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들어갈 수 없어요.”

돈 된다던 물류센터 '텅텅'…하청업체 '날벼락'
경기 이천 설성면에 있는 연면적 5만㎡ 규모 B물류센터 공사현장은 ‘접근 금지’ 현수막이 곳곳에 나붙어 있다. 텅 빈 현장을 지키는 것은 하도급업체 사장들. 한 업체 대표 이모씨는 “시공사가 작년부터 공사비를 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유치권 행사를 위해 점거를 시작했다”며 “사가겠다는 사람도 없고, 돈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물류센터를 둘러싼 갈등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물류센터는 시행사 사이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했다. 코로나19 기간에 온라인 판매가 늘어나며 수요가 급증했다. 부동산 자산운용사들이 ‘다 지으면 우리가 사겠다’는 입도선매 계약을 시행사와 체결하는 일도 잦았다. 좋은 땅과 매수 예정자만 찾으면 중간에서 수십억~수백억원은 거뜬히 벌어들일 수 있다고들 했다.

그러나 팬데믹이 끝나고 경기가 꺾이면서 물류센터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시행사들은 공사를 마치면 비싼 값에 팔릴 것으로 기대하고 물류센터를 지었는데 물건이 안 팔리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B물류센터를 지은 S시행사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금 1000억원 상환 기한이 도래했지만 지난 2월 준공 후 지금껏 돈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정상적인 사업장이라면 준공 전에 인수자를 확보했어야 하는데, 이런 물건은 제값에 팔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B물류센터를 관리하는 신탁사는 “매각이 안 되면 공매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시장 가격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커 대주단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증권사 PF 대출 연체율은 올해 1분기 15.9%까지 상승했다. 2020년(3.3%) 대비 10%포인트 넘게 뛰어올랐다.

시공사는 하도급업체 25곳에도 100억원에 가까운 공사대금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하청업체와 관련된 직원만 수백 명인데 모두 수개월째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물류센터가 ‘대박’이 아니라 ‘쪽박’ 사업장이 된 근본 원인은 수요 대비 공급이 넘치기 때문이다. 2분기(4~6월) 수도권 물류센터 공급량은 124만1220㎡로 역대 최대다. 올해 총공급량은 650만㎡로 예상된다. 지난 수년간 공사를 시작한 현장이 속속 완공되고 있어서다.

수요는 따르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기업인 CBRE에 따르면 상반기 수도권 물류센터(연면적 3만3000㎡ 이상) 평균 공실률은 17%로 지난해(10%) 대비 7%포인트 상승했다. 저온 물류센터 공실률은 42%다.

운용사들은 줄줄이 매입 계약을 깨겠다고 통보하고 있다. M투자운용사는 인천 중구에 있는 한 물류센터의 최종 매입을 거부하고 계약금을 반환했다. 오뚜기도 경기 파주의 물류센터 임차 계약을 철회했다.

새마을금고 등 돈을 댄 금융회사들은 떼일 위기에 몰렸다. 한국신용평가원에 따르면 새마을금고가 건설부동산업에 투자한 금액은 56조4000억원인데 이 중 물류센터 개발은 1조5000억원대(2.6%)에 이른다.

작년 인허가를 받은 수도권 물류센터 148건 중 118건(79.7%)이 사업성 악화로 착공조차 못 한 것을 감안하면 부실화된 대출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강호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