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마고 로비, 아메리카 페레라, 그레타 거윅 감독이 3일 오전 서울 당주동 스탠포드호텔에서 열린 영화 '바비'(감독 그레타 거윅) 내한 기자회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배우 마고 로비, 아메리카 페레라, 그레타 거윅 감독이 3일 오전 서울 당주동 스탠포드호텔에서 열린 영화 '바비'(감독 그레타 거윅) 내한 기자회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영화 '바비'가 중국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여성 인권,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를 재점화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3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오프닝부터 "페미니즘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바비'가 여성 인권에 대한 중국 사회의 낮은 관심이나 관용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과 관련한 화두를 던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시진핑 주석 체제 이후 중국 최고지도부에서 여성이 사라지며 중국의 성평등이 퇴보했다는 비판이 불거지는 상황인 만큼 '바비'를 둘러싼 담론에 이목이 쏠리는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 지도부인 중앙정치국(총 24명)은 전원 남성으로 꾸려졌다. 중앙정치국이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 건 25년 만에 처음이다. 중앙정치국은 1987년부터 1997년을 제외하고는 항상 1명 이상의 여성 위원을 뒀지만 시 주석의 1인 체제가 공고화된 20기 중앙정치국에서 이는 깨졌다.

이를 두고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지난 5월 중국 내 여성 인권에 대한 보고서에서 "최고지도부에 여성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28일 기준 '바비'의 중국 내 매출은 1억400만위안(약 250억원)을 기록 중이다. 이는 올해 1월 약 4년 만에 중국 땅을 밟은 마블 영화 '블랙 팬서:와칸다 포에버'의 1억600만위안(약 189억원)을 뛰어넘는 수치다.

북미에 이어 중국에서도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바비'는 인형들만의 세계인 '바비랜드'를 떠난 바비(마고 로비 분)가 인간 세상으로 나오며 겪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뭐든 할 수 있는 바비'와 '그냥 켄'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뿐 아니라 '페미니즘 영화'라고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다.

남성 중심의 사회와 성차별에 대한 풍자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몇몇 중국의 남성 관객들은 짜증을 내며 상영관을 빠져나왔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중국 남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스포츠 사이트 후푸에서는 3500여명이 참여한 '바비' 평점이 10점 만점에 5.6점이었다. 하지만 중국 내 최대 영화 사이트 더우반에서는 28만명이 참여한 '바비' 평점에서 10점 만점에 8.5점으로, 동시간대 영화 중 최고 평점을 기록했다.

중국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 선구자로 불리는 방송 작가 저우샤오쉬안은 SCMP에 "모든 소녀가 친구와 함께 극장에 가서 '바비'에 대해 논할 수 있다"며 "'바비'는 온전히 페미니즘에 관한 영화가 아니지만 중국에서는 매우 의미가 있다. 모든 극장이 페미니즘을 위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저우샤오쉬안은 2014년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유명 진행자 주쥔이 강제로 입맞춤했다는 사실을 2018년 폭로하고 그를 고소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법원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2021년 9월 해당 사건을 기각했고, 이후 그와 지지자들의 웨이보 계정은 삭제되거나 정지됐다.

중국 인기 팟캐스트 진행자 장즈치는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더 통찰력 있고 선구적인 영화들이 있지만 그 영화들은 일반 관객을 위한 상업 영화가 아니다"면서 '바비'가 더욱 폭넓은 계층의 관객에게 닿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