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바이오 업계, 이러다 숨 막힐라…약가 압력에 인수제동까지 [이해진의 글로벌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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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금리 타격에 위축된 바이오, 한숨 깊어진 이유
약가 인하 압력에 성장동력인 M&A도 막혀
금리 타격에 위축된 바이오, 한숨 깊어진 이유
약가 인하 압력에 성장동력인 M&A도 막혀
높은 금리가 지속되면서 피로감이 누적된 미국 바이오 업계를 더욱 힘들게 하는 2가지 이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제정에 따른 약가 인하 협상입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IRA 제정을 통해 미국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서비스 센터(CMS)가 약가 결정에 대한 협상권을 갖도록 하는 약가 협상 프로그램을 발동했습니다. 그동안 미국은 약가 결정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프로그램에 따르면 올 9월까지 CMS는 약가 협상 대상 리스트 10개 품목을 발표하고, 내년 2~8월까지 약가 협상을 진행해 같은해 9월 최대공정가격을 도출한다는 계획입니다. 이후 2026년부터 개정된 약가가 발효됩니다.
이러한 미국 정부의 약가 인하 압박에 제약·바이오 업계는 소송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미국 머크사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정부가 일정 부분 압력을 행사했음에도 마치 제약사들이 약가 인하 협상에 자발적으로 응한 것처럼 가장한 점을 문제삼았습니다. 즉 정부가 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를 위반했다는 게 머크사의 주장입니다.
브리스톨 마이어 스큅사도 정부의 약가 인하 협상에 반발하며 소송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브리스톨의 항응고제 엘리퀴스는 올해 말 CMS의 약가 협상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요. 이 약이 2022년 기준 브리스톨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를 넘어선 만큼 어떻게든 이 프로그램을 막아야 한다는 게 브리스톨의 각오입니다.
이같은 빅파마(대형 제약업체)들의 강경한 대응에 미국 정부도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입니다. 최근 미국 CMS는 약가 인하와 관련해 공정 가격 협상과 가격 산출 과정에 제약사에 보다 많은 참여 기회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과거 미국 헬스케어 산업은 수차례 약가 인하 논쟁 속에서도 지금까지 꾸준히 성장을 지속해 왔습니다. 그만큼 빅파마가 주축이 된 헬스케어 업계의 소송 대응 능력과 로비 능력은 만만히 볼 게 아닙니다. 특허 기간으로 약가를 관리하는 현재 시스템하에서 추가적인 약가 협상 프로그램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추후 법정에서 가려질 전망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인수합병 제동입니다. 암젠사가 희귀질환 치료제를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바이오텍 호라이즌을 인수한다고 발표한 것이 작년 12월이지만 FTC의 반대로 합병 절차가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간만의 대형급 인수합병(M&A) 호재로 급등했던 호라이즌 주가는 예상치 못한 FTC의 인수합병 반대 의견에 부딪혀 하루 동안 18% 급락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미국 FTC의 합병 반대 움직임과 관련해 주의해서 살펴볼 점은 FTC의 인수합병 규제 논리가 기존과는 조금 다르다는 겁니다. 실제 발생한 반경쟁 행위에 대한 조치가 아닌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즉, 아직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 일이 터지기 전에 막겠다는 겁니다.
호라이즌과 암젠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겹치는 부분은 적지만, 만약 양사가 합병한다면 시장 독점력이 높은 호라이즌의 갑상선안질환치료제 '테페자'와 만성통풍치료제 '크리스텍사'의 독점적 지위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게 FTC의 반대 논리입니다. 암젠이 테페자의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번들스킴 즉, 끼워팔기로 횡포를 부릴 가능성이 있다고 FTC는 주장했습니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빅파마가 혁신을 주도하지 못하면서 혁신 바이오텍을 빨아들이는 데만 관심이 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이들은 지난 몇 년간 대형 제약사가 개발한 신규 물질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는데요. 바이오 산업에서 소형 바이오텍이 혁신 물질 개발에서 차지하는 기여도는 60%를 웃돕니다. 더군다나 인수합병 이후에는 연구개발의 성과가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빅파마의 인수합병이 혁신적 경쟁을 방해하는 죽이기식 M&A라는 겁니다.
이에 FTC는 기업의 포트폴리오와 파이프라인까지 시야에 넣어 합병 기업의 연구 개발에 대한 전망뿐만이 아니라 산업 전체에 미치는 혁신의 효과까지 검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FTC의 행보가 도를 넘었다는 시선이 적지 않습니다. 인수합병은 바이오텍의 혁신적 기술과 치료제를 획득해 미래 성장에 대비하려는 빅파마의 자연스러운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수합병이 투자자들이 수익을 거둬 초기 단계의 회사에 재투자할 수 있는 자본의 순환을 만들어 내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주장합니다. 인수합병이 작금의 바이오 '돈맥경화(자금경색)' 위험을 다소나마 경감시킨다는 얘기입니다.
암젠은 호라이즌 인수합병 건에 대해 FTC와 재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암젠은 재판의 결과가 나오는 오는 10월 말까지 합병 딜을 유보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법원은 이 소송과 관련해 오는 9월 11일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인수합병 문제에 대해 FTC보다는 재판관들이 덜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여 단지 이론적인 가능성에 근거해 인수합병을 반대하고 있는 FTC의 입지는 약화할 거라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어찌 됐든 이번 암젠과 FTC 소송 재판은 FTC의 대형 M&A 반대 정책의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해진 임플바이오리서치 대표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첫 번째 문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제정에 따른 약가 인하 협상입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IRA 제정을 통해 미국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서비스 센터(CMS)가 약가 결정에 대한 협상권을 갖도록 하는 약가 협상 프로그램을 발동했습니다. 그동안 미국은 약가 결정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프로그램에 따르면 올 9월까지 CMS는 약가 협상 대상 리스트 10개 품목을 발표하고, 내년 2~8월까지 약가 협상을 진행해 같은해 9월 최대공정가격을 도출한다는 계획입니다. 이후 2026년부터 개정된 약가가 발효됩니다.
이러한 미국 정부의 약가 인하 압박에 제약·바이오 업계는 소송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미국 머크사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정부가 일정 부분 압력을 행사했음에도 마치 제약사들이 약가 인하 협상에 자발적으로 응한 것처럼 가장한 점을 문제삼았습니다. 즉 정부가 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를 위반했다는 게 머크사의 주장입니다.
브리스톨 마이어 스큅사도 정부의 약가 인하 협상에 반발하며 소송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브리스톨의 항응고제 엘리퀴스는 올해 말 CMS의 약가 협상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요. 이 약이 2022년 기준 브리스톨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를 넘어선 만큼 어떻게든 이 프로그램을 막아야 한다는 게 브리스톨의 각오입니다.
이같은 빅파마(대형 제약업체)들의 강경한 대응에 미국 정부도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입니다. 최근 미국 CMS는 약가 인하와 관련해 공정 가격 협상과 가격 산출 과정에 제약사에 보다 많은 참여 기회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과거 미국 헬스케어 산업은 수차례 약가 인하 논쟁 속에서도 지금까지 꾸준히 성장을 지속해 왔습니다. 그만큼 빅파마가 주축이 된 헬스케어 업계의 소송 대응 능력과 로비 능력은 만만히 볼 게 아닙니다. 특허 기간으로 약가를 관리하는 현재 시스템하에서 추가적인 약가 협상 프로그램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추후 법정에서 가려질 전망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인수합병 제동입니다. 암젠사가 희귀질환 치료제를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바이오텍 호라이즌을 인수한다고 발표한 것이 작년 12월이지만 FTC의 반대로 합병 절차가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간만의 대형급 인수합병(M&A) 호재로 급등했던 호라이즌 주가는 예상치 못한 FTC의 인수합병 반대 의견에 부딪혀 하루 동안 18% 급락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미국 FTC의 합병 반대 움직임과 관련해 주의해서 살펴볼 점은 FTC의 인수합병 규제 논리가 기존과는 조금 다르다는 겁니다. 실제 발생한 반경쟁 행위에 대한 조치가 아닌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즉, 아직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 일이 터지기 전에 막겠다는 겁니다.
호라이즌과 암젠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겹치는 부분은 적지만, 만약 양사가 합병한다면 시장 독점력이 높은 호라이즌의 갑상선안질환치료제 '테페자'와 만성통풍치료제 '크리스텍사'의 독점적 지위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게 FTC의 반대 논리입니다. 암젠이 테페자의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번들스킴 즉, 끼워팔기로 횡포를 부릴 가능성이 있다고 FTC는 주장했습니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빅파마가 혁신을 주도하지 못하면서 혁신 바이오텍을 빨아들이는 데만 관심이 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이들은 지난 몇 년간 대형 제약사가 개발한 신규 물질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는데요. 바이오 산업에서 소형 바이오텍이 혁신 물질 개발에서 차지하는 기여도는 60%를 웃돕니다. 더군다나 인수합병 이후에는 연구개발의 성과가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빅파마의 인수합병이 혁신적 경쟁을 방해하는 죽이기식 M&A라는 겁니다.
이에 FTC는 기업의 포트폴리오와 파이프라인까지 시야에 넣어 합병 기업의 연구 개발에 대한 전망뿐만이 아니라 산업 전체에 미치는 혁신의 효과까지 검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FTC의 행보가 도를 넘었다는 시선이 적지 않습니다. 인수합병은 바이오텍의 혁신적 기술과 치료제를 획득해 미래 성장에 대비하려는 빅파마의 자연스러운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수합병이 투자자들이 수익을 거둬 초기 단계의 회사에 재투자할 수 있는 자본의 순환을 만들어 내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주장합니다. 인수합병이 작금의 바이오 '돈맥경화(자금경색)' 위험을 다소나마 경감시킨다는 얘기입니다.
암젠은 호라이즌 인수합병 건에 대해 FTC와 재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암젠은 재판의 결과가 나오는 오는 10월 말까지 합병 딜을 유보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법원은 이 소송과 관련해 오는 9월 11일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인수합병 문제에 대해 FTC보다는 재판관들이 덜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여 단지 이론적인 가능성에 근거해 인수합병을 반대하고 있는 FTC의 입지는 약화할 거라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어찌 됐든 이번 암젠과 FTC 소송 재판은 FTC의 대형 M&A 반대 정책의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해진 임플바이오리서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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