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 위기 시 유동성 공급 한도를 100조원으로 늘린다. 지금은 63조원가량 공급이 가능한데 이를 40조원가량 더 늘리기로 했다. 한은이 은행에 대출할 때 적용하는 금리는 지금보다 0.5%포인트 낮춘다. 고객의 빠른 예금 인출로 순식간에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와 같은 일이 한국에서 재연되는 걸 막기 위한 예방 조치다.

한은은 27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한국은행 대출제도 개편안’을 의결했다. 한은은 이날 은행 대상 자금조정대출제도와 비은행예금취급기관 대상 유동성 지원에 필요한 적격담보 범위를 넓혔다.

한은은 앞서 국채, 통화안정증권, 정부보증채, 신용증권, 주택금융공사 주택저당증권(MBS), 특수은행채로 한정돼 있던 적격담보 범위를 은행채와 아홉 개 공공기관 발행채권까지 한시적으로 확대한 상태다. 이번 개편안에선 여기에 더해 기타 공공기관채, 지방채, 우량 회사채까지 상시로 인정하기로 했다.

한은은 이 조치로 은행의 대출한도가 약 90조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은 위기 시 공급 가능한 유동성 규모가 약 63조원에서 100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에는 대출채권까지 적격담보에 포함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은행이 상시로 이용할 수 있는 초단기 자금조정대출제도의 적용 금리도 낮춘다. 그간 기준금리에 1%포인트를 더해 금리를 책정했지만 이를 0.5%포인트만 더하는 것으로 변경한다. 1영업일인 대출 기간은 금통위가 의결하면 최대 3개월까지 연장된다.

한은이 이 같은 대출제도 개편안을 마련한 것은 ‘디지털 뱅크런’ 우려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디지털 뱅크런 가능성에 대비해 예금취급기관의 유동성 안전판 역할을 강화하기로 했다”며 “한은법 테두리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했다”고 말했다. 미국 중앙은행(Fed)과 영국 중앙은행, 유럽 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 등 주요 중앙은행과 기준을 맞추는 측면도 고려했다.

한은의 유동성 공급 확대 조치로 예금취급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홍경식 한은 통화정책국장은 “부실 기관을 돕겠다는 것이 아니라 막연한 우려 때문에 뱅크런이 확산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라며 “도덕적 해이로 이어지지 않도록 규제와 감독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