칠다고 느껴질 정도로 장렬한 음향으로 끌어내면서 동성애자였던 차이콥스키가 가혹한 운명에서 느낀 절망감을 전면에 토해냈다.
마치 작은 눈덩이를 굴리며 서서히 몸집을 키우듯 섬세하게 진행되는 셈여림 변화와 소리의 길이까지 꿰맞춘 듯 하나로 통일된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게 연주하는 기법)에서 악단이 츠베덴의 지휘와 해석에 온전히 몰입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각 악기군의 음색을 켜켜이 포개가며 만들어내는 응축된 에너지와 풍성한 색채, 강한 추진력은 일관성 있게 나타났다. 전경에 자리할 때 명료한 음색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다가도 금세 소리를 줄여 기꺼이 후경으로 빠지는 현악과 관악의 정교한 앙상블은 입체적인 음향을 살려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느린 2악장에선 관악과 현악으로 이뤄지는 두 개의 선율이 정교하게 맞물리면서 우수에 젖은 차이콥스키의 서정을 살려냈다.
스케르초 악장(3악장)에선 활 없이 오로지 오른손 손가락으로 현을 튕기면서 소리 내는 피치카토가 주를 이루는데, 현을 뜯는 세기를 정교하게 조율하면서 진동의 폭까지 맞춰내는 현악의 안정적인 음향 덕에 그 위에 덧입혀지는 목관의 유려하면서도 묘한 선율의 매력이 한껏 살아났다. 마지막 악장은 1부와 마찬가지로 통상 연주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진행됐다. 현악의 단단한 음향과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금관의 울림, 목관의 맑은 색채가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밀도 높은 연주는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의 긴장감을 선사했다.
현악의 아티큘레이션은 귀에 꽂힐 정도로 선명했고, 음역에 따라 색채까지 바꿔가면서 풍성한 음향을 만들어내는 관악의 유연함은 환희의 감정을 쏟아내기에 적절했다. 스위치를 번갈아 누르듯 순식간에 소리의 강약과 표현의 완급을 변화시키는 츠베덴의 지휘는 청중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뒤로 갈수록 급해지는 템포에 일부 구간에서 소리가 어긋난 점은 아쉬웠으나, 전체 악기군이 통일성을 잃지 않고 본연의 색채와 리듬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상쇄할 만했다.
"이제 우리의 여정은 시작됐다. 당신들과 놀라운 결과를 만들 것을 100퍼센트 확신한다." 이번 공연을 앞두고 츠베덴이 서울시향에 건넨 말이다. 그의 말이 헛되지 않음을 믿도록 할 만큼, 츠베덴과 서울시향이 새로 써 내려갈 기록을 기다리도록 할 만큼 가치 있는 무대였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