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서방 국가들에 집중됐던 중국의 자본이 아시아와 중동, 남미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서구권의 대중 규제가 심화하자 자본을 기반으로 비서구권 동맹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아시아와 남미에서 광물 등 원자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수적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AEI)가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올 들어 중국 투자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는 인도네시아라고 보도했다. 인도네시아는 중국 전체 해외투자 중 약 17%를 유치한 것으로 집계됐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니켈 보유량이 가장 많은 국가다. 니켈은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광물로 꼽힌다.

미국기업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중국의 해외투자에서 미국과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눈에 띄게 줄었다. 이 기간 중국 해외투자 중 미국 투자 비중은 24.8%포인트 감소했고, 유럽은 11.8% 줄었다.

반면 동아시아 투자 비중은 같은 기간 17.8%포인트 상승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14.7%포인트, 남아메리카는 3.3%포인트 늘었다.

WSJ은 “몇 년 전만 해도 중국 투자자들은 뉴욕의 고급 주택과 5성급 호텔, 스위스와 독일의 기업 등 부유한 국가들의 자산을 거액을 주고 사들였다”며 “그러나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과 최근 관계가 악화되며 중국의 투자가 발을 빼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중국의 해외투자 자체도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UN무역개발회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해외직접투자 규모는 1465억달러(약 189조원)로 전년 대비 18.1% 감소했다. 2016년(1961억달러) 최고치보다는 25% 감소했다.

최근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이 국가 안보를 두고 중국과 충돌하면서 중국 기업들의 투자와 인수합병(M&A)을 제재하는 경우가 많아진 영향이다. 2016년 주요 7개국(G7)에 대한 중국 투자 규모는 840억달러로 전체 해외투자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중국의 G7 투자는 13건에 그쳤고, 투자 규모도 74억달러로 전체의 18%까지 축소됐다.

S&P글로벌의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 루이스 쿠이스는 “중국이 해외 선진국에 투자할 여지가 전반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며 “향후 3~5년간 중국의 해외투자 흐름이 크게 증가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서방국가 대상 투자를 줄이고 있는 데다 최근 중국 정부가 자국 경기 부양에 집중하면서 투자 유출을 억제할 수 있다는 있다는 관측이다.

중국 자본은 대신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등 첨단 분야에 집중될 확률이 높다. 동남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들이 보유한 풍부한 자원에 투자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중국 투자자들은 지난해 아시아와 남미, 중동에 총 245억달러를 투자했다. 전년 대비 13% 증가했다. 중국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는 이달 브라질의 자동차 공장에 6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

다만 선진국들로선 중국 투자 감소의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평가다. 중국 투자자들이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 각국에서 투기수요로 끌어올린 부동산 가격이 진정될 수 있다는 기대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