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가까이 지속된 코로나 팬데믹은 문화·예술계에 혹독한 추위를 가져다줬다. 감염 우려가 커지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하면서 함께 모여 감상하고 즐기는 것이 핵심인 공연장과 미술관 등에 발걸음이 끊겼다. 기업의 메세나(mecenat: 문화·예술계 후원) 활동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첫 해인 2020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규모는 전년보다 14.5% 줄었다. 이듬해인 2021년에도 0.7% 증가하는 데 그쳐 사실상 정체기였다.
봄볕 드는 메세나 활동…K 클래식·K 예술 후원 몰린다
그러나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과 함께 기업의 메세나 규모도 빠르게 회복 중이다. 지난해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총액은 코로나 발생 직전인 2019년 규모에 거의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격적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K 클래식’, ‘K 미술’ 등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국내 예술인이 늘고 대중의 관심도 높아지면서 기업의 지원 규모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문화예술 인프라 지원 1185억원

정몽구 재단
정몽구 재단
한국메세나협회가 조사한 ‘2022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현황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500대 기업과 기업 출연 문화재단 등 722개사의 문화예술 지원 금액은 총 2073억4400만원으로 집계됐다. 전년(1790억5400만원) 대비 약 15.8% 늘었다. 코로나 확산 직전인 2019년(2081억4400만원) 수준에 다다랐다. 지난해 지원 기업수(566개)와 지원 건수(1318건)도 전년 대비 각각 14.8%, 25.4% 증가했다.
롯데 콘서트홀
롯데 콘서트홀
분야별로는 공연장·복합문화공간·미술관 등 인프라 분야 지원 금액이 약 1185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코로나 방역지침이 완화하면서 기업이 자체 기획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신규 인프라를 개설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CJ 문화재단
CJ 문화재단
지난해 기업의 미술·전시 분야 지원 금액은 약 309억원으로 전년 대비 60.9%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9년과 비교해도 약 29.4% 증가한 수치다. 국내 미술시장이 호황기를 맞아 지난해 유통업계를 중심으로 대형 전시 및 아트페어 후원, 아트콜라보레이션 작업 등이 활발하게 이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금호문화재단
금호문화재단
이어 클래식 음악 분야 지원 금액은 169억원으로 세번째로 지원 규모가 큰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약 45.1% 증가했다. 국내 클래식 연주자가 국제 콩쿠르 등에서 성과를 내고 클래식 음악 축제가 확대되면서 관련 시장이 성장하자 기업 지원금도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지원 금액이 감소한 분야도 있다. 문학 분야 지원 금액은 약 27억원으로 전년 대비 43.8% 줄어 감소폭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 이어 연극(-18.4%), 무용(-15.5%), 영상·미디어(-13.5%), 국악·전통예술(-13.4%), 문화예술교육(-5.2%), 뮤지컬(-1.8%) 등 순으로 집계됐다.

○지역문화 특화 공헌 증가

기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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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메세나 사업의 목적을 묻는 질문에서 ‘사회공헌 전략’(63.2%)을 위한 취지라고 답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사회공헌 전략 중 세부적인 내용으로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예술지원’이 41.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으로 지역 사회 기여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자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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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기업의 예술지원 활동은 전국 단위 사업에서 각 지역에 특화한 공헌 사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국내 전 지역을 대상으로 지원사업을 운영하는 기업은 2021년 12.1%에서 지난해 4.9%로 감소했다.
스타벅스
스타벅스
지원 주체별로는 개별 기업 부문에서 KT&G가 2021년에 이어 지난해도 1위를 기록했다. 서울, 춘천, 논산, 부산 등에서 복합문화공간 ‘KT&G 상상마당’을 기반으로 공연·미술·사진·영화 등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기업 출연 재단부문에선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을 운영하는 삼성문화재단의 지원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메세나협회 관계자는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규모는 코로나 시기와 비교해 크게 증가했지만, 인프라 투자에 집중돼 있고 장르별로 지원 격차가 큰 점 등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예술계가 새로운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ESG와 연계 가능한 부분 등을 개발한다면 기업과 예술이 상생하는 선도적인 메세나 모델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