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양어선 탔던 '참치家 아들', 자본시장 바다에서 월척 낚다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의 신입사원을 뽑는 면접장. 지원자들에게 질문을 거의 하지 않고 노트북에 부지런히 뭔가를 적고 있는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인사부 직원은 아니다. 노트북을 보니 최종 면접까지 올라온 신입사원 후보자의 인적 사항, 장단점, 특징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한국금융지주 계열사 직원들은 입사 후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만난 이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면 ‘깜짝’ 놀란다. 회사 오너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사진)이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신입뿐 아니라 경력직 직원의 최종 면접도 한 명 한 명 챙긴다. ‘인사가 만사다’라고 하는 경영인은 많지만 직원 채용에 이렇게 깊숙이 참여하는 오너는 찾기 어렵다.

김 회장은 매주 화요일 스케줄을 비워 놓는다. 정기 신입사원 공채, 경력직 채용, 전역장교 전형, 해외대학 전형 등 채용 면접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대학 채용설명회 현장을 직접 찾는 것도 김 회장이 세운 원칙. 2003년부터 20년간 매년 국내 주요 대학 채용설명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김 회장의 이런 행보는 외부 행사에 잘 나오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라는 그의 세평과 거리가 있다.

김 회장은 2017년 모교인 고려대에서 열린 채용설명회에서 “경영은 곧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다. 사람만 잘 뽑고, 잘 관리하면 나머지는 그 사람들에 의해 알아서 돌아간다”며 본인의 경영 철학을 설명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인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에게서 배운 철학이다.

김 회장의 학창 시절은 다른 오너 가문과 달랐다. 20대에 참치잡이 원양어선을 타면서 동원그룹을 일군 김 명예회장은 자신의 아들도 인생을 먼저 배우기를 바랐다. 김 회장이 대학 4학년이던 1986년 겨울 북태평양행 명태잡이 원양어선에 선원으로 승선한 것도 아버지의 이런 가르침 때문이다. 김 회장은 ‘제대로 사회생활 한번 해보자’는 각오로 원양어선을 탔다고 한다. 배 위에서 하루 18시간 넘는 중노동을 약 4개월간 버텼다.

업계에선 김 회장을 “금융업을 가장 잘 이해하는 오너 경영인”이라고 평가한다. 밑바닥부터 쌓아온 실전 업무 경험 때문이다. 경영 실적도 꾸준히 성장했다.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총매출은 2005년 1조2778억원에서 지난해 25조281억원으로 17년 사이 약 20배 불어났다.

김 회장은 ‘독서파’ 기업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월평균 10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180㎝가 넘는 건장한 체구의 김 회장이 독서삼매경에 빠진 모습은 기묘하다. 김 회장은 일요일엔 서울 여의도 본사로 출근하는데, 오로지 책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이런 독서 습관도 아버지인 김 명예회장의 교육 철학에서 비롯됐다. 김 명예회장은 어릴 적부터 1주일에 적어도 한 권의 책을 읽고 A4 용지 4~5장 분량의 독후감을 쓰도록 아들을 가르쳤다.

한국투자금융그룹 주요 임직원도 주기적으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 대표도 예외로 빼주지 않는다. 부서장은 홀수달마다, 본부장급 이상 임원은 매달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한다.

성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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