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무기명 투표
국회 표결 방법은 기록과 비기록으로 나뉜다. 찬반 의사를 밝힌 의원 이름을 기록으로 남기느냐 여부에 따른 분류다. 기록 표결에는 전자·기명·호명 투표가 있고, 비기록에는 기립 표결과 무기명 투표가 있다. 법률안 제·개정 등 일반적인 표결 방법은 전자투표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전광판에 의원별로 가부가 표시된다. 국회법 112조에는 국회의장 제의 등으로 본회의 의결이 있거나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 요구가 있을 때는 기명·호명 또는 무기명 투표로 표결하게 돼 있다. 기명 투표는 의원 이름이 표기된 용지에 가부를 표하며 그 내용이 공개된다. 헌법 개정안은 기명 투표로 표결한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다시 표결에 부쳐진 법안과 인사에 관한 것은 무기명으로 표결한다. 이에 따라 국회의장단 및 상임위원장 선거와 국무총리·대법원장·대법관·헌법재판소장·헌법재판관·감사원장·중앙선거관리위원 임명동의안,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해임건의안, 탄핵소추안,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표결은 무기명으로 한다.

이 가운데 체포동의안까지 인사로 보고 무기명으로 표결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찬반 논란이 일어왔다. 기명 표결 주장 측은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국회의원의 책임성 높이기를 그 이유로 든다. 그러나 소신 투표가 어렵다. 동료 의원 체포동의안에 공개적으로 찬성하기 쉽지 않다. 국회의원이 외압에 시달리지 않고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하게 한다는 무기명 투표의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체포동의안 표결 방식에 대해 “입법 사안인데 조기에 기명 투표로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당 혁신위원회의 제의에 화답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의도가 영 개운찮다.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과 관련,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올 가능성이 크다. 기명 투표로 바꾼다면 공천권 등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대표 체포동의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할 의원이 얼마나 될까. ‘수박’(이 대표에 반대하는 정치인) 색출에 혈안인 ‘개딸’들의 융단폭격은 또 어떻게 견딜 수 있겠나. 지난 2월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때 민주당 내 대거 반란표가 나온 것은 무기명 표결 때문에 가능했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