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랬다. 급한 성격 좀 차분히 가라앉혀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소꿉놀이처럼 재밌겠다 싶기도 했다.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시작했다. 그렇게 3년. 시간이 쌓여 이제 높이 30㎝가 넘는 달항아리를 빚을 수 있게 됐다. 작년엔 도자공예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주말을 포함해 주 2회 공방에 간다. 빠져도 아주 푹 빠졌다. 도자기가 뭐길래, 물레가 뭐길래.

옛날 옛적 우리의 선조들은 발을 계속 구르면서 동그란 물레판을 돌렸다고 한다. 지금도 무형문화재 분들은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그래서 도자기용 물레는 '돌린다'나 '한다'가 아니라 '찬다'고 한다. '물레를 차며'는 직장인의 시선으로 본 도자기와 도자기 제작과정에서의 즐거움, 난관, 그 결과물을 만났을 때의 환희와 아쉬움, 이를 모두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도공(陶工)의 자세 등을 덤덤하게 소개하는 코너다.


RM도 끌어안은 둥글고 허연 저것, '달멍'위해 3년을 바쳤다
RM이 끌어안고 있는 권대섭 작가의 달항아리.


첫 시작은 아무래도 달항아리가 좋겠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도자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니. 새하얗고 둥그런 게 꼭 달 같아서 달항아리라 부르는 이 도자기는 요즘 작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예술 애호가들도 하나쯤 꼭 갖고 싶어하는 '작품'이다.

BTS의 RM이 권대섭 작가의 달항아리를 구입해 '아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었다. 빌 게이츠는 최영욱 작가의 달항아리 그림을 샀다고 한다. 작은 사이즈는 수백 만원에서 큰 사이즈는 수천~수억 원을 호가할 정도로 고가에 거래된다. 가만히 달항아리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는 '달멍'도 인기다. 새하얀 색부터 블랙, 회색, 심지어 빨강, 파랑, 노랑, 형광연두 같은 튀는 색으로 달항아리를 빚는 요즘 작가들도 주목받는다.

숨 참고 집중중심을 잃으면 어느새 엉망이 되는 흙덩이


다시 물레로 돌아와서. 처음 전기물레(발로 차는 물레)를 배운 건 2021년 8월부터였다. 그 전엔 1년 동안 손으로 흙을 조물딱거리면서 만들었다. 큰 기물을 만들고 싶어 전기물레 앞에 앉았는데 그 좌절감이란. 흙덩이는 내 맘대로 되지 않고 중심을 잃은 채 휘청거리기 일쑤였다. 차분하게 중심을 잡아 일자로 흙덩이를 올리는 데까지만도 두 달 이상 걸린 것 같다. 온 신경을 흙에만 집중해야 한다. 양팔을 옆구리에 딱 붙인 채 손바닥을 펼쳐 90도 각도로 흙을 잡아 천천히 위로 올려야 한다.

이때 오른발을 차는 속도와 양손을 올리는 속도가 일정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 흙덩이 중심의 안쪽 흙을 밖으로 끄집어내며 흙을 고루 섞어주는 작업도 해야 한다. 혹여나 있을 공기를 빼내면서 흙을 균질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숨도 참는 게 좋다. 호흡 때문에 중심이 흐트러질 수 있어서다. 땀이 줄줄 흘렀다. 그야말로 전신운동이 따로 없다.
갓 달항아리를 만든 뒤의 모습. 아직 촉촉한 흙 상태다.
갓 달항아리를 만든 뒤의 모습. 아직 촉촉한 흙 상태다.
가장 최근에 만든 달항아리.
가장 최근에 만든 달항아리.
중심을 잡을 줄 안다고 누구나 달항아리를 빚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중심을 잡아놓은 흙덩이 안에 구멍을 뚫어 편평한 바닥을 다져준다. 이 과정에서도 중심이 흔들릴 수 있으니 차분하게 조금씩 구멍을 뚫어야 하고, 스펀지나 손을 이용해 바닥과 벽 사이의 각도를 90도로 만들어줘야 한다.

급할수록 느긋하게 높이 5㎝ 올리는 것도 쉽지 않은 모양 잡기


'아, 내가 이렇게 성격이 급했구나' 깨닫게 되는 과정이다. 그 다음, 아직은 두꺼운 상태인 벽을 양손으로 잡고 올리면서 높이를 빼준다. 흙을 잡아올리는 과정인데, 왼손과 오른손 사이에 벽을 두고 손가락 사이의 압력으로 흙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 과정이 전기물레의 핵심이자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처음엔 5㎝ 높이를 올리는 것도 쉽지 않다. 그리고 내가 동그란 달항아리를 만든다고 해서 처음부터 유선형의 벽 형태를 세워선 안된다. 100% 실패한다. 미리 설정해놓은 목표로 너무 빨리 달려가다간 넘어지기 십상이듯. 무조건 시작은 일자 원통형으로 올려야 한다. 마치 긴 일자형 필통처럼 위로 흙을 쭉 뽑아올려서 높이를 만들어준다. 이 벽의 두께는 너무 두꺼워서도, 얇아서도 안된다. 기물의 종류에 따라 0.7~0.9㎜ 정도가 좋다.
배를 얼마나 나오게 할지, 어깨라인과 전의 두께, 모양 등은 전적으로 만든 이의 몫이다.
배를 얼마나 나오게 할지, 어깨라인과 전의 두께, 모양 등은 전적으로 만든 이의 몫이다.
전을 도톰하게 만들어본 달항아리.
전을 도톰하게 만들어본 달항아리.
그 다음이 달항아리의 형태를 만드는 과정인데, 여기서 다들 주저앉는다. 쉽지 않지만, 유려한 라인의 항아리 선을 뽑아내는 과정은 (물론 익숙해진 뒤에서야) 가장 즐겁다. "오늘은 어떤 모양의 달항아리를 빚어볼까?" 콧노래까지 나온다. 굽의 높이는 어느 정도로 할지, 어깨 라인의 형태, 허리의 곡선 등을 고민하며 조금씩 형태를 완성해간다. 아래를 좁게, 가운데 배를 풍성하게, 다시 폭을 좁혀 윗부분을 적당한 크기로 만들고 전(입구) 두께를 약간 도톰한 두께로, 중심을 맞춰준 뒤 바닥을 물레에서 떼어내 옮겨준다. 이게 달항아리를 '빚는' 1차 과정이다. 이제 시작은 했다.
유약 색과 두께 등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진다.
유약 색과 두께 등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진다.
초벌한 뒤 유약을 바른 달항아리.
초벌한 뒤 유약을 바른 달항아리.
아직 시작이다. 기물 하나 완성하는 데 두 달 가량 걸리기 때문에 <상>편에선 흙을 달항아리로 빚는 과정만 소개한다. 사실, 수없이 실패했던 달항아리 제작 과정을 곱씹어보면 결국은 내 안의 성급함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너무 일찍 벽을 벌려서 항아리의 곡선을 만들려고 했거나, 높게 하려다 벽을 너무 얇게 만들었거나, 전의 두께를 고려하지 않은 채 흙을 다 벽 두께에 써버려 전이 얇아졌거나. 계속된 실패로 의기소침해질 때도 있었지만, 어느날 마술처럼 내 손을 타고 흙이 너무 잘 올라갈 때면 어김없이 희열을 느낀다.

"아, 쉬운 건 아무 것도 없지만 역시 내 말을 제일 잘 듣는 건 흙이었어!" 세상사 고달플 때, 공방에 찾아가는 것도 그래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흙을 정형하는 과정이 가장 즐겁고 흙이 내 손 끝에서 형태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흥분된다. 이번 주말에도 나는 '달멍'을 하기로, 물레를 차기로 했다.
지인에게 선물한 달항아리. 미니멀한 거실에 잘 어울린다.
지인에게 선물한 달항아리. 미니멀한 거실에 잘 어울린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