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본사. 사진=한국경제신문
현대차‧기아 본사. 사진=한국경제신문
간부사원들만 해당되는 취업규칙을 바꿀 때도 전체 근로자 과반의 동의가 필요한지를 두고 오랫동안 법적 분쟁을 벌여온 현대자동차가 마지막 재판을 앞두고 변호인단 규모를 대폭 키웠다.

대법원 판결 이후 불리해진 전세를 뒤집기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는 평가다. 대법원은 두 달 전 “근로자 과반 동의 없인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바꿔선 안 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법원에서 40년 넘게 예외사유로 인정해온 ‘사회통념상 합리성’ 원칙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대차가 ‘막판 뒤집기’에 성공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최근 법무법인 태평양과 율촌을 부당이득금 반환소송 파기환송심을 대리할 로펌으로 추가 선임했다. 두 로펌은 그동안 이 사건을 맡아온 지평과 함께 재판 전략을 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국내 7대 로펌 중 세 곳이 현대차의 조력자로 나선 것이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민사1부는 다음달 18일 첫 번째 변론기일을 열고 본격적인 심리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 사건은 현대차가 2004년 7월 주5일 근무제 도입에 따라 기존 취업규칙과 별도로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들에게만 적용되는 취업규칙을 만들면서 비롯됐다. 이 취업규칙엔 월 개근자에게 지급되는 1일 휴가를 폐지하고, 연차 휴가 상한선을 25일로 정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현대차는 당시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바꾸는 경우 해당 규정을 적용받는 근로자들의 동의만 받으면 된다’는 대법원 판례와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을 근거로 이 취업규칙을 적용받는 간부사원의 89%의 동의를 받았다.

하지만 일부 간부사원이 “노동조합의 동의없이 취업규칙이 변경됐기 때문에 무효”라면서 새 취업규칙이 도입되지 않았다면 받을 수 있었던 연·월차 휴가수당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1심에선 패소했지만 2심에서 판결을 뒤집었다. 2심이 진행 중이던 2009년 5월 대법원이 새로운 판례를 내놓은 것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대법원은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할 때는 미래에 이 규칙을 적용받는 집단에 들어올 수 있는 근로자들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원고들로선 “나중에 간부사원으로 승진할 수 있는 일반직‧연구직‧생산직 등 다른 근로자의 동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취업규칙 변경은 무효”라는 주장에 더 힘을 실을 수 있게 된 셈이었다.

현대차는 상고했지만 의미있는 반전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5월 사회통념상 합리성 원칙 대신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 여부를 가지고 이 사건을 판단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현대차 패소 판결이 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법조계에선 대법원 판결이 사실상 근로자들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이 입증돼야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받지 않고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바꾼 것이 유효하다고 인정하겠다는 의미로 보고 있다. 이번 판결에서 다수의견이었던 대법관 7명은 “①관계 법령이나 근로관계를 둘러싼 사회 환경의 변화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인정되고 ②집단적 동의를 구하기 위한 사용자의 진지한 설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③노조나 근로자들이 합리적 근거나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취업규칙 변경에 반대했다는 등의 사정이 있어야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세가지 조건을 어느 정도 충족해야 집단적 동의권 남용인지가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파기환송심에서 현대차의 취업규칙 변경이 유효한지를 두고 두고 더욱 치열한 법리 다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원칙이 인정되지 않은 채 현대차가 패소한다면 기업들은 취업규칙을 바꿀 때마다 근로자들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이 무엇인지를 두고 상당한 혼란을 겪을 수 있다”며 “이 같은 사태를 피하기 위해 현대차 측은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이와 무관한 직원들의 동의까지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법적근거를 더욱 세밀하게 만들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