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드렁한 평론가 오동진도 떨게 한 공포물 (1) 힐하우스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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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무서운 영화 ① 힐 하우스의 유령
![넷플리스 제공](https://img.hankyung.com/photo/202307/01.34171092.1.jpg)
‘힐 하우스의 유령’은 두 가지의 중첩된 공포가 있다. 하나가 ‘하우스’ 곧 공간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유령’인데 그게 하필 엄마의 유령이다. 사람들은 흔히들 유령을 무서워 하는 것 같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사람들이 정작 무서워 하는 것은 공간이다. 예컨대 텅 빈 학교 복도 같은 곳, 아그리파가 있는 텅 빈 미술실(‘여고괴담’ 시리즈),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는 어두운 계단 같은 곳, 혹은 사람들이 사라진 마을 폐가가 이어진 골목길 등이다. 예컨대 나홍진의 ‘곡성’에서 이상한 여자 무명(천우희)은 어두운 골목길을 헤매는 종구(곽도원)앞에 불쑥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어디 가 시방? 저짝으로는 가지 말어. 잘못허다가는 죽어.” 그때 멀리서 닭이 운다. 난 이 장면 이후 한동안 골목길을 선뜻 들어서지 못했다. 어디선가 천우희가 스윽 나타날 것 같아서였다. 그 음산함이 나를 덮칠 것 같아서였다. 천우희에게 카톡을 했을 정도다. 우희, 난 네가 무서워졌어.
난 서구인들을 이해할 수가 없는데 끽해야 자기 혼자 혹은 집사나 일하는 사람까지 겨우 두셋이 사는 정도인데 언덕 배기에 그토록 큰 저택에서 살아갈 이유가 있냐는 것이다. 방은 거의 위아래 층 10개에 가깝고 다이닝 룸이다 지하 창고다 뭐다 해서 비어 있는 공간이 한 가득이고 거기 마다 도통 음침하기가 이를 데 없다. 2층 침실에 누어 있을 때도 아래 층 어딘 가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면 섬뜩하지 않겠는가. 대프니 뒤 모리에의 소설 『레베카』에서도 그런 저택 어딘 가에 남자의 미친 아내를 죽기 전까지 숨겨두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집에서 벌어지는 공포이다. 사람은 너무 큰 집에서 살 필요가 없다. 넷플릭스 드라마 ‘힐 하우스 유령’은 그런 식의 대저택의 공포를 그리는 내용이다 게다가 귀신들린 집이다.
![GettyImages](https://img.hankyung.com/photo/202307/01.34171180.1.jpg)
넷째 딸 넬리가 죽게 되는 그 이상한 일이 바로 이 10부작을 관통하는 핵심 사건이다. 넬리는 아이 때부터 침대 머리 위, 침대 천정에서 내려다 보거나 훅 다가서는 목 꺾인 여자의 환영을 본다. 넬리의 이 ‘정신적 혼란’은 엄마의 사망 이후 더욱 심해진다. 엄마는 정신착란을 일으켰고 그런 엄마를 아빠가 죽였을 수 있다는 암시가 깔린다. 적어도 아이들은 그렇게 의심한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유령이 돼 집안을 돌아 다니며 아이들에게 나타난다. 복도 저 끝은 늘 어둠컴컴하다. 거기서 훅 목이 꺾인 여자가 나타나거나 죽은 엄마가 나타난다. ‘힐 하우스 유령’은 가장 믿어야 할 사람을 가장 믿지 못하게 되는 상황, 그 심리적 트라우마가 만들어 내는 공포를 그린다. 진짜 무섭다. 핫 여름, 진짜 무서운 공포가 필요하다면, 이 영화 ‘힐 하우스의 공포’를 권해 드린다.
굳이 몰라도 되는 이야기지만 이 드라마를 만든 마이클 플레니건은 내용을 두 원작에서 가져온 듯이 보인다. 헨리 제임스의 소설 『유령의 집, The Turn of the Screw』과 셜리 잭슨의 동명소설 『더 헌팅 오브 힐 하우스,The Haunting of Hill House』이다. 드라마 ‘힐 하우스의 유령’의 원제가 ‘The Haunting of Hill House’이다. 셜리 잭슨의 소설은 워낙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였던 탓에 1963년 로버트 와이즈 감독이 만들었고, 1999년에는 얀 드봉 감독이 ‘더 헌팅, The Haunting’이란 제목으로 만들었다. 다 불필요한 지식이다. 아니 지식도 아니다.
▶ 2편 보러 가기
https://www.arte.co.kr/stage/review/article/2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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