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불모지에서 태어난 '더 문'... SF 어디까지 알고 있니?
영화 '달세계 여행' 스틸컷
한국 SF(Science Fiction) 영화는 할리우드에 비해 역사가 짧다. 1895년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으로 영화가 탄생한 이후, 불과 7년 만에 SF 장르가 세상 밖으로 모습을 내밀었다. 1902년 프랑스 조르주 멜리아스 감독의 '달세계 여행'은 최초의 SF영화로, 2000년대 후반 서서히 SF 영화 제작에 관심을 가진 한국에 비하면 100년 가까운 격차를 지닌다.

그 때문에 할리우드의 SF 영화로 이미 일종의 공식들을 답습한 바 있는 한국 관객들에게 한국형 SF 영화는 이미 본 듯한 혹은 아직 부족한 영화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형 SF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이유는 SF 불모지에서 시도하면서 또 하나의 가능성을 만든다는 점에 있다.

8월 2일 개봉하는 SF 영화 '더 문'(감독 김용화)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주요 공간을 달로 삼는다. 영화는 근미래인 2029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아 대한민국 달 탐사선 우리 호가 달로 향하다가 태양 흑점 폭발로 인해 황선우(도경수) 대원만이 홀로 남겨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에 나로 우주센터 관계자를 비롯해 전임 센터장이었던 김재국(설경구)이 다시 복귀하면서 황선우 구출 작전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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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문'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CJ ENM

최근 한국형 SF 영화의 성적이 처참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더 문'에게 관객들이 거는 기대는 그야말로 반신반의다. 같은 형태의 익숙한 SF가 나온다면 장르를 확장하는 면에서 한국 관객들은 할리우드 SF에 눈을 돌릴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듄2'가 오는 11월 13일 국내 개봉을 확정 지으면서 다른 소재를 다루더라도 같은 선상에서 비교가 될 것이 당연한 수순이 됐다. 하지만 SF 영화의 불모지라고 해서 결과를 단정 짓기는 아직 이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아직 한국형 SF는 걸음마 단계다.

'대괴수 용가리'(1967) 감독 김기덕 / 괴수 SF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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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괴수 용가리' 스틸컷

그렇다면 한국형 SF 영화의 시작과 발자취를 천천히 동행하며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별이 빛나는 밤에'(1972), '늦어도 그날까지'(1969), '불타는 청춘'(1966) 등으로 한국 영화를 확장한 영화감독 김기덕의 작품 '대괴수 용가리'(1967)가 있다.

우주로 떠나는 SF는 아니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2006)의 한강에서 출현한 거대한 괴물을 연상시키는 용가리에 관한 영화다. 파괴력을 지닌 괴수 용가리가 갑자기 나타나 문화시설을 닥치는 대로 부수기 시작하자, 용감한 젊은 과학도와 한 소년이 나타나 용가리를 쓰러뜨린다는 이야기다.

영화의 원형을 살펴보면, '괴물'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99년 심형래 감독에 의해 '용가리'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배우 이순재, 오영일, 남정임 등이 참여한 작품으로 젊은 시절 이순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1954년 제작된 일본 영화 '고질라'라는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 SF 장르뿐만 아니라 검열 등으로 한국 영화계가 어려웠던 것을 생각해보면, 기억해야 하는 쾌거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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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랜스포머 1', '아바타 1'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CJ ENM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꾸준히 SF 장르에 도전장을 내밀어온 한국 영화는 2000년대 '천사몽'(2001),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디 워'(2007), '7광구'(2011), '로봇, 소리'(2016) 등의 작품을 내놨지만 모두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할리우드에서 '죠스'를 시작으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시작하면서, SF 영화 역시 소재와 규모 모두 커지며 다양해졌다. 조지 루카스 감독의 1977년 처음 시작한 '스타워즈' 시리즈를 비롯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시간 여행하는 자동차가 나오는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도 1987년 시작했으니, 그동안 기술력과 자본이 부족해 SF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이 따라가기엔 벅찬 수순이었다. 이후에도 '트랜스 포머'(2007), '아바타'(2009), '듄'(2021) 등 다양한 형태의 SF가 대거 출연했다. 그럼에도 한국은 꾸준히 자신들만의 SF 영화를 만들었다.

'승리호'(2021) 감독 조성희 /SF 하위장르 : 스페이스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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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승리호' 스틸컷. /사진제공=NETFLIX

앞서, SF에 대해 언급했지만, 장르 안에서도 소재에 따라 다양한 구분이 있다. 그중에서 '승리호'는 SF의 하위장르인 '스페이스 오페라'(Space Opera)에 속한다. 스페이스 오페라란 우주에서 펼쳐지는 모험과 전쟁을 주요 소재로 삼은 소설에서 시작했지만, 1940년대부터 만화, 영화 등의 미디어를 포괄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이해하기 쉬운 예시로 '스타워즈'가 이 장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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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타워즈 1'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기술력과 자본이 뒷받침되자 한국 역시 SF 영화를 연이어 제작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201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거대 자본이 투자된 SF 영화를 많이 살펴볼 수 있다. 2021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조성희 감독의 영화 '승리호'는 마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연상하게 하듯, 우주선 내에서 팀을 이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승리호'는 2092년의 망가진 지구를 떠나 우주 위성궤도인 UTS에서 살아가는 설정으로 조종사 태호(송중기), 장선장(김태리), 타이거 박(진선규), 로봇 업동이(유해진)이 우주쓰레기를 주워 돈을 버는 '승리호'에 거주하는 내용이다. 승리호가 공개됐을 당시, 스크린을 통해 봤다면 웅장한 스케일을 느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할 만큼 할리우드 못지않은 표현력으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국 작품 최초로 미국의 양대 SF 문학상인 휴고상과 네뷸러상에서 후보작에 오를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은 사례다. '늑대소년'(2012)으로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던 조성희 감독이 처음으로 도전한 SF 영화이기도 하다.

'외계+인'(2022) 감독 최동훈 / SF 하위장르: 스페이스 오페라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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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외계+인'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CJ ENM

최동훈 감독의 영화 '외계+인'(2022) 역시 스페이스 오페라에 속한다. 하지만 느와르와 범죄에 강점을 지닌 감독 특유의 장르들이 혼합된 형태다. 사실 외계인은 우주전쟁을 표현하는, 즉 두려움의 존재였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UFO와 외계인은 인간의 상상 속에서 더 무서운 존재가 됐다. 지금 지구의 어떤 것을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외계인은 적대적인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런 인식을 깬 것이 우리가 흔히 손가락과 손가락이 맞닿는 'E.T.'(1984)에서의 시도다. 적이 아닌 친구로 표방되는 'E.T'는 새로운 외계인을 만들었다. 어쩌면 '외계+인'이 의도하고자 했던 바도 비슷한 맥락인지 모른다. 2022년에서 630년 전 고려에 오가는 시대극으로 과거와 현재의 격차를 좁히는 시도로 판단된다. 1부가 공개되고, 이후 2부를 앞두고 있지만 최동훈 감독의 흥행 역사상 가장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SF는 도전하기 어려운 장르임은 틀림없다.

'정이'(2023) 감독 연상호 / SF 하위장르 : 사이버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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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이'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NETFLIX

연상호 감독의 '정이'(2023)는 우주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SF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스페이스 오페라가 아닌 사이버펑크(Cyberpunk) 영화에 해당한다. 1980년대부터 주목받은 SF 문학의 한 장르다. Cybernetics + Punk의 합성어로 기계화된 세상과 암울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영화다.

흔히 우리가 SF를 생각하면 떠올리게 되는 인공지능과 외계인들과 전쟁하고 네온사인이 켜져 있는 도시의 풍경은 사이버펑크의 전형적인 모습 중에 하나다. 세계적인 SF 소설가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바탕으로 제작한 1982년 작 '블레이드 러너'(감독 리들리 스콧)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 발전된 기술과 컴퓨터 문명을 토대로 인간이 기계에 의해 지배를 당할 것이라는 불안함을 토대로 만들어진 장르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SF 장르 중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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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레이드 러너'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비교적 최근에 개봉한 '정이'는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폐허가 된 지구를 위해 우주에 새로운 터전 '쉘터'가 마련된 상황을 영화의 배경으로 삼는다. 지속되는 내전 상황 속에서 용병 윤정이(김현주)는 많은 승리를 거뒀지만, 단 한 번의 실패로 식물인간이 되고야 만다.

그녀의 딸 윤서현(강수연)은 35년 후, 정이 프로젝트에 참가해 전투 A.I. 를 만들게 된다. 사실 '정이'는 SF 장르를 테두리에 두지만, 가족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승리호' 역시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때문에 한국형 SF=가족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질 정도로 이제는 익숙한 변주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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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택배기사' 스틸컷. /사진제공=NETFLIX

사실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SF는 도전적으로 그려진다. 자본이 막대하게 들어가는 만큼, 구현된 세계에 오점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택배기사'의 경우, 6부작으로 구성된 SF이지만 구현된 세계에 비해 스토리가 약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대기오염으로 황폐해진 미래의 한반도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택배기사의 조합으로 신선함을 주었으나,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한계가 지속해서 드러난다. '듄'처럼 모래사막이 펼쳐지고 계급 간의 격차로 인해 전쟁과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만, 다른 평가를 받는 이유다.

그럼에도 감독들이 SF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SF는 말 그대로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해서 확장한 세계를 그린다. 감독들이 우주로 나가는 이유는 어쩌면 한계를 깨고 나아가기 위함이 아닐까. 1895년 영화가 탄생하고 정말 무수히 많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란 쉽지 않다. 그에 비해 SF는 장르 중에서 가장 늦게 성장을 했기에 가능성도 크다. 최근 미국 파업의 핵심이 되는 AI의 존재처럼 기술의 발달은 인류가 앞으로 고민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더 문'이 넘어야 할 산은 상당히 크다. 기존의 편견을 깨야 함과 더불어 새로운 지표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인 '더 문'은 지구가 아닌 우주에서 사건 대부분이 일어나는 만큼 우주의 신비로움과 새로운 공간에서 변화하는 인물의 모습을 즉각적으로 포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문'과 같은 SF를 시도하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SF 불모지라고 했지만, 말 그대로 불모지다. 계속해서 토양을 가꾼다면, 불모지는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낼 수 있다. '더 문'이 가꾼 토양은 어떤 형태일까. 오는 8월 2일 극장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