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무식한 사람은 투표하면 안된다고?
민주주의를 보는 학계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일군의 학자들은 민주주의를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개념으로 여긴다. 자유 평등 행복처럼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란 뜻이다. 몇몇 학자는 민주주의를 단지 수단으로 여긴다. 평화와 번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최근 번역된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는 민주주의를 도구로 본다. 제이슨 브레넌 미국 조지타운대 석좌교수가 2016년에 낸 이 책은 학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가 내놓은 새로운 도구가 에피스토크라시, 즉 똑똑하고 우수한 사람들에게만 정치 참여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지식인에 의한 통치’이기 때문이다.

브레넌은 대표제 민주주의의 근간인 투표권 자체를 공격한다. 그의 주장대로면 유권자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만 투표권을 받는다. 점수가 낮은 사람은 투표권을 아예 박탈당하거나 다른 사람보다 약한 투표권을 가지게 된다. 그는 “무고한 사람의 운명을 무지하고, 편파적이며, 때론 부도덕한 의사결정자의 손에 맡겨선 안 된다”고 역설한다.

브레넌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바라본 사회의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 그는 유권자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사회의 대다수는 정치에 무관심한 ‘호빗’, 그리고 특정 정치 팬덤에 휩쓸리는 ‘훌리건’이 차지한다. 합리적·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의견을 표출하는 ‘벌컨’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유권자가 호빗과 훌리건에 머무르는 것이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브레넌에 따르면 인간은 애초에 그렇게 설계됐다. 개인이 던진 한 표가 사회에 미치는 미미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정치에 무지한 게 오히려 합리적이다. 선입견에 따라 상대방의 주장을 판단하는 인지적 편향도 유권자를 잘못된 길로 이끄는 요소다.

결국 정치는 소수의 벌컨한테 맡겨야 한다는 게 주장의 요지다. 브레넌의 이야기는 민주주의를 없애야 한다는 것보다 민주주의 결합을 이해하는 도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무엇보다 ‘똑똑하고 유능한 유권자’의 기준을 누가 정해야 하고, 과연 정할 수나 있겠는가.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