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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름의 추억] 콩나물 교실과 선생님의 회초리…그 시절 교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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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1980년대 한국 학교 교실은 '콩나물 교실'로 불렸습니다. 서울 주택가 국민학교(초등학교) 한 학급 학생 수가 80명이 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하는 '2부제'를 시행할 정도였습니다.
    서울 남대문 국민학교 입학식이 열린 1964년 3월 7일 신입생들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서울 남대문 국민학교 입학식이 열린 1964년 3월 7일 신입생들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그런데도 당시 교사들은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유교적 관습에 배어 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매우 순종적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아선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학생에 대한 체벌도 꽤 있었습니다. 숙제를 안 해가면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맞는 일도 많았습니다.
    학부모들이 1964년 3월 7일 서울 남대문 국민학교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입학식을 바라보고 있다. 1960년대에도 한국 부모의 교육열은 높았다. 아이들 입학이나 졸업식엔 모든 일을 제쳐두고 참석했다./한경디지털자산
    학부모들이 1964년 3월 7일 서울 남대문 국민학교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입학식을 바라보고 있다. 1960년대에도 한국 부모의 교육열은 높았다. 아이들 입학이나 졸업식엔 모든 일을 제쳐두고 참석했다./한경디지털자산
    서울 미동 국민학교(초등학교)에서 신입생들이  1988년 3월 4일 교사의 지도에 따라 '앞으로 나란히'를 하고 있다. 당시 입학식 땐, 학교 운동장이 가득 찰 정도로 학생들이 많이 들어왔다./한경디지털자산
    서울 미동 국민학교(초등학교)에서 신입생들이 1988년 3월 4일 교사의 지도에 따라 '앞으로 나란히'를 하고 있다. 당시 입학식 땐, 학교 운동장이 가득 찰 정도로 학생들이 많이 들어왔다./한경디지털자산
    아이들이 벌을 받더라도 대부분의 학부모는 자신의 아이들이 맞을 짓을 해서 그랬다고 여기곤 했습니다.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 일종의 '신뢰'가 형성돼 있었지요.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라 해도 잘못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죠.
    스승의 날인 1986년 5월 15일 서울의 한 국민학교에서 학부모 대표가 교사에게 꽃을 달아주고 있다. 1980~1990년대엔 스승의 날에 학부모들이 담임교사를 대신해 수업을 하곤 했다. 지금도 일부 학교에선 이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한경디지털자산
    스승의 날인 1986년 5월 15일 서울의 한 국민학교에서 학부모 대표가 교사에게 꽃을 달아주고 있다. 1980~1990년대엔 스승의 날에 학부모들이 담임교사를 대신해 수업을 하곤 했다. 지금도 일부 학교에선 이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한경디지털자산
    서울 인창고등학교 학생들이 1982년 2월 10일 졸업식을 마치고 운동장에서 담임 선생님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1970~1980년대 교사들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한경디지털자산
    서울 인창고등학교 학생들이 1982년 2월 10일 졸업식을 마치고 운동장에서 담임 선생님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1970~1980년대 교사들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한경디지털자산
    서울 용산구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졸업식이 열린 1989년 2월 14일 교실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졸업식이 열리면, 많은 여학생들이 교사,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울곤 했다. /한경디지털자산
    서울 용산구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졸업식이 열린 1989년 2월 14일 교실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졸업식이 열리면, 많은 여학생들이 교사,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울곤 했다. /한경디지털자산
    엄한 교사들이 많았지만, 졸업식 땐 많은 학생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스승의 날엔 학부모가 찾아와 교사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고, 선생님 대신 일일교사로 수업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물론 그런 학교들이 있지만 예전엔 많은 학교에서 그런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여름 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이  1986년 7월 16일 서울 미동 국민학교 정문 앞에서 담임 선생님에게 인사하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여름 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이 1986년 7월 16일 서울 미동 국민학교 정문 앞에서 담임 선생님에게 인사하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당시 한국인들은 선진국 학교의 한 학급이 30명 수준이라는 것을 부러워했었습니다. 전문가나 일반인 따로 없이 한국 사람들은 '전인교육'을 실현하려면 교육 환경을 선진국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었죠.

    이제 한국의 학교는 외형적으로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습니다. 한 학급 학생 수는 30명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컴퓨터와 다양한 디지털 기기가 수업을 돕고, 도시락 대신 급식이 제공되고, 냉난방이 가동되고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습니까? 그 시절 우리가 부러워하던 선진국의 교실보다 더 발전한 것 같습니다.게다가 학생인권은 크게 개선됐습니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회초리를 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됐습니다. 학생인권은 '절대가치'로 보호받고 있는 듯합니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가 교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임용된지 2년 밖에 안된 젊은 교사가 교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은 한국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던졌습니다. 특정 학부모가 지속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등 교사의 죽음을 둘러싸고 온갖 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난달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생이 교사를 폭행한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이를 계기로 교권이 땅에 떨어진 현실을 개탄하는 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바라던 '선진국형' 교실이 실현된 것처럼 보이는데,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의 관계는 기형적으로 바뀐 듯 합니다. 콩나물 교실에다 시설은 낙후됐었지만, 단단한 신뢰감이 감돌았던, 그 시절의 교실 풍경이 새삼 그리워집니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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