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의 모습. /박시온 기자
서울행정법원의 모습. /박시온 기자
불법 다단계 회사가 만든 전산시스템 자료라도 과세 처분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김순열 부장판사)는 A씨가 마포세무서를 상대로 "종합소득세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최근 원고 청구 기각 판결을 내렸다.

A씨는 2014년 설립된 FX마진거래(외환차익거래) 중개 업체 B사에서 일했다. B사의 설립자는 자사 사업에 투자하면 수익금으로 원금과 이자를 지급해줄 것처럼 투자자들을 속여 약 1조원대의 돈을 가로챈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B사의 투자자 모집책이었던 A씨는 새로운 투자자를 모집해주고 투자금의 일정 비율만큼 모집수당을 받았다. A씨는 3억8000만원에 달하는 모집수당을 받았지만, 이 과정에서 관련 장부를 작성하지는 않았다.

한편 마포세무서는 B사의 전산시스템 자료를 확인해 A씨가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받은 모집수당에 대해 종합소득세 신고를 누락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세무 당국은 2020년 A씨에게 2015년분 7500만원, 2016년분 7200만원을 종합소득세로 경정·고지했다.

A씨는 처분에 불복해 2021년 2월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으나 청구가 기각되자 행정소송을 걸었다. A씨는 "세무서가 과세 근거로 삼은 전산시스템 자료는 아무런 관리와 감독을 받지 않는 불법 다단계회사가 자체적으로 만든 것"이라며 "과세 처분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전산시스템이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세무 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신뢰를 기반으로 유지되는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 특성상 장부를 기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사업 유지를 위한 필수 요소"라고 했다. 이어 "기재된 내용이 사후적으로 변경됐다고 보기 힘들고 관련 형사사건을 맡은 법원도 이 전산시스템 자료를 기초로 피해금액과 모집수당액 등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