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눈의 남자...부담스러운데도 자꾸 보게되는 '마성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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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험상궂은 표정의 남자가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정면을 노려본다. 거칠고 강렬한 선과 색, 거대한 작품 크기(가로 194cm, 세로 259cm) 탓에 그림을 보는 관객은 저도 모르게 눈을 돌리기 일쑤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앞에서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마성(魔性)의 그림.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중인 서용선 작가(72)의 대표작 ‘빨간 눈의 자화상’ 얘기다.
작풍만큼이나 서용선은 독특한 작가다.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14년 이중섭미술상을 받은 그는 '국가대표급 현역 작가’로 불린다. 하지만 한국 현대미술의 양대 흐름인 단색화와 민중미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보기 좋은 그림’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전쟁이나 역사 등 어려운 주제를 다룬 데다가 분위기와 색채도 어두운 탓에 잘 팔리는 편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남의 눈치 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에 골몰한다. 2008년 온전히 그림에 집중하기 위해 정년이 10년이나 남은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직을 스스로 버렸던 건 그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아트선재센터 1~2층에서 열리고 있는 ‘서용선: 내 이름은 빨강’은 작품 70여점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 제목은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서 따왔다. 서 작가의 작품세계와 소설 내용에 ‘전통과 서구 문명의 충돌’이란 주제가 녹아있다는 공통점, 서 작가가 빨간색을 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는 설명이다.
전시의 주무대는 2부인 2층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거대한 ‘빨간 눈의 자화상’부터 눈에 들어온다. 서 작가는 청년 시절부터 꾸준히 자화상을 그려왔다. 자화상으로만 구성한 전시를 연 적도 있다. 그 많은 자화상 중에서도 이 작품은 대표적인 자화상으로 꼽힌다. 분노에 사로잡혀 괴물처럼 변해가는 인간의 모습, 혹은 세상을 더욱 날카롭게 바라보려는 의지를 담은 작가의 시선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그림이다.
서 작가는 ‘역사 화가’로도 불린다.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한국의 역사를 다룬 작품들을 여럿 그렸기 때문이다. 조선 초기 문인 김시습을 주제로 한 작품 ‘매월당’, 6·25 전쟁을 주제로 한 ‘폐허1’과 ‘피난민’ 등은 그의 역사 화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독서와 현장 답사 등을 통해 강도 높은 고증을 거친 게 특징이다. 군부 독재 시절 군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들의 어색한 모습을 그린 ‘정치인’을 비롯해 현실 비판적인 그림도 많다. 반전(反戰)과 독재 비판 등이 주요 주제다. 그러면서도 특정 이념이나 정치세력과 과도하게 결부되지 않는다. 민중미술 화가들과 구분되는 차별점이다.
전시의 1부인 1층에는 삶과 도시를 다룬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작가가 1980∼1990년대 서울을 비롯한 세계 각국 도시들의 모습을 직접 관찰하고 그린 작품들이다. 서 작가는 집이 있는 미아리와 일터인 서울대를 대중교통으로 오가며 도시의 모습과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해 왔다. 1991년작 ‘숙대 입구 07:00-09:00’가 대표적이다. 김장언 아트선재센터 관장은 “1990년대 서울의 경관과 사람들, 분위기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뉴욕, 베를린, 베이징 등을 그린 작품들도 함께 나와 있다. 거친 색과 조형 탓에 작품은 다소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해외에 비해 ‘보기 편하고 좋은 그림’을 선호하는 국내 관객의 특성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전시를 보고 난 뒤에도 자꾸 생각나게 하는 매력이 있다는 게 관객들의 얘기다. 전시는 총 3부로 이뤄져 있는데, 지금은 1~2부만 열리고 있다. ‘삶과 자연’을 주제로 풍경화와 인물화, 나무 조각 등을 소개하는 3부는 9월 15일 개막한다. 전시는 10월 22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작풍만큼이나 서용선은 독특한 작가다.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14년 이중섭미술상을 받은 그는 '국가대표급 현역 작가’로 불린다. 하지만 한국 현대미술의 양대 흐름인 단색화와 민중미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보기 좋은 그림’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전쟁이나 역사 등 어려운 주제를 다룬 데다가 분위기와 색채도 어두운 탓에 잘 팔리는 편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남의 눈치 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에 골몰한다. 2008년 온전히 그림에 집중하기 위해 정년이 10년이나 남은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직을 스스로 버렸던 건 그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아트선재센터 1~2층에서 열리고 있는 ‘서용선: 내 이름은 빨강’은 작품 70여점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 제목은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서 따왔다. 서 작가의 작품세계와 소설 내용에 ‘전통과 서구 문명의 충돌’이란 주제가 녹아있다는 공통점, 서 작가가 빨간색을 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는 설명이다.
전시의 주무대는 2부인 2층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거대한 ‘빨간 눈의 자화상’부터 눈에 들어온다. 서 작가는 청년 시절부터 꾸준히 자화상을 그려왔다. 자화상으로만 구성한 전시를 연 적도 있다. 그 많은 자화상 중에서도 이 작품은 대표적인 자화상으로 꼽힌다. 분노에 사로잡혀 괴물처럼 변해가는 인간의 모습, 혹은 세상을 더욱 날카롭게 바라보려는 의지를 담은 작가의 시선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그림이다.
서 작가는 ‘역사 화가’로도 불린다.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한국의 역사를 다룬 작품들을 여럿 그렸기 때문이다. 조선 초기 문인 김시습을 주제로 한 작품 ‘매월당’, 6·25 전쟁을 주제로 한 ‘폐허1’과 ‘피난민’ 등은 그의 역사 화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독서와 현장 답사 등을 통해 강도 높은 고증을 거친 게 특징이다. 군부 독재 시절 군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들의 어색한 모습을 그린 ‘정치인’을 비롯해 현실 비판적인 그림도 많다. 반전(反戰)과 독재 비판 등이 주요 주제다. 그러면서도 특정 이념이나 정치세력과 과도하게 결부되지 않는다. 민중미술 화가들과 구분되는 차별점이다.
전시의 1부인 1층에는 삶과 도시를 다룬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작가가 1980∼1990년대 서울을 비롯한 세계 각국 도시들의 모습을 직접 관찰하고 그린 작품들이다. 서 작가는 집이 있는 미아리와 일터인 서울대를 대중교통으로 오가며 도시의 모습과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해 왔다. 1991년작 ‘숙대 입구 07:00-09:00’가 대표적이다. 김장언 아트선재센터 관장은 “1990년대 서울의 경관과 사람들, 분위기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뉴욕, 베를린, 베이징 등을 그린 작품들도 함께 나와 있다. 거친 색과 조형 탓에 작품은 다소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해외에 비해 ‘보기 편하고 좋은 그림’을 선호하는 국내 관객의 특성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전시를 보고 난 뒤에도 자꾸 생각나게 하는 매력이 있다는 게 관객들의 얘기다. 전시는 총 3부로 이뤄져 있는데, 지금은 1~2부만 열리고 있다. ‘삶과 자연’을 주제로 풍경화와 인물화, 나무 조각 등을 소개하는 3부는 9월 15일 개막한다. 전시는 10월 22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