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원리 어긋나면 민생 정책도 NO"…기재부 출신 '예산통'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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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세제 전문가"…1호 법안은 법인세 개정안
기재부 출신이지만 복지.분배에 관심도 많아
"간사로서 존재감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하지만 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류성걸 의원은 이같은 주장이 “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거부했다. 당시 해당 안건을 제안했던 의원은 “정치인이면 꼭 원칙이나 논리에 맞지 않더라도 이슈 파이팅을 해야 하는데 류 의원은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이라 그런지 엄격한 원칙을 고수했다”고 전했다. 이 에피소드는 류 의원의 성향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21대 국회 들어 2022년 8월까지 발의한 44건의 법안은 대부분 정부 발의 법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지나치게 파격적이거나 기존 제도의 틀을 크게 벗어난 것이 없다. 상대적으로 많은 법안을 발의한 편이지만 자구 수정 등을 통해 실적을 채우기 위한 법안도 없다.
고위 공무원 출신으로서 입법 활동에 성실하게 임하는 한편, 의정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임한다는 평가를 받는 부분이다.
오랜 기간 예산 관련 업무를 한 것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관련 업무에 상당한 애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예산실에 발령 받았을 때의 소감을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국가의 예산을 내 손으로 편성하고 관리하는 예산실이야말로 내가 처음 공직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근무해보고 싶었던 부서였다. 자연 일에 대한 흥미도 높아졌고 열정도 배가됐다.”
류성걸은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이던 2009년 예산실장으로 당시로는 큰 규모로 불리던 추가경정예산안을 집행했다. 해당 추경을 통해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를 피해갔다고 자평한다. 차관시절에는 일자리 증가를 중심으로 한 일자리 예산을 적극 편성했다. ▶세제 전문가=재미있는 점은 스스로를 세제 전문가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류성걸은 공무원 생활을 통틀어 세제 관련 업무를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세제와 관련해 높은 전문성을 갖췄으며 관련 법안 발의에도 관심이 많다. 21대 국회에서도 조세소위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전문성을 드러냈다. 당시 소위 활동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국회 관계자는 “세법은 과거 역사가 중요한데 류 의원은 관련 내용을 쭉 알고 있어서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의원실 관계자도 “세법이 워낙 복잡하다보니 발의하고 싶은 당내 다른 의원의 부탁을 받아 법안을 발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21대 국회 들어 처음 발의한 법안 역시 ‘법인세 개정안’이다. 4개인 과표 구간을 2개로 줄이고 각각 9%와 18%의 세율을 적용해 최고세율 25%에 이르는 법인세율을 대폭 줄이는 것이 골자다. 과세표준 신고 기간은 3개월에서 4개월로 늘리는 내용도 담았다.
대표 발의한 법안 44개 중에서 12개가 조세 관련 법안이기도 하다. 법안의 분야도 다양해서 관세 부과 기준을 외국환매도환율에서 기준환율로 바꿔 관세 부담을 낮춰주는 ‘관세법 개정안’,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출연 관련 세제혜택의 일몰을 연장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관세는 세제 중에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에서, 농어촌 관련 세제는 대구 동구인 류 의원의 지역구와 크게 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여당 간사를 맡은만큼 윤석열 정부 초기에 제출한 감세안의 일부도 대표 발의했다. 종부세 과세 기준을 11억원에서 14억원으로 상향하는 ‘조특법 개정안’ 등이다.
이는 미국 시라큐스대에서 받은 박사학위와 관련 있다. 공무원 해외 유학 제도를 활용해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은 류성걸은 학구열을 발휘해 해당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이때 논문 주제가 법인세였다. 주제는 ‘미국 법인세의 단기 귀착에 관한 연구’로 법인세를 올리면 그 부담의 절반 정도가 제품 판매 가격과 근로자 임금 등에 전가된다는 내용이었다. 경제 관료 경험에 이같은 학술 연구가 더해지면서 감세와 관련된 확고한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기재부 출신 정치인으로는 이례적으로 복지 및 분배에 관심이 많다는 점도 특기할만한 면이다. 실제로 입법에서도 민주당 쪽에서 힘을 실어온 사회적경제법을 앞장 서서 발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류성걸은 “내가 경제 부처에 근무하면서도 빈곤층에 관심을 많이 가진 것이나, 재래시장에 유독 관심을 가진 것은 내 청소년 시절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의 류씨 집성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은 큰 어려움 없이 보냈지만, 초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대구로 온 가족이 이사를 가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누나들이 혼례와 형의 고시 공부를 위해 전답을 팔았다는 것이다.
가사에 보탬이 되기 위해 신문배달을 했으며,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는 멍게와 해삼 장사를 하다 손을 크게 베기도 했다. 어느날 밤에는 온 가족이 연탄가스를 마셔 남동생은 의식을 잃기도 했다.
류성걸의 아버지는 손수레를 끌며 행상을 하다 단속에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이같은 어려움은 친형과 류성걸이 공무원으로 입직하며 해결됐다.
특기할 부분은 경북고에서 유승민 전 의원을 만났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큰 친분이 없었지만 류성걸은 정치 입문 이후 유승민계로 분류되며 정치적 행보를 같이 하게 된다. 결국 이는 2016년 19대 총선에서 경선 기회도 얻지 못하고 공천에서 배제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43.2%를 득표할 정도로 선전했지만 역시 경북고 동창생인 정종섭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패배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 바른미래당으로 당적을 옮길 때도 유승민과 함께했다.
하지만 2018년말 류성걸이 유승민보다 앞서 자유한국당에 복당하면서 두 사람의 행보는 갈라졌다. 유승민이 원외에 머물게 된 21대 국회부터는 유승민계라는 이미지도 상당히 희미해졌다. 다만 앞서 살펴본 분배에 대한 관심 등 정책적으로 두 사람은 여러 모로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총선 출마=2012년 기재부 2차관직을 내려놓은 류성걸은 그해 4월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대구 동구갑에 전략공천됐다.
공무원 퇴직 시점이 총선 출마 시점과 맞닿아 있다보니 일찍부터 류성걸의 출마와 관련된 소문이 돌았다. 전략공천을 받은 점까지 감안하면 당시 청와대 및 여당과 조율한 퇴직과 출마였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류성걸은 공무원 퇴임 시점까지는 정치에 큰 생각이 없었다고 말한다.
“새누리당에서 2012년 4월 총선에 출마할 후보들은 언제까지 공천 신청을 하라고 안내문이 인터넷에 떴다. 그러자 여러 방면의 지인들이 ‘당신의 행정경험과 예산, 재정의 전문 지식을 활용해야 할 것 아닌가’며 전화를 해오기 시작했다. 마침 퇴직시한도 맞추었으니 더 이상 무얼 망설이느냐는 이야기도 계속 들었다. 공천 신청 마지막날 비공개로 공천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명박 정부 탄생=기재부 차관까지 지냈지만 공무원 생활의 대부분은 크게 각광 받지 못하는 분야에서 일했다. 병무청으로 입직해 4년만에 국가보훈처로 옮겼다. 유학을 다녀온 1992년에 국무총리실을 거쳐 청와대 근무를 했다.
기재부의 전신인 재정경제원은 과장에 후인 1996년에야 배치 받게 된다. 국가경쟁력강화 기획단으로 파견을 가기도 했으며 1998년에는 기획예산처 공공1팀장으로 공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했다.
공무원 입직 20년 후인 2001년에야 법사행정예산과장을 맡으며 예산 업무를 처음 시작했다. 예산통으로 알려진 것과 비교해 실제 예산 업무를 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은 셈이다.
이후 과학환경예산과장을 맡은 이후 비교적 한직인 예산관리국 관리총괄과장을 맡았다. 2007년 공공정책관으로 다시 예산 업무에서 밀려난 류성걸의 공무원 생활은 평범하게 마무리될 수도 있었다.
이때 큰 반전을 준 것이 이명박 정부의 출범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류성걸은 예산총괄국장을 시작으로 2차관까지 승진 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명박 정부의 지역 안배가 있었다는 기재부내 시각이 존재한다.
“새 정부가 출범했는데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대구·경북 출신의 국장급 공무원이 예산 라인에 한명도 없었다. 그나마 예산 업무를 해본 인물에게 예산총괄국장 업무를 맡기려다 보니 류성걸이 선택됐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물가 상황에 더해 고용 상황도 고려토록 하는 ‘한국은행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최근 물가 상승으로 처리가 어렵게 되긴 했지만 거시경제의 전반적인 안정성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역시 기재부의 입맛에 맞는 법안으로 분류된다.
21대 국회 초기인 2020년 6월에는 추경호 송언석 등 기재부 출신 의원들과 함께 ‘재정건전화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해당 내용은 이후 만들어진 재정준칙의 밑바탕이 됐다. 기재부의 오랜 숙원 중 하나인 ‘서비스발전법 제정안’도 내놨다. ▶선거 절차 등에도 높은 관심=재미있는 점은 국회 및 선거 제도 등 절차적 민주주의와 관련한 법안도 상당수 발의했다는 점이다. 낙선운동의 범위를 제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국회 회의장 내 의원 폭언을 규제하는 ‘국회법 개정안’,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하는 사회적 기업을 처벌하는 ‘사회적기업 육성법 개정안’ 등을 다양하게 발의하고 있다.
지역 새마을 금고 조합의 이사장 선출 과정에서 공정성 확보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새마을금고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공기업·준정부기관의 비상임 임원이 다른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임원을 겸직하는 것을 제한하는 ‘공공기관 운영 관련 법 개정안’도 특기할만하다.
야당 정치인 및 기자 등에 대한 통신자료를 정부가 조회하는 경우 30일 이내에 본인에게 통보하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이는 절차적 정의와 관련한 류 의원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 입법안들이다.
▶기재위 간사로서 활동=여당 기재위 간사로서 존재감은 과거에 못 미친다는 평가도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종부세 논의 과정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야당 기재위 간사인 신동근 의원과 직접 접촉해 ‘여당 기재위 간사 패싱설’이 돌았다.
통상 기재위 여당 간사를 통해 의원 입법으로 이뤄지는 법인세 등 굵직한 감세안도 정부 입법으로 진행돼 정부와 관계가 좋지만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재위 일정이나 정부에서 넘어온 입법 설명안 등을 여당 기재위 내 다른 의원들에게 전달하지 않아 불만의 목소리가 많았다. 기재위 의원들끼리 손발이 잘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이 나왔다. 실제로 재정준칙 처리 불발 등을 비롯해 기재위의 법안 처리는 기대에 못 미친다.
일의 중요도에 따른 완급 없이 모든 것을 다하려는 행보가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 자주 이름을 올린 의원은 김병욱 정운천 서병수 주호영 김용판 의원 등이다. 이종배 박덕흠 구자근 김정재 의원도 자주 공동 발의자로 참여한다. 의원간 친분보다는 해당 의원실 보좌진간 친분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기재부 출신이지만 복지.분배에 관심도 많아
"간사로서 존재감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윤석열 대통령 집권 초기 민생과 관련된 갖가지 정책 대안이 논의되던 2022년 6월 국민의힘 민생물가안정특별위원회. 회의에 참여한 한 의원은 ‘영끌족’들을 위한 이자경감 방안을 의제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류성걸 의원은 이같은 주장이 “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거부했다. 당시 해당 안건을 제안했던 의원은 “정치인이면 꼭 원칙이나 논리에 맞지 않더라도 이슈 파이팅을 해야 하는데 류 의원은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이라 그런지 엄격한 원칙을 고수했다”고 전했다. 이 에피소드는 류 의원의 성향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21대 국회 들어 2022년 8월까지 발의한 44건의 법안은 대부분 정부 발의 법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지나치게 파격적이거나 기존 제도의 틀을 크게 벗어난 것이 없다. 상대적으로 많은 법안을 발의한 편이지만 자구 수정 등을 통해 실적을 채우기 위한 법안도 없다.
고위 공무원 출신으로서 입법 활동에 성실하게 임하는 한편, 의정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임한다는 평가를 받는 부분이다.
류성걸을 말해주는 키워드
▶예산통=기획재정부에서 예산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예산총괄국장, 예산실장을 거쳐 기재부 2차관을 역임했다. 기재부 2차관 역시 예산과 정부 재정을 관할하는 역할을 한다.오랜 기간 예산 관련 업무를 한 것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관련 업무에 상당한 애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예산실에 발령 받았을 때의 소감을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국가의 예산을 내 손으로 편성하고 관리하는 예산실이야말로 내가 처음 공직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근무해보고 싶었던 부서였다. 자연 일에 대한 흥미도 높아졌고 열정도 배가됐다.”
류성걸은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이던 2009년 예산실장으로 당시로는 큰 규모로 불리던 추가경정예산안을 집행했다. 해당 추경을 통해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를 피해갔다고 자평한다. 차관시절에는 일자리 증가를 중심으로 한 일자리 예산을 적극 편성했다. ▶세제 전문가=재미있는 점은 스스로를 세제 전문가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류성걸은 공무원 생활을 통틀어 세제 관련 업무를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세제와 관련해 높은 전문성을 갖췄으며 관련 법안 발의에도 관심이 많다. 21대 국회에서도 조세소위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전문성을 드러냈다. 당시 소위 활동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국회 관계자는 “세법은 과거 역사가 중요한데 류 의원은 관련 내용을 쭉 알고 있어서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의원실 관계자도 “세법이 워낙 복잡하다보니 발의하고 싶은 당내 다른 의원의 부탁을 받아 법안을 발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21대 국회 들어 처음 발의한 법안 역시 ‘법인세 개정안’이다. 4개인 과표 구간을 2개로 줄이고 각각 9%와 18%의 세율을 적용해 최고세율 25%에 이르는 법인세율을 대폭 줄이는 것이 골자다. 과세표준 신고 기간은 3개월에서 4개월로 늘리는 내용도 담았다.
대표 발의한 법안 44개 중에서 12개가 조세 관련 법안이기도 하다. 법안의 분야도 다양해서 관세 부과 기준을 외국환매도환율에서 기준환율로 바꿔 관세 부담을 낮춰주는 ‘관세법 개정안’,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출연 관련 세제혜택의 일몰을 연장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관세는 세제 중에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에서, 농어촌 관련 세제는 대구 동구인 류 의원의 지역구와 크게 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여당 간사를 맡은만큼 윤석열 정부 초기에 제출한 감세안의 일부도 대표 발의했다. 종부세 과세 기준을 11억원에서 14억원으로 상향하는 ‘조특법 개정안’ 등이다.
이는 미국 시라큐스대에서 받은 박사학위와 관련 있다. 공무원 해외 유학 제도를 활용해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은 류성걸은 학구열을 발휘해 해당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이때 논문 주제가 법인세였다. 주제는 ‘미국 법인세의 단기 귀착에 관한 연구’로 법인세를 올리면 그 부담의 절반 정도가 제품 판매 가격과 근로자 임금 등에 전가된다는 내용이었다. 경제 관료 경험에 이같은 학술 연구가 더해지면서 감세와 관련된 확고한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기재부 출신 정치인으로는 이례적으로 복지 및 분배에 관심이 많다는 점도 특기할만한 면이다. 실제로 입법에서도 민주당 쪽에서 힘을 실어온 사회적경제법을 앞장 서서 발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류성걸은 “내가 경제 부처에 근무하면서도 빈곤층에 관심을 많이 가진 것이나, 재래시장에 유독 관심을 가진 것은 내 청소년 시절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의 류씨 집성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은 큰 어려움 없이 보냈지만, 초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대구로 온 가족이 이사를 가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누나들이 혼례와 형의 고시 공부를 위해 전답을 팔았다는 것이다.
가사에 보탬이 되기 위해 신문배달을 했으며,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는 멍게와 해삼 장사를 하다 손을 크게 베기도 했다. 어느날 밤에는 온 가족이 연탄가스를 마셔 남동생은 의식을 잃기도 했다.
류성걸의 아버지는 손수레를 끌며 행상을 하다 단속에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이같은 어려움은 친형과 류성걸이 공무원으로 입직하며 해결됐다.
류성걸의 결정적 순간
▶경북고 진학, 유승민과 만남=당시 전국에서 손꼽히던 고등학교인 경북고 진학은 가족과 류성걸에게 큰 자부심이 됐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어머니의 일을 도울 때도 하얀 테가 세 개 둘러진 경북고 교모를 일부러 쓰고 갔다고 한다.특기할 부분은 경북고에서 유승민 전 의원을 만났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큰 친분이 없었지만 류성걸은 정치 입문 이후 유승민계로 분류되며 정치적 행보를 같이 하게 된다. 결국 이는 2016년 19대 총선에서 경선 기회도 얻지 못하고 공천에서 배제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43.2%를 득표할 정도로 선전했지만 역시 경북고 동창생인 정종섭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패배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 바른미래당으로 당적을 옮길 때도 유승민과 함께했다.
하지만 2018년말 류성걸이 유승민보다 앞서 자유한국당에 복당하면서 두 사람의 행보는 갈라졌다. 유승민이 원외에 머물게 된 21대 국회부터는 유승민계라는 이미지도 상당히 희미해졌다. 다만 앞서 살펴본 분배에 대한 관심 등 정책적으로 두 사람은 여러 모로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총선 출마=2012년 기재부 2차관직을 내려놓은 류성걸은 그해 4월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대구 동구갑에 전략공천됐다.
공무원 퇴직 시점이 총선 출마 시점과 맞닿아 있다보니 일찍부터 류성걸의 출마와 관련된 소문이 돌았다. 전략공천을 받은 점까지 감안하면 당시 청와대 및 여당과 조율한 퇴직과 출마였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류성걸은 공무원 퇴임 시점까지는 정치에 큰 생각이 없었다고 말한다.
“새누리당에서 2012년 4월 총선에 출마할 후보들은 언제까지 공천 신청을 하라고 안내문이 인터넷에 떴다. 그러자 여러 방면의 지인들이 ‘당신의 행정경험과 예산, 재정의 전문 지식을 활용해야 할 것 아닌가’며 전화를 해오기 시작했다. 마침 퇴직시한도 맞추었으니 더 이상 무얼 망설이느냐는 이야기도 계속 들었다. 공천 신청 마지막날 비공개로 공천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명박 정부 탄생=기재부 차관까지 지냈지만 공무원 생활의 대부분은 크게 각광 받지 못하는 분야에서 일했다. 병무청으로 입직해 4년만에 국가보훈처로 옮겼다. 유학을 다녀온 1992년에 국무총리실을 거쳐 청와대 근무를 했다.
기재부의 전신인 재정경제원은 과장에 후인 1996년에야 배치 받게 된다. 국가경쟁력강화 기획단으로 파견을 가기도 했으며 1998년에는 기획예산처 공공1팀장으로 공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했다.
공무원 입직 20년 후인 2001년에야 법사행정예산과장을 맡으며 예산 업무를 처음 시작했다. 예산통으로 알려진 것과 비교해 실제 예산 업무를 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은 셈이다.
이후 과학환경예산과장을 맡은 이후 비교적 한직인 예산관리국 관리총괄과장을 맡았다. 2007년 공공정책관으로 다시 예산 업무에서 밀려난 류성걸의 공무원 생활은 평범하게 마무리될 수도 있었다.
이때 큰 반전을 준 것이 이명박 정부의 출범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류성걸은 예산총괄국장을 시작으로 2차관까지 승진 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명박 정부의 지역 안배가 있었다는 기재부내 시각이 존재한다.
“새 정부가 출범했는데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대구·경북 출신의 국장급 공무원이 예산 라인에 한명도 없었다. 그나마 예산 업무를 해본 인물에게 예산총괄국장 업무를 맡기려다 보니 류성걸이 선택됐다.”
류성걸의 입법 성향
▶‘기재부 색깔’ 들어간 입법안=류 의원은 오랜 관료 경험이 있는만큼 공무원 시각에 맞춘 법안을 발의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재정법 개정안’에는 다음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까지’로 명시된 재정 관련 자료 제출 시기를 ‘90일 전까지’로 미룰 수 있도록 했다. 국정감사 등의 일정을 감안해 기재부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이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서다.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물가 상황에 더해 고용 상황도 고려토록 하는 ‘한국은행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최근 물가 상승으로 처리가 어렵게 되긴 했지만 거시경제의 전반적인 안정성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역시 기재부의 입맛에 맞는 법안으로 분류된다.
21대 국회 초기인 2020년 6월에는 추경호 송언석 등 기재부 출신 의원들과 함께 ‘재정건전화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해당 내용은 이후 만들어진 재정준칙의 밑바탕이 됐다. 기재부의 오랜 숙원 중 하나인 ‘서비스발전법 제정안’도 내놨다. ▶선거 절차 등에도 높은 관심=재미있는 점은 국회 및 선거 제도 등 절차적 민주주의와 관련한 법안도 상당수 발의했다는 점이다. 낙선운동의 범위를 제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국회 회의장 내 의원 폭언을 규제하는 ‘국회법 개정안’,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하는 사회적 기업을 처벌하는 ‘사회적기업 육성법 개정안’ 등을 다양하게 발의하고 있다.
지역 새마을 금고 조합의 이사장 선출 과정에서 공정성 확보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새마을금고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공기업·준정부기관의 비상임 임원이 다른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임원을 겸직하는 것을 제한하는 ‘공공기관 운영 관련 법 개정안’도 특기할만하다.
야당 정치인 및 기자 등에 대한 통신자료를 정부가 조회하는 경우 30일 이내에 본인에게 통보하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이는 절차적 정의와 관련한 류 의원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 입법안들이다.
▶기재위 간사로서 활동=여당 기재위 간사로서 존재감은 과거에 못 미친다는 평가도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종부세 논의 과정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야당 기재위 간사인 신동근 의원과 직접 접촉해 ‘여당 기재위 간사 패싱설’이 돌았다.
통상 기재위 여당 간사를 통해 의원 입법으로 이뤄지는 법인세 등 굵직한 감세안도 정부 입법으로 진행돼 정부와 관계가 좋지만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재위 일정이나 정부에서 넘어온 입법 설명안 등을 여당 기재위 내 다른 의원들에게 전달하지 않아 불만의 목소리가 많았다. 기재위 의원들끼리 손발이 잘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이 나왔다. 실제로 재정준칙 처리 불발 등을 비롯해 기재위의 법안 처리는 기대에 못 미친다.
일의 중요도에 따른 완급 없이 모든 것을 다하려는 행보가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 자주 이름을 올린 의원은 김병욱 정운천 서병수 주호영 김용판 의원 등이다. 이종배 박덕흠 구자근 김정재 의원도 자주 공동 발의자로 참여한다. 의원간 친분보다는 해당 의원실 보좌진간 친분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