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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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을 둘러싼 환경이 뒤바뀌고 있습니다. 호재가 악재로 변하고 악재가 호재로 둔갑하는 양상입니다.

지난달까지 인플레이션을 확 누그러뜨렸던 기저효과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살인적인 더위와 폭우로 잠잠하던 곡물가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인플레 둔화를 이끈 헤드라인 물가 둔화속도가 급격히 약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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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인플레의 숨은 주범 역할을 해오던 미국의 돈풀기 정책이 수명을 다해가고 있습니다.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이 제동 걸렸고 세수도 급격히 줄고 있습니다. 은행 대출 기준도 깐깐해지고 있습니다. 중고차 가격과 렌트비도 떨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끈적끈적한 근원물가도 조금씩 둔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이런 변곡점에서 '슈퍼위크'가 시작됩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이 통화정책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결정합니다. 한국과 미국의 2분기 성장률이 나오고 미국과 유럽 주요국의 물가 지표도 공개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알파벳 등 빅테크 실적도 발표됩니다.

무엇보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입이 관심입니다. 파월 의장의 발언 수위를 보고 대전환의 시기가 어떻게 흘러갈 지가 가늠해볼 수 있을 전망입니다.

힘잃는 바이든표 부양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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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행정부는 Fed와 엇박자를 내왔습니다. Fed는 지난해부터 초고속 긴축을 해왔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확장재정을 계속해왔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를 지나서도 인프라 법안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각종 보조금을 지급해온 게 대표적 예입니다. 미국 가계는 이를 통해 막대한 초과저축을 쌓았습니다.
정책 뒤집는 백악관…요동치는 인플레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통한 학자금대출 탕감도 비슷한 효과를 냈습니다. 연소득 12만5000달러(부부 합산 25만달러) 미만의 가구이면 최대 2만달러까지 학자금 채무를 면제해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재원이 4300억달러였고 혜택 대상이 4000만명에 달했습니다. 이 가운데 2600만명이 학자금 대출 면제를 신청했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30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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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연방대법원이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정책을 의회 승인없이 행정명령으로 실행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제동을 걸었습니다. 당장 8월부터 학자금 대출을 다시 갚아야할 상황에 놓였습니다. 학자금 대출은 미국 가계의 채무 중 모기지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는 만큼 소비여력도 감소하게 됩니다.
정책 뒤집는 백악관…요동치는 인플레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바이든 행정부는 곧바로 대책을 내놨습니다. 20~25년 이상 학자금을 장기 상환하면 남은 채무를 탕감해주겠다는 내용입니다. 재원 규모가 390억달러로 이전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보다 10분 1규모로 줄었습니다. 그 마저도 20년 이상 갚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단기적 효과는 제로에 가깝습니다. 기존에도 같은 제도가 있었는데 탕감 신청자의 99%가 거절을 당했습니다.

정부 세입 줄고 대출 거절은 늘어

정책 뒤집는 백악관…요동치는 인플레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세수 부족은 만국 공통어가 되고 있습니다. 경기침체 시기인 데다 코로나19 뒷처리하는데 너무 많은 돈을 당겨 쓴 후폭풍입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한국 유럽 미국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올들어 미국 정부의 세입은 급감하고 있습니다. 올해 미국 정부 세수는 전년 대비 7.3% 감소했습니다. 부자증세를 통해 세수를 만회하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세금이 줄면 국채발행을 늘려야 하는데 국채 매수세가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국채에 의존하기 쉽지 않습니다. 결국 미국 정부도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 뒤집는 백악관…요동치는 인플레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은 대출을 줄이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SVB) 은행 파산 여파는 잠잠해졌지만 상업용 부동산 위기로 인해 대출 심사는 깐깐해지고 있습니다. 일반 은행 대출 뿐 아니라 자동차 리스나 할부금융, 카드론 등 전반적인 신용공여 기준이 엄격해지고 있습니다. 뉴욕 연방은행 조사결과 신청자 5명 중 1명 이상이 대출 심사 문턱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정책 뒤집는 백악관…요동치는 인플레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쓸 돈이 줄면 인플레 강도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중고차 가격은 내려가고 있습니다. 요지부동에 가깝던 렌트비도 하방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끈적끈적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책 뒤집는 백악관…요동치는 인플레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28일(현지시간)에 나올 미국 6월 개인소비지출(PCE) 지표에서 근원물가도 둔화할 공산이 큽니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4.6%에서 4.2%로 떨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6개월 이상 4.6~4.7%에서 머물다 박스권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헤드라인 물가 상승률도 3.8%에서 3.1%로 내려간다는 게 시장 컨센서스입니다.

기저효과 약화 속 곡물가 상승

정책 뒤집는 백악관…요동치는 인플레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인플레를 둔화시키던 진정제의 약발은 약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CPI 상승률을 3%대로 끌어내린 일등공신은 기저효과였습니다. 지난해 6월 CPI 상승률이 9.1%를 찍은 영향입니다. 국제유가도 배럴당 120달러 이상으로 치솟던 때였습니다. 국제유가는 지난해 7월 이후 조금씩 떨어졌습니다.
정책 뒤집는 백악관…요동치는 인플레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국제 곡물가는 치솟고 있습니다. 이상 기후에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파기 때문입니다. 벌써부터 밀과 옥수수 가격은 급등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부문의 기저효과가 사라지고 곡물 가격까지 강세를 보이면 당연히 헤드라인 CPI 상승률은 올라갑니다. 시장에선 7월 헤드라인 CPI가 6월(3.0%)보다 더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헤드라인 물가 상승률이 올라간 만큼 근원물가가 둔화세를 보인다면 인플레 우려는 다소 덜 수 있습니다. 상쇄시키지 못한다면 인플레 우려는 가시지 않고 Fed는 매파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 뒤집는 백악관…요동치는 인플레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26일 나올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되고 있습니다. 0.25%포인트 인상은 확실시됩니다. 금리선물시장에서 99% 이상이 베이비스텝을 점치고 있습니다.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입니다.

파월 의장이 향후 금리인상 경로에 대해 어떤 언급을 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시장에선 7월이 마지막 인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벤 버냉키 전 Fed 의장도 지난 20일 한 웨비나에서 7월이 끝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물론 일각에선 9월이나 11월에 한 번 더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고 예상합니다.

전망이 엇갈리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파월 의장의 간담회가 중요합니다. 추가 금리인상을 배제하지 않고 데이터에 기반해 결정하겠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얘기를 할 가능성이 큽니다. 표현의 정도에 따라 시장은 요동칠 수 있습니다.

골디락스 달성 여부는 27일에 판가름

정책 뒤집는 백악관…요동치는 인플레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유럽과 일본도 통화정책회의를 엽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7일 기준금리를 결정합니다. 연 4.0%에서 4.25%로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연내 한 차례 더 올려 4.5%가 최종금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시장에서 판단합니다.

이어 28일 일본이 금리를 결정합니다. 물가가 목표치인 2%도 높은 3% 이상으로 오르고 있지만 막대한 정부부채 때문에 금리를 올리기 쉽지 않습니다. 장단기 금리조작(YCC·수익률곡선통제)을 조정하는 형태로 금융완화에서 선회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미 지난 18일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물가상승률 2%를 실현할 때까지 끈질기게 금융완화를 계속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정책 뒤집는 백악관…요동치는 인플레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성장률 수치도 잇따라 나옵니다. 25일에 한국 국내총생산(GDP) 속보치가 나오고 27일엔 미국 2분기 GDP 속보치가 발표됩니다.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계속 내려가고 있습니다. 지난19일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올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5%에서 1.3%로 0.2%포인트 낮췄습다. 우리 정부 전망치(1.4%)보다 낮습니다.
정책 뒤집는 백악관…요동치는 인플레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미국의 2분기 GDP 증가율은 1.8%대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GDP나우는 2.4%로 점치고 있습니다. 1분기 미국의 성장률은 1.1%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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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2분기 성장률이 2%대로 나오고 PCE가 둔화세를 보인다면 연착륙과 골디락스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물가 둔화세는 약한데 성장률 전망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또다시 경착륙 우려가 확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