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황제' 마이클 잭슨도 선택…수천억대 유산 분쟁 막은 묘수
생전 1995년 '마이클 잭슨 가족 신탁' 작성
부동산 저작권 등 소유권 신탁회사로 옮겨
韓도 제도 비슷 ... "유류분 제도 피할길 열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2009년 심장마비로 돌연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수천억원대의 부동산 및 음악 저작권 등을 두고 유산 분쟁이 일어날 것이란 우려가 잠시 나왔지만, 상속작업은 큰 잡음 없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 잭슨이 1995년 '마이클 잭슨 가족 신탁'이라는 신탁 계약서를 작성해 유산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했기 때문이다.
계약서를 쓸 당시 37세였던 그는 부동산과 저작권 등의 소유권을 신탁회사로 미리 옮겨놓고, 살아있는 동안 신탁사가 자산을 운용해 벌어들인 수익을 받았다. 사망 후에는 신탁자산 운용수익의 20%를 어린이자선단체에 기부하고, 50%는 어머니인 캐서린 잭슨에게 돌아가도록 설정했다. 어머니가 사망할 경우 수익이 세 자녀에게 똑같은 비율로 배분되는 조건도 달았다.



마이클 잭슨이 생전에 가입한 가족 신탁은 우리나라의 상속신탁제도와 비슷하다. 상속신탁제도는 현금과 유가증권, 부동산 등을 은행 및 증권사 등 신탁사에 맡긴 뒤 신탁자산 운용으로 발생하는 수익을 언제, 누구에게 줄지 지정하는 제도다. 국내에선 2012년 신탁법 개정으로 도입된 유언대용신탁 방식이 상속신탁제도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하면 생전에 본인이 신탁자산 운용 수익을 지급받을 수 있고, 일부는 자식에게 나눠 줄 수 있다. 사후에는 자녀, 손자 등을 상속인으로 지정할 수 있다.

유류분 제도 피할 길 되나

상속 전문가들은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피상속인)의 선택권이 넓어지는 점을 상속 신탁의 장점으로 꼽는다. 사법부가 유언대용신탁 계약으로 신탁사에 소유권이 이전된 재산은 유류분 반환 대상이 아니라는 판례를 내놓으면서 이 점이 명확해졌다. 유류분이란 재산을 물려받는 사람(상속인)이 유언에 상관없이 일정 비율의 유산을 반드시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민법 1009조는 피상속인 사망 시 상속분을 '배우자 1.5, 자녀 각 1’로 정하고 있는데, 피상속인의 자녀와 배우자는 해당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을 무조건 유류분으로 받을 수 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3부는 2020년 3월 상속인 A씨 등이 공동상속인 B씨를 상대로 낸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유언대용신탁에 맡긴 신탁재산은 유류분 산정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법원이 이 같은 판결을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A씨의 부친인 C씨는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 C씨는 2014년 한 은행과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체결하고, 현금 3억원과 3개의 부동산을 은행에 위탁했다. 생전에 신탁자산 운용으로 발생한 수익은 자신이 가져가고, 사후 1차 수익자는 둘째 딸인 B씨를 지정했다. 2017년 C씨가 사망하자 B씨는 신탁사에 맡긴 부동산의 소유권을 자신 앞으로 옮기고, 이듬해 신탁 계좌에서 3억원을 출금했다.

이에 C씨의 며느리인 A씨와 그 자녀들은 대습상속인(상속인이 피상속인보다 먼저 사망한 경우 그 사람을 대신해 상속받는 사람) 자격으로 B씨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걸었다.
자료=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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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쟁점은 유언대용신탁에 맡긴 재산이 유류분 계산의 근거가 되는 적극재산과 증여재산에 포함되는지였다. 민법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유류분은 △상속이 시작될 때 고인이 갖고 있던 재산(적극재산) △시기에 상관없이 생전에 상속인에게 증여된 재산(증여재산) △사망하기 1년 이내에 제3자에게 증여된 재산(증여재산)을 기반으로 계산한다. 다만 제3자가 재산을 받음으로써 특정 상속인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이 역시 시기와 상관없이 유류분 산정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재판부는 A씨 측의 청구를 기각하면서 "소유권이 은행으로 이전된 유언대용신탁 재산은 적극적 상속재산액과 증여액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아 유류분 산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 "해당 신탁계약에 따른 소유권 이전은 상속개시 시점보다 1년 앞서 이뤄졌으며, 해당 은행이 신탁계약으로 유류분 부족액이 발생하리라는 점을 알았다고 볼 수도 없다"고 봤다. 같은 해 10월 열린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이 판결을 두고 법조계에선 사실상 유류분 제도를 피해 재산을 상속할 길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특정 상속인에게 재산을 몰아주거나, 공익재단 등에 기부하고도 유류분 제도에 걸려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하면 이를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법무부에 따르면 전국 법원에 접수된 유류분 청구 소송은 2010년 452건에서 2020년 1511건으로 10년 새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의사 무능력 상태 계약은 '무효'

신탁사에 재산을 위탁하더라도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보유세의 납세 의무는 피상속인(위탁자)에게 남는다. 주택의 경우엔 신탁을 맡기더라도 위탁자의 주택 수에 포함돼 재산세와 종부세 계산의 근거가 된다. 신탁재산 운용으로 발생하는 수익과 부가가치세 대한 납세 의무도 위탁자에게 있다.

유언대용신탁을 체결한 위탁자가 사망한 후 진행하는 상속 집행도 유증·사인증여와 유사한 성격으로 보기 때문에 증여세 대신 상속세를 매기고 있다. 유언대용신탁 등을 활용하더라도 상속 과정에서 특별한 절세 효과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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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 계약을 작성할 당시 피상속인의 의사 무능력 상태로 인해 계약이 무효가 된 사례도 있다. 대법원은 올해 3월 알츠하이머병을 앓던 D씨가 증권사를 상대로 "의사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맺은 계약 내용은 무효"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최종 승소로 판결했다.

D씨는 2018년 12월과 2019년 3월 신탁 계약을 체결했는데, 그는 2019년 1월 받은 한국형 간이정신상태검사에서 16점을 받았다. 이 점수가 17점 이하인 경우 '분명한 인지 기능장애'로 평가한다. 피고 측은 "D씨가 그 후 다시 받은 검사에서 정상인 수준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일시적으로 상태가 호전되더라도 알츠하이머병 특성상 증상이 지속해서 악화한다"며 신탁계약이 무효라고 봤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