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아동학대 처벌법 악용에 무너진 교권
“하루종일 녹음기를 틀어놓습니다.” “보디캠을 달고 싶은데 불법인가요?”

범죄 현장이 아니라 ‘교실’로 출근하는 초등학교 교사들의 이야기다. 초등 교사들은 서로 ‘아이들이 주는 편지는 꼭 모아놓으라’고 조언한다. 나중에 학부모가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을 때 무고를 증명할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 사건은 24세의 젊은 교사가 교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권 붕괴 실태가 표면화하면서 전국 각지 교사들은 “나도 같은 일을 겪었다”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민원스쿨’ 인스타그램 계정이 지난주 제보를 받은 결과 3일 만에 2077건의 학부모 교권침해 사례가 접수됐다. 교사들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학생에게 심리검사를 권해서’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아서’ ‘(학부모) 전화를 안 받아서’ 아동학대로 고소당했다. 일단 송사에 휘말리는 순간 1~2년 이상은 정상적인 교직 생활이 불가능해진다. 이로 인한 공황 장애, 우울증, 자살 충동을 겪고 있다는 교사가 줄을 이었다.

처음부터 아동학대처벌법이 교사들의 족쇄가 된 것은 아니다. 당초(2014년) 이 법은 학대하는 부모를 벌하기 위해 제정됐다. 그러나 2017년 한 사건을 계기로 법을 악용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당시 현장학습을 인솔하던 A교사는 버스에서 복통을 호소한 B학생의 부모로부터 ‘아이를 가까운 휴게소에 내려주면 데리러 가겠다’는 연락을 받고 휴게소에 혼자 내리게 했다는 이유로 경찰수사를 받았다. 해당 시·도교육청은 A교사를 직위 해제했다. 한 교대 교수는 “해당 사건 이후 아동학대 신고가 교사를 꺾을 수 있는 강력한 민원 방법이라는 소문이 학부모 사이에 났다”며 “치명적인 선례를 남긴 셈”이라고 말했다.

아동학대 허위 신고에 대한 무고죄 성립이 어려운 점도 문제다. 한 변호사는 “혐의를 벗은 교사가 학부모를 무고죄로 고소하고 싶어도 ‘내 아이 말을 믿고 신고했을 뿐’이라고 하면 더 이상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일선 교사들이 한목소리로 교권 회복을 위한 가장 시급한 조치로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을 꼽는 이유다. 여당은 초·중등교육법과 아동학대처벌법을 개정해 교사의 생활 지도에 아동학대 면책권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전문가들은 법 개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교권 없는 교실에 좋은 교육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법 개정에 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