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발전회사인 강릉에코파워가 공기업 한국전력거래소를 상대로 전력판매단가 인상을 요구하는 가처분 소송을 냈다고 한다. 정부가 약속한 송전망 건설 지체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이는 사정을 반영해 전력도매가를 높여야 한다는 취지다. 강릉에코파워 외 동해지역 다른 발전사들도 공동으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발전회사들이 준정부기관을 상대로 법적 투쟁까지 벌이는 현실은 전력인프라 위기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송전망 부재로 발전을 원천봉쇄당하고 그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경영 부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게 민간 발전업계의 주장이다. 실제로 강릉에코파워는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송전망을 확보하지 못해 가동률이 50% 아래로 떨어졌다. 신한울 원전 2호기, 삼척블루파워 2호기(화력)가 가동되는 내년 초에는 가동률 30% 수준으로 추락이 예고돼 있다. 전력 부족 사태를 우려해 10여 년 전 송전망 확충을 약속하며 발전시설 설립을 독려한 정부도 할 말이 궁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기는 속성상 저장이 어려워 정치한 수급 조절이 필수다. 그럼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어떻게 되겠지’라며 국내 유일의 송배전사업자인 한국전력에 책임을 떠넘기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해왔다. 하지만 탈원전 여파로 지난해 32조원의 천문학적 적자를 기록한 한전은 수십조원이 소요되는 송전선 투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과속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송전선 투자 없이 태양광 패널을 무리하게 확충한 탓에 발전을 강제 중단하는 출력제한 조치가 한 해 수백 회씩 내려지고 있다.

송전망 부재로 전력 생산을 중단하는 현실은 주먹구구식 에너지 정책의 방증이다. 전력망은 어떤 면에선 도로망보다 더 중요한 국가 핵심 인프라다. 송전망 부재로 블랙아웃이 닥치면 ‘산업 혈관’이 막혀 경제가 멈춰 설 수밖에 없다. 반도체·데이터 등 미래 핵심 산업도 대부분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다. 섬이나 마찬가지인 한국은 이웃 국가와의 에너지 교류가 원천봉쇄되는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국가 인프라에 비상벨이 울린 만큼 비상한 각오로 송전망 확충에 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