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월드컵] 애국가 부르는 이방인 감독도 한국 여자축구 '체력'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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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도 훈련' 이전 체력 수준 여러 차례 언급
전임 윤덕여 감독도 공감…"WK리그서 '고강도 '해야 경쟁력 생겨" 이달 8일 한국과 아이티의 여자 축구대표팀 평가전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9천127명의 관중이 찾았다.
9천여명의 팬이 주의 깊게 킥오프 직전의 그라운드를 살폈다면 생소한 광경을 목격했을 것이다.
금발에 푸른 눈의 외국인이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큰 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콜린 벨 감독은 애국가를 한국말로 전부 따라 부르기로 유명하다.
온 힘을 다해 소리를 내서인지, 당시 그라운드에 있던 사람들은 장내에 울리는 녹음된 애국가를 뚫고 나오는 벨 감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60대의 독일계 영국인 벨 감독은 한국, 그리고 한국 여자축구에 대한 애정이 깊다.
2019년 지휘봉을 잡은 벨 감독은 언제부턴가는 짧게나마 준비해온 한국어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2023 호주·뉴질랜드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 첫 경기를 하루 앞둔 지난 24일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벨 감독은 팀을 각별히 아낀다고 세계 취재진 앞에서 고백하기도 했다.
벨 감독은 "한국에서 정말 잘 지내고 있고, 내게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곳이 아닐까 한다"며 "우리 한국팀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이런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 벨 감독이라도 수장으로서 우리나라 여자축구의 전반적 수준에 대한 답답함은 완전히 숨길 수는 없는 모양이다.
2014-2015시즌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유럽축구연맹(UEFA) 여자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끈 벨 감독은 유럽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다 한국으로 넘어왔다.
유럽에 비하면 전력 강화를 위해 손대야 할 부분이 많겠지만, 벨 감독은 우선 '체력'을 강조했다.
체격에서 세계 강호들에 밀리는 한국 선수가 경쟁력을 갖출 방법은 체력뿐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런 지론이 압축된 표현이 '고강도'다.
훈련 때부터 강도 높게 선수들을 몰아붙여 경기 중 더 많은 스프린트를 선보일 체력적 기반을 닦는다.
전력 질주 횟수가 늘면 체격이 작아도 공수 전환 속도를 높일 수 있다.
공세를 펼 때는 날카로워지고 수세에 몰릴 때도 수월히 막아낸다.
이런 구상이 월드컵 첫 경기 상대 콜롬비아를 상대로는 통하지 않았다.
후반 들어 움직임이 굼떠진 '가상 콜롬비아' 아이티와 달리 콜롬비아 선수들은 경기 막판까지 지치지 않고 운동량, 속도를 유지했다.
25일 콜롬비아에 0-2로 완패한 후 기자회견에 나선 벨 감독에게 '고강도 전략'이 세계 무대에서 통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벨 감독은 "신체 상태는 처음에 훈련을 시작한 '기반'을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4∼5주 안에 어느 정도까지 (그 기반에서) 향상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며 "(월드컵이 펼쳐지는) 여기 이곳이 국제적 표준이다.
콜롬비아, 모로코, 독일 모두 그 수준에 올라 있다"고 답했다.
사실 벨 감독은 여러 번 유사한 답변을 내놨었다.
지난 22일 이번 월드컵 기간 전용 훈련장인 시드니 외곽의 캠벨타운 스포츠 스티다움에서도 고강도 훈련의 성과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전제'를 붙여 답했다.
당시 벨 감독은 "처음에 선수들이 보여준 체력 수준을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선까지 향상했다"며 "당연한 말이겠지만, (훈련을 시작하기 이전에) 선수의 체력이 더 좋았다면 더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강도 훈련'이라는 개념이 흐릿한 한국 여자축구의 전반적 여건, 환경, 문화에 대한 아쉬움을 지우지 못한 것이다.
여자 실업축구 WK리그 세종 스포츠토토를 이끄는 윤덕여 감독도 벨 감독의 '아쉬움'에 공감한다.
2015, 2019 월드컵 당시 대표팀을 이끈 윤덕여 감독은 FIFA의 콘텐츠 플랫폼인 FIFA+와 인터뷰에서 "세계적으로 이전보다 (경기가) 역동적이고 남자축구와 비슷해지는 현상을 볼 수 있다"며 "체력적 문제가 가장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대표팀에 있을 때도 이야기한 문제"라며 "미국 대표팀 데이터를 우리 선수들과 비교한 적 있다.
90분간 뛰는 양은 차이가 없었다.
중요한 건 정말 필요할 때 빠르게 드리블하고, 공수 전환 속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게 정상급 팀들과 차이점"이라며 "WK리그에서도 이런 부분이 실현돼야 한다.
WK리그 자체적으로 이런 '고강도'의 경기 운영이 이뤄질 때 대표팀에서 상위 팀과 경기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짚었다.
이는 정확히 벨 감독이 지난해 7월 파주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취재진과 만나 강조한 내용과 겹친다.
당시 벨 감독은 수첩을 펴더니 적어둔 자료를 볼펜으로 두드리면서 WK리그와 해외 리그 사이 활동량 차이는 없지만 스프린트 횟수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해외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대표팀의 '토양'인 WK리그 역시 세계적 표준과 발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벨 감독은 "이 부분을 개선하지 않으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낼 기회와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콜롬비아전에서는 벨 감독이 걱정한 '스프린트의 차이'가 나타났다.
우리 선수들의 질주는 번번이 상대 윙백들에게 잡혔지만, 상대 에이스인 2005년생 '신성' 린다 카이세도(레알 마드리드)는 무서운 가속력으로 골까지 터뜨렸다.
전반 39분 하프라인에서 공을 따낸 카이세도는 스프린트를 시작해 함께 뛴 김혜리(인천 현대제철)를 쉽게 따돌렸다.
이어 페널티지역 모서리에서 속도를 유지한 채 방향을 바꿔 임선주(인천 현대제철)까지 제친 후 중거리 슛으로 추가골을 뽑아 우리 대표팀의 기세를 꺾었다.
/연합뉴스
전임 윤덕여 감독도 공감…"WK리그서 '고강도 '해야 경쟁력 생겨" 이달 8일 한국과 아이티의 여자 축구대표팀 평가전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9천127명의 관중이 찾았다.
9천여명의 팬이 주의 깊게 킥오프 직전의 그라운드를 살폈다면 생소한 광경을 목격했을 것이다.
금발에 푸른 눈의 외국인이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큰 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콜린 벨 감독은 애국가를 한국말로 전부 따라 부르기로 유명하다.
온 힘을 다해 소리를 내서인지, 당시 그라운드에 있던 사람들은 장내에 울리는 녹음된 애국가를 뚫고 나오는 벨 감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60대의 독일계 영국인 벨 감독은 한국, 그리고 한국 여자축구에 대한 애정이 깊다.
2019년 지휘봉을 잡은 벨 감독은 언제부턴가는 짧게나마 준비해온 한국어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2023 호주·뉴질랜드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 첫 경기를 하루 앞둔 지난 24일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벨 감독은 팀을 각별히 아낀다고 세계 취재진 앞에서 고백하기도 했다.
벨 감독은 "한국에서 정말 잘 지내고 있고, 내게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곳이 아닐까 한다"며 "우리 한국팀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이런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 벨 감독이라도 수장으로서 우리나라 여자축구의 전반적 수준에 대한 답답함은 완전히 숨길 수는 없는 모양이다.
2014-2015시즌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유럽축구연맹(UEFA) 여자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끈 벨 감독은 유럽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다 한국으로 넘어왔다.
유럽에 비하면 전력 강화를 위해 손대야 할 부분이 많겠지만, 벨 감독은 우선 '체력'을 강조했다.
체격에서 세계 강호들에 밀리는 한국 선수가 경쟁력을 갖출 방법은 체력뿐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런 지론이 압축된 표현이 '고강도'다.
훈련 때부터 강도 높게 선수들을 몰아붙여 경기 중 더 많은 스프린트를 선보일 체력적 기반을 닦는다.
전력 질주 횟수가 늘면 체격이 작아도 공수 전환 속도를 높일 수 있다.
공세를 펼 때는 날카로워지고 수세에 몰릴 때도 수월히 막아낸다.
이런 구상이 월드컵 첫 경기 상대 콜롬비아를 상대로는 통하지 않았다.
후반 들어 움직임이 굼떠진 '가상 콜롬비아' 아이티와 달리 콜롬비아 선수들은 경기 막판까지 지치지 않고 운동량, 속도를 유지했다.
25일 콜롬비아에 0-2로 완패한 후 기자회견에 나선 벨 감독에게 '고강도 전략'이 세계 무대에서 통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벨 감독은 "신체 상태는 처음에 훈련을 시작한 '기반'을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4∼5주 안에 어느 정도까지 (그 기반에서) 향상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며 "(월드컵이 펼쳐지는) 여기 이곳이 국제적 표준이다.
콜롬비아, 모로코, 독일 모두 그 수준에 올라 있다"고 답했다.
사실 벨 감독은 여러 번 유사한 답변을 내놨었다.
지난 22일 이번 월드컵 기간 전용 훈련장인 시드니 외곽의 캠벨타운 스포츠 스티다움에서도 고강도 훈련의 성과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전제'를 붙여 답했다.
당시 벨 감독은 "처음에 선수들이 보여준 체력 수준을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선까지 향상했다"며 "당연한 말이겠지만, (훈련을 시작하기 이전에) 선수의 체력이 더 좋았다면 더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강도 훈련'이라는 개념이 흐릿한 한국 여자축구의 전반적 여건, 환경, 문화에 대한 아쉬움을 지우지 못한 것이다.
여자 실업축구 WK리그 세종 스포츠토토를 이끄는 윤덕여 감독도 벨 감독의 '아쉬움'에 공감한다.
2015, 2019 월드컵 당시 대표팀을 이끈 윤덕여 감독은 FIFA의 콘텐츠 플랫폼인 FIFA+와 인터뷰에서 "세계적으로 이전보다 (경기가) 역동적이고 남자축구와 비슷해지는 현상을 볼 수 있다"며 "체력적 문제가 가장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대표팀에 있을 때도 이야기한 문제"라며 "미국 대표팀 데이터를 우리 선수들과 비교한 적 있다.
90분간 뛰는 양은 차이가 없었다.
중요한 건 정말 필요할 때 빠르게 드리블하고, 공수 전환 속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게 정상급 팀들과 차이점"이라며 "WK리그에서도 이런 부분이 실현돼야 한다.
WK리그 자체적으로 이런 '고강도'의 경기 운영이 이뤄질 때 대표팀에서 상위 팀과 경기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짚었다.
이는 정확히 벨 감독이 지난해 7월 파주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취재진과 만나 강조한 내용과 겹친다.
당시 벨 감독은 수첩을 펴더니 적어둔 자료를 볼펜으로 두드리면서 WK리그와 해외 리그 사이 활동량 차이는 없지만 스프린트 횟수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해외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대표팀의 '토양'인 WK리그 역시 세계적 표준과 발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벨 감독은 "이 부분을 개선하지 않으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낼 기회와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콜롬비아전에서는 벨 감독이 걱정한 '스프린트의 차이'가 나타났다.
우리 선수들의 질주는 번번이 상대 윙백들에게 잡혔지만, 상대 에이스인 2005년생 '신성' 린다 카이세도(레알 마드리드)는 무서운 가속력으로 골까지 터뜨렸다.
전반 39분 하프라인에서 공을 따낸 카이세도는 스프린트를 시작해 함께 뛴 김혜리(인천 현대제철)를 쉽게 따돌렸다.
이어 페널티지역 모서리에서 속도를 유지한 채 방향을 바꿔 임선주(인천 현대제철)까지 제친 후 중거리 슛으로 추가골을 뽑아 우리 대표팀의 기세를 꺾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