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업 본질에 충실한 '공대 출신 CEO'…SVB 위기에도 흔들림 없는 은행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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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 장 로랑 보나페 BNP파리바 CEO
월가도 인정한 '위기관리 능력'
"은행업은 올림픽 아닌 숫자의 산업"
유로존 최대 은행으로 탄생시킨 주역
월가도 인정한 '위기관리 능력'
"은행업은 올림픽 아닌 숫자의 산업"
유로존 최대 은행으로 탄생시킨 주역
유로존 최대 상업은행 BNP파리바는 글로벌 은행업계에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란 격언을 재확인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유동성 회수 국면에서 크레디트스위스가 쓰러지고, 도이체방크가 휘청이는 동안 BNP파리바는 꾸준한 이익을 냈다. 업계에선 2011년부터 BNP파리바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지킨 장 로랑 보나페(62)가 핵심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금융업계 주류 인사들과 다른 공대 출신의 내성적인 보나페 CEO의 안정 지향 경영 스타일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보나페 CEO의 위기관리 능력은 또 한 번 업계 안팎에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은행 위기 직전인 올해 초 BNP파리바가 계열사인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뱅크오브더웨스트를 매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CEO로 취임한 뒤 13년 가까운 기간에 분기 손실을 낸 것은 단 한 번이다. 2014년 이란 관련 거래 때문에 미국 금융당국으로부터 89억달러의 벌금을 낸 시기다. 그는 ‘퀀텀 점프’ 대신 유기적 성장, 절제된 성장을 추구하며 묵묵히 소매금융에 집중했다. 그는 몇 해 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대규모 인수와 파생상품·기업금융 영업에 나선 경쟁사를 겨냥해 “은행업은 올림픽이 아니고 역사와 숫자의 산업”이라며 “경기 사이클 속에서 살아남는 게 핵심이며 여러 지역에서 풀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이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 외의 것은 눈길을 끄는 재밌는 사업일 뿐 은행업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그의 남다른 전략은 다수의 금융인과 다른 개인적 배경에서 나온다는 분석도 있다. 그는 에콜폴리테크니크에서 공학을 전공했고 해군 복무 시절 핵잠수함에서 근무했다. 가까이 일했던 임직원들은 보나페 CEO를 ‘성실한 기술 전문가’라고 말한다. 후원회 의장을 맡은 파리 오페라 행사와 BNP가 50년간 후원한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를 제외하면 대외 행사를 꺼린다. 격식도 많이 따지지 않는다. 주주 미팅에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지퍼 달린 카디건을 입고 나타난다. 직원들은 보나페 CEO를 이름의 이니셜인 ‘제이 로(J-Lo)’라고 부른다.
그러나 보나페는 CEO에 오른 뒤 대규모 M&A에 일절 나서지 않았다. 공격적인 인수 대신 2019년 파산 지경에 몰린 도이체방크의 프라임브로커리지(PBS) 부문을 헐값에 사들였고, 2021년 기존에 지분을 보유한 증권사 엑산을 완전히 인수하는 등 손만 뻗으면 되는 기회가 왔을 때만 움직였다. 최근 자회사 매각으로 수십억달러 규모 현금을 손에 쥐고도 “가능성이 희귀한 대규모 인수합병을 모색하는 대신 자산관리, 보험, 소비자 금융 등의 사업 확대와 정보기술(IT) 시스템 업그레이드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나페가 젊은 시절 이탈리아와 벨기에 대형 부실은행들의 장부와 힘겹게 씨름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FT는 보나페 CEO가 대규모 M&A 없이도 은행업계에서 기대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을 성취한 사실을 언급하며 “보나페에 남은 목표는 너무 오래 버틴다고 욕 먹기 전에 적절한 시기를 잡아 은퇴하는 것밖에 없다”는 은행업계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핵잠수함 탔던 내성적인 은행가
BNP파리바는 실리콘밸리은행(SVB) 등 미국 중소형 은행이 잇따라 쓰러져 금융권이 연쇄 타격을 받은 지난 1분기에 44억3000만유로(약 6조5200억원) 규모의 기록적인 순이익을 냈다. 작년 같은 기간 18억4000만유로(약 2조7000억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로이터통신은 올해 1분기 도이체방크의 예금이 4.7% 빠져나간 데 비해 BNP파리바의 예금 감소 폭은 0.7%에 불과했다는 점을 들며 “미국 은행업계 골리앗인 JP모간에 가장 가까운 유럽 은행”이라고 평가했다.보나페 CEO의 위기관리 능력은 또 한 번 업계 안팎에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은행 위기 직전인 올해 초 BNP파리바가 계열사인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뱅크오브더웨스트를 매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CEO로 취임한 뒤 13년 가까운 기간에 분기 손실을 낸 것은 단 한 번이다. 2014년 이란 관련 거래 때문에 미국 금융당국으로부터 89억달러의 벌금을 낸 시기다. 그는 ‘퀀텀 점프’ 대신 유기적 성장, 절제된 성장을 추구하며 묵묵히 소매금융에 집중했다. 그는 몇 해 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대규모 인수와 파생상품·기업금융 영업에 나선 경쟁사를 겨냥해 “은행업은 올림픽이 아니고 역사와 숫자의 산업”이라며 “경기 사이클 속에서 살아남는 게 핵심이며 여러 지역에서 풀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이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 외의 것은 눈길을 끄는 재밌는 사업일 뿐 은행업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그의 남다른 전략은 다수의 금융인과 다른 개인적 배경에서 나온다는 분석도 있다. 그는 에콜폴리테크니크에서 공학을 전공했고 해군 복무 시절 핵잠수함에서 근무했다. 가까이 일했던 임직원들은 보나페 CEO를 ‘성실한 기술 전문가’라고 말한다. 후원회 의장을 맡은 파리 오페라 행사와 BNP가 50년간 후원한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를 제외하면 대외 행사를 꺼린다. 격식도 많이 따지지 않는다. 주주 미팅에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지퍼 달린 카디건을 입고 나타난다. 직원들은 보나페 CEO를 이름의 이니셜인 ‘제이 로(J-Lo)’라고 부른다.
대규모 M&A에 회의적
보나페 CEO가 BNP에 입사한 이후 주로 한 업무는 인수합병(M&A)이었다. 공학 학위를 받고 산업부 공무원으로 잠시 근무한 뒤 BNP에 입사해 투자은행 파리바 인수 관련 업무에 투입됐다. 소매은행인 BNP와 기업·기관 투자가를 상대하는 파리바 등 서로 다른 성향의 두 조직을 통합하는 작업이었다. 2006년 BNP파리바가 이탈리아 5위권 은행인 나치오날레 델 라보로를 인수했을 때도 파리와 로마를 오가며 밤새 이탈리아어를 배워가며 일했다. 금융위기 때는 벨기에 최대 은행 포르티스 인수에 참여했다.그러나 보나페는 CEO에 오른 뒤 대규모 M&A에 일절 나서지 않았다. 공격적인 인수 대신 2019년 파산 지경에 몰린 도이체방크의 프라임브로커리지(PBS) 부문을 헐값에 사들였고, 2021년 기존에 지분을 보유한 증권사 엑산을 완전히 인수하는 등 손만 뻗으면 되는 기회가 왔을 때만 움직였다. 최근 자회사 매각으로 수십억달러 규모 현금을 손에 쥐고도 “가능성이 희귀한 대규모 인수합병을 모색하는 대신 자산관리, 보험, 소비자 금융 등의 사업 확대와 정보기술(IT) 시스템 업그레이드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나페가 젊은 시절 이탈리아와 벨기에 대형 부실은행들의 장부와 힘겹게 씨름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FT는 보나페 CEO가 대규모 M&A 없이도 은행업계에서 기대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을 성취한 사실을 언급하며 “보나페에 남은 목표는 너무 오래 버틴다고 욕 먹기 전에 적절한 시기를 잡아 은퇴하는 것밖에 없다”는 은행업계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