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거스르는 '플라잉 킴'…창공서 빛났다 사라지는 '점프'의 미학
하이다이빙(high diving)이란 스포츠가 있습니다. 높은 곳에서 물로 뛰어드는 종목이죠. 일반 다이빙이 1, 3, 10m 위에서 뛰어내린다면 하이다이빙은 20m(여자), 27m(남자) 위에서 뛰어내립니다. 27m면 아파트 10층 높이입니다. 2~3m만 돼도 아찔한데, 얼마나 무서울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저 아래에 물이 있다는 걸 안다고 하더라도요.

눈부신 여름날의 계곡을 상상해 봅니다. 수영을 하던 사람들이 재미로 절벽에서 뛰어내렸고, 그 중에 곡예사나 체조선수들이 갖가지 묘기를 더했겠지요. 점점 높은 곳에서, 점점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면서 다이빙은 스포츠가 되었습니다.

다이빙은 어떻게 떨어질 것인가에 대한 탐구입니다. 중력에 가속도가 붙으면 최고시속 90km까지 도달한다고 하지요. 엄청난 힘을 이기며 다양한 점프와 트위스트를 행한 후 최대한 물을 튀기지 않고 깔끔하게 입수하며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합니다.

다이빙이 중력에 순응하는 움직임이라면 대부분의 점프는 중력을 거스르는 움직임입니다. 인간은 얼마나 높이 뛰어오를 수 있을까요? 장대높이뛰기 세계기록이 6.22m이고 높이뛰기 세계기록은 2.45m입니다. 맨몸으로 2m 남짓을 뛰어오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거의 눕다시피 몸을 기울여서요.

몸통을 세우고는 얼마나 높이 뛸 수 있을까요? 장애물 달리기에선 남자가 106.7cm의 허들을, 여자가 83.8cm의 허들을 뛰어 넘으며 달립니다. 허들을 넘어뜨리지 않을 만큼 높으면서도 빠르게 뛰기 위해 선수들은 몸통을 최대한 숙이고 다리는 번쩍 들어 달려갑니다.
중력 거스르는 '플라잉 킴'…창공서 빛났다 사라지는 '점프'의 미학
그렇다면 오직 높이, 그리고 우아하게 뛸 방법을 생각해봅시다. 공중에서 두 다리를 쫙 벌리며 뛰어 오르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발레의 대표적인 점프인 '그랑 주테'(grand jeté)에요.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희열을 가장 극적으로 표출하는 동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발레를 형용하는 특질로 ‘ethereal’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창공을 지칭하는 히랍어 Æther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심연의 혼돈 카오스로부터 어둠의 신 에레보스와 밤의 여신 닉스가 태어났고, 이들로부터 창공의 신 아이테르(Aither)와 낮의 여신 헤메라가 태어났습니다. 칠흑 같은 밤으로부터 태어난 찬란한 창공. 인간은 신이 머무는 창공을 열망해왔고, 이러한 정신은 발레에서 극적인 형식으로 발현되었습니다.

발레 교육에서는 점프 연습을 아주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실시합니다. 땅을 밀어내기 위한 근육의 힘을 키우고, 도약 및 착지 시에 충격을 줄여주는 드미 플리에(demi plie), 공중에서 가볍게 머무르는 발롱(ballon) 등을 가르칩니다. 무엇보다도 골격이 덜 자란 어린 나이에 큰 점프를 시키지 않는 절제가 중요합니다. 이런 훈련 끝에 그랑 제테가 완성됩니다.

그랑 제테는 두 가지의 힘, 즉 두 다리를 동시에 앞뒤로 벌리는 힘과 몸통을 높이 띄우는 힘이 동시에 작용하는 움직임입니다. 둘을 제대로 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로와 세로의 움직임이 절묘한 균형을 이룰 때 마치 공중에 머무르는 듯한 환영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환영을 만들어낸 무용수가 전설이 됩니다.

그 옛날 바슬라브 니진스키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내려올 줄 몰랐다던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가 전해진다면 오늘날 점프로 유명한 무용수는 김기민입니다. 마린스키발레단의 주역 무용수인 김기민의 별명은 ‘플라잉 킴(flying Kim)’입니다. 그를 본 관객이라면 믿을 수 없는 높이로 뛰어오르는 ‘중력을 거스르는 점프’를 잊지 못합니다.

플라잉 킴의 비결은 뭘까요? ‘타고 나야 한다’거나 ‘노력해야 한다’고 말해왔던 그는 최근 좀 더 자세하게 비결을 풀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기다렸다가 점프 직전에 아주 빠르게 준비 동작을 한 뒤에 뛰고, 공중에서 힘을 뺀다"고. 응축시켰다가 한 번에 폭발하여 휘발되는 힘. 창공에서 빛났다가 사라지는 불꽃놀이 같습니다. 그랑 제테가 아름다운 이유는 중력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조건을 상기시키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력 거스르는 '플라잉 킴'…창공서 빛났다 사라지는 '점프'의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