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의도치 않았지만 불경스러운 행동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종교조각 같은 것, 예수상이나 마리아상, 불상을 천으로 구석구석 닦으며 머리나 얼굴을 만진다든지, 급한 마음에 “이 작품”이라는 말조차 길어 “얘”, “쟤”라고 부른다든지, 상태조사를 하거나 작품 촬영을 하거나 전시장 디스플레이를 하면서, 과장을 조금 보태어, 눕혔다가 세웠다가 뒤집었다가, 뱅글뱅글 돌리기도 하고, 머리나 손을 뺐다가 끼웠다가 하는 일들 말이다.

모든 종교 조각은 성물(聖物)이지만 한국 특성상 예수상, 마리아상은 거의 현대에 만들어진 것들이라 그렇게 마음이 쓰이지는 않는다. 문제는 천 년을 넘게 살아계신,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의 불교미술품을 대하게 될 때다. 너무 부담스럽다. 차라리 조선시대 부처님이 마음이 더 편할 정도다. 업계 어른들은 조사를 위해 이러한 성상(聖像)들을 만날 때, 인사를 드리시기도 한다. 합장(合掌) 같은 간단한 제스처나 “아이고 부처님”, “잘 부탁드립니다” 정도의 짤막한 말로 사전에 용서를 구하는 거다. 하지만 급한 성격 탓인지, 주위 시선에 멋쩍어서인지, 나는 늘 생각을 했다가도 잊어버리고, 그냥 건너뛰어버리곤 했다.

어느 순간이 되면 그것마저 익숙해져 불편한 기분이 달랑 한 시간 만에도, 하루 만에도 사라지곤 한다. 그런데 지금 거의 한달 째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작품이 있다. 바로 오늘 이야기할 “철조석가여래좌상”이다. 요즘 감정으로는 나중에,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 받을 때 이 잘못이 업경대에 비춰진다면, 아무 변명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철조석가여래좌상, 고려시대, 높이 115cm, 서울시유형문화재, 개인소장
철조석가여래좌상, 고려시대, 높이 115cm, 서울시유형문화재, 개인소장
이 불상은 철로 주조하여 만든 것이다. 흔히 철불이라고 한다. 머리나 옷 표현 등의 양식으로 석굴암 본존불의 전통을 잇는 고려초기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偏袒右肩) 착의법에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수인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成道)하는 싯다르타를 상징해, 이 부처가 석가모니임을 알려준다. 당당하면서도 장대한 어깨와 신체에 비하여 높고 넓은 무릎으로 안정감 있는 모습이다.

철불은 철이 가지는 특유의 색감 때문에 현대인의 시선에서는 금동불보다 세련되고 차분하게 느껴진다. 특히 이 불상은 턱을 바짝 당긴 채 목을 꼿꼿이 세우고, 눈을 감고 있는 듯, 시선이 아래를 향하고 있어 명상에 잠긴 듯한 조용한 인상도 준다. 이런 형태의 불상들은 대체로 높은 대좌나 불단 위에 봉안되므로, 신도들이 불상을 위로 우러러보게 되는 것을 고려한 시선처리인 듯 하다. 눈 코 입의 표현은 균형이 잘 맞는 편이고, 젊은 청년의 인상을 준다.
이목구비를 갖춘 청년 석가모니의 얼굴. 고려시대 불상에는 신라의 불상에서 보이는 엷은 미소와 달리
조용한 분위기의 적적한, 적막함이 느껴지는 표정이 있다.
이목구비를 갖춘 청년 석가모니의 얼굴. 고려시대 불상에는 신라의 불상에서 보이는 엷은 미소와 달리 조용한 분위기의 적적한, 적막함이 느껴지는 표정이 있다.
그러니까 이 분께 내가 저지른 불경한 일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들을 시켜 이 불상의 신체 사이즈를 잰 다음에, 열댓 명의 장정을 불러 부처님의 이마를 밀고, 어깨와 등을 앞, 뒤로 밀기도 하고, 엉덩이를 들어올렸다가 무릎을 들어올렸다가 하면서, 맞춤 나무상자에 넣은 것이다. 그 날 일은 지금 생각해도 다시금 긴장되고, 개운치가 못하다. 중생과 상시로 만날 수 있는 넓고 좋은 곳에 잘 모시는 것이 최선이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니, 결국 작품을 잘 보관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내친김에 변명을 더 해볼까 한다. 이 부처님께서는 처음부터 맨몸으로 오셨다. 그 땐 누가 그런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몰라도,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오셨다. 그래서 새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합리화하면서도 좁은 나무상자가 계속 마음이 쓰여 습도조절제도 넣고, 이마랑 손, 무릎 쪽에 푹신한 보호대도 붙여드렸다. 그러니까 나는 부처님의 신체를 함부로 한 잘못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잘해드리려고 노력했다.
도봉사에 계실 때의 모습. 눈썹과 눈, 입술에 금칠을 했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보아야 부처님과 비로소 눈을 맞출 수 있다.
도봉사에 계실 때의 모습. 눈썹과 눈, 입술에 금칠을 했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보아야 부처님과 비로소 눈을 맞출 수 있다.
사실 이 불상을 잠시 우리 회사에 모시게 된 과정이야 말로 ‘불경스러움’의 연속이다. 일제 강점기에 어떤 일본인이 마음대로 이 불상을 산 것부터가 문제다. 그러다 광복 이후 자명사에 모셔졌는데 그 절마저 철거되며 도봉사로 갔다. 신심이 다소 과했는지(?), 입술에 금니도 칠해지고 그랬지만, 그래도 도봉사에서는 ‘우리 부처님’으로 신도들과 행복하셨던 것 같다. 그 때, 서울시문화재로 지정도 되고(2002년) 원래 모습도 되찾았다. 그런데 또 한 사립박물관으로 소유권이 변동되었고, 심지어 돈 문제로 경매에 나오며 뉴스거리가 되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내가 관리하는 수장고에 잠시 머무시게 된 것인데, 나열하고 보니 그간의 일에 비하면 내 잘못은 잘못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천년 전, 이 부처님이 원래 계시던 곳은 어디인지 몰라도, 여기 계시는 동안은 요즘처럼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여름에도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며 최대한 쾌적하게 해드릴 거다. 그러다 언젠가 이 부처님을 모실 꽃대좌가 마련되면 또 사람을 시켜 이마나 어깨를, 엉덩이를 밀게 하는 불경을 저지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때, 다 끝내고 석가모니 부처님을 위로 우러러보며 눈을 맞추는 순간, 다 괜찮다고 용서해주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