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ABBA VOYAGE, LONDON>


최근 2~3년 동안 XR기술, 가상 인간, 인공지능(AI) 등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시공을 초월한 가상공연에 대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고, 일부 공연은 실제 라이브 공연과 같은 현장의 감동을 전달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가상 공연으로 2022년 5월에 영국 런던에 마련된 전용 공연장 아바 아레나에서 공개된 스웨덴의 슈퍼 혼성밴드 아바의 가상공연의 ‘ABBA VOYAGE’를 들 수 있다.
10여년전 '디지로그 공연'을 그렸던 이어령 선생의 혜안
가상 인간, 모션 캡처 등의 첨단 기술과 스펙터클한 키네틱 라이팅(Kinetic lighting) 그리고아바의 노래를 융합해 만든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공연인 ‘ABBA VOYAGE’는 현재 70대 나이의 ABBA의 멤버들이 나오는 실제 공연이 아니라 1970년대의 ABBA 멤버들의 모습을 재현한 디지털 아바타와 실제 라이브밴드가 나오는 라이브 공연이며, 진짜 콘서트 현장의 생동감을 전달함과 동시에 관람객들은 단순히 공연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춤추며 노래하며 즐거운 분위기를 함께 만들었다.
10여년전 '디지로그 공연'을 그렸던 이어령 선생의 혜안
라이브 밴드 이외에 가상 무대의 조명과 실제 오프라인 공연장에서의 스펙터클한 키네틱 조명이 쉼 없이 연결돼 진짜 공연장 같은 생동감과 몰입감은 극대화되고, 관람객은 40년 전 아바의 공연을 보는 듯한 여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90분의 공연이 끝난 뒤에 70대 나이의 현재 아바 멤버들이 실제 무대에 등장하면서, 관람객들은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만나게 된다. 실제 아바 멤버들의 등장은 기술적인 완성도를 떠나 40년 전의 공연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고, 아바 멤버와 팬들이 시공을 초월하여 함께 만나는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물론, 1억7500만달러의 제작비와 5년의 제작 기간, 스타워즈 감독 조지 루카스가 설립한 VFX회사 등이 참여하여 만든 블록버스터 공연이라는 점도 상업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10여년전 '디지로그 공연'을 그렸던 이어령 선생의 혜안

<2010년 디지로그 사물놀이, 서울>


10여년 전으로 기억한다. 홀로그램 무대가 설치된 디스트릭트의 스튜디오에 이어령 선생님이 방문하셔서, 당사의 디지털 솔루션들을 보신 뒤에 디지털 기술에 아날로그 즉, 실제 퍼포머와 관람객 그리고 인문학적 상상력과 한국의 스토리가 융합된 디지로그(Digilog) 콘텐츠의 가능성에 대해 강의 수준의 말씀을 해 주신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디지털 기술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으신 크리에이터 이어령 선생님은 얼마 뒤에 디스트릭트의 최은석 대표에게 김덕수 패 사물놀이와 안숙선, 국수호 선생님들과 같은 한국의 대표적인 무형 문화재분들이 참여하는 ‘디지로그 사물놀이’를 제안하셨다.

7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가지신 예술적 에너지와 디지로그 이론에 당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공간 경험을 디자인하고자 했던 최은석 대표의 아이디어와 4D기술이 가미되어 디지로그의 신기원을 이뤘다고 평가받는 ‘디지로그 사물놀이’가 탄생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홀로그램 영상만으로 가상의 공연을 진행한 케이스는 있었으나,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디지로그 4D 공연은 세계 최초라고 볼 수 있으니, 이어령 선생님과 최은석 대표의 창조적 열정과 혜안에 다시 한번 대단함을 느낀다.

2010년 광화문 아트홀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디지로그 사물놀이’는 김덕수패 사물놀이 공연에 홀로그램이 함께 나타나 3D 안경이라는 보조장치 없이도 눈앞에서 홀로그램의 입체감을 실제라고 착각할 정도로 느낄 수 있는 최초의 4D 공연이다. 관람객은 3D 입체 안경을 쓰지 않고도 입체 영상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몰입감을 느낄 수 있으며, 홀로그램 무대에서는 가상의 김덕수 선생님 3분과 실제 김덕수 선생님이 사물놀이를 공연하는 특별한 장면도 연출할 수 있었다.
10여년전 '디지로그 공연'을 그렸던 이어령 선생의 혜안
이어령 선생님이 언급하신 내용을 인용하여 공연에 대해 좀 더 설명을 하면, “외국의 3D 기술보다 더 진보한 형태가 있었다. 2010년 내가 대본을 쓰고 무대에 올린 '디지로그 사물놀이 죽은 나무 꽃피우기'가 그것이다. 이는 홀로그램으로 만든 입체영상과 실제 공간이 함께하는 4D 현실의 탄생 서곡이다.

중국와 일본에는 없는 우리 고유의 사물놀이는 징, 꽹과리, 장구, 북으로 이루어진다. 2개의 가죽과 2개의 금속, 유기물과 무기물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4가지 악기는 각각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한다. 그 4가지가 어울리는 장이 바로 사물놀이다. 명곡인 '비발디의 사계'조차 사계절을 각각 따로 표현하지만, 우리의 사물놀이는 4계절이 한꺼번에 서로 얽히면서 어울리는 우주적인 울림을 들려준다.”(출처: 한국인 이야기, 너 어떻게 살래, 이어령 저)

그리고, 개인적으로 공연 제작 과정에서 “미래에는 낙도에 있는 어린이들이 가상의 공간에서 김덕수와 사물놀이를 함께 하게 될 것이고, 이는 문화적 평등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라는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과 “관람객들은 내 이마에 맺힌 땀방울과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할 때 보이는 팔뚝의 핏줄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김덕수 선생님의 말씀 등을 들으며,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융합된 새로운 문화 콘텐츠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디지로그 사물놀이는 이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에서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선보여 큰 찬사를 받았지만 이후 상업적 공연사업으로 이어지지 못해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후 K팝 홀로그램 공연 및 메타버스 K팝 콘서트로 이어지면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된 한국의 새로운 문화 콘텐츠 장르를 만들어 나가는 데 큰 초석이 되었다고 본다.
10여년전 '디지로그 공연'을 그렸던 이어령 선생의 혜안
(빅뱅 홀로그램 공연)

마지막으로, 이어령 선생님의 글을 한번 더 인용하며, 앞으로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전할 새로운 문화 콘텐츠가 많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따뜻한 가슴의 인(仁)을 가진 한국인이, 세계 어느 국민보다 넘치는 창의력을 가진 한국인이 세상을 앞서가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6년《디지로그》에서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두고 보라.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대립하는 두 세계를 균형 있게 조화시켜 통합하는 한국인의 디지로그 파워가 미래를 이끌어갈 날이 우리 눈앞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출처: 한국인 이야기, 너 어떻게 살래, 이어령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