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비롯해 주요 4개 부문을 석권함으로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흥분과 놀라움에 빠졌던 순간을 우리는 기억한다.

자국 영화와 영어권 작품만을 수상작으로 선정하던 관행을 깨고, 할리우드가 비영어권과 다른 문화권에 공개적으로 문을 열고 포용을 선언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최근 아카데미 역사를 돌아볼 때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사실 지난 15년 동안 다섯 번이나 외국인 감독이 감독상 부문에서 수상할 정도로 새로운 흐름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 다섯 명 중에 무려 세 명이 멕시코 출신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Alejandro González Iñárritu), 그리고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ón) 감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또한, 이 세 명 모두는 감독상 외에도 자신이 연출한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의 수상작이 되는 기쁨과 영광을 맛보았다. 또 할리우드라는 바람을 타고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알려지며 세계적 감독 명단에 이들의 이름이 올라있다. 참고로, 2019년 세계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칸영화제에서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당시 심사위원장이 다름 아닌 바로 이냐리투 감독이었으며, 그가 <기생충>을 수상작으로 강력하게 밀었다는 후문이다.
할리우드를 정복한 '멕시코의 세 친구'
어느 순간부터 할리우드와 세계 영화계에서는 이들을 일명 ‘멕시코의 세 친구(Three Mexican Amigos)’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들을 영어와 스페인어가 합성된 의미인 ‘세 친구’로 부르게 된 이유는 이 세 감독이 국적뿐 아니라 연령대가 비슷한데다 실제로도 활발히 교류하는 친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모두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도 초반에 멕시코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미국과 유럽에 진출하여 국제적 스타감독으로 발돋움하였다.

멕시코를 비롯하여 라틴아메리카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이 가속화되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책으로 인해 자국 영화 제작에 관한 국가의 지원이 사실상 중단되었고, 그 이래로 국내의 영화산업은 침체 일로를 걷게 된다.

반면, 한국은 조금 다른 경로를 밟았다. 영화인들의 강력한 연대를 통해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을 벌인 결과 정부의 직·간접적인 지원이 계속되었고, 이후 국산 제작영화 점유율이 상승하였으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영화와 미디어 산업은 부흥을 맞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없었던 멕시코 감독들은 다른 방식을 모색해야 했다. 이들은 영화제작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해외에 눈을 돌렸으며,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투자금의 일부, 혹은 전체를 확보하는 방식인 초국가적 협업을 새로운 제작모델로서 삼았다. 공동제작의 방식으로 멕시코에서 영화를 만들던 이 세 명의 감독은 해외제작사와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다양한 해외영화제를 통해 자신들의 영화를 소개되면서 국제적인 조명을 받게되었다.

첫 번째 주자는 델 토로 감독이다. 어릴 적부터 판타지와 동화, 호러, 괴수 등 소위 B급영화의 열렬한 팬이었던 그는 멕시코에서는 드물게 비인간 생명체를 등장시키는 영화를 만들었고, 장르영화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할리우드에 픽업되어 <블레이드 II>(2002)와 <헬보이>(2004) 등을 연출하였다. 그러다 다시 멕시코로 돌아와 멕시코 혁명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영화를 기획했다가 좌절되자, 스페인 자본으로 스페인 내전 과정에서 어린 소녀의 시선으로 전체주의를 고발한 영화 <판의 미로>(2006)를 만들었고 이 영화는 판타지 장르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델 토로는 여러 영화 형식과 스타일을 뒤섞어 기괴하면서도 창조적인 자신만의 델 토로표 장르를 창조했는데 이는 <퍼시픽 림>(2013)과 <크림슨 파크>(2015)에 이어, <세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에서 정점에 달하게 된다. 아마존 괴생물체와 여성 인간의 사랑을 환상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한 이 영화를 통해 델 토로는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을 비롯하여, 그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미술상, 음악상을 거머쥐게 된다. 이후에도 명작 동화를 재해석한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2022)를 내놓았으며, 현재는 고전 <프랑켄슈타인>을 리메이크하는 등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할리우드를 정복한 '멕시코의 세 친구'
본래 상업광고 감독 출신인 이냐리투 ―우리에게는 ‘이냐리투’로 알려져 있지만, 본래 성은 ‘곤살레스 이냐리투’다―는 2000년 그의 첫 작품인 <아모레스 페로스>를 발표하였다. ‘개같은 사랑’을 의미하는 이 작품은 실험적인 형식과 독특한 촬영기법을 사용하여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멕시코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그려냄으로써 국내외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이후 이냐리투는 바로 미국에 진출한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주류인 대작상업영화 시스템으로 편입되는 대신 멕시코에서 작업하던 제작진과 함께 독립영화 격인 <21그램>(2003)을 발표하였고 비평적·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2006년에는 이냐리투 팀은 야심찬 기획 하에 네 개의 대륙을 배경으로 여섯 개의 언어가 작품 속에 등장시켜 세계화된 현대 사회의 소통에 대해 논하는 영화 <바벨>을 만들었다.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가르시아 베르날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2007년 아카데미 7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나 결과적으로는 철저하게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역시 할리우드의 예술영화 계열로 2015년 발표된 <버드맨>이 아카데미 작품, 감독, 각본상을 휩쓸면서 이냐리투는 그해 아카데미의 주인공이 되었다. 바로 그다음 해에도 그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와 함께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이 영화는 12개 부문에서 후보작으로 지명되었고 이냐리투는 다시 한 번 감독상에 호명되었다. 그는 역대 세 번째이자 65년 만에 감독상 2년 연속 수상자가 된 감독으로 기록된다. 할리우드에서의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가 미국에서만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다. 2010년에는 스페인 제작자와 함께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한 <비우티풀>을 만들었고, 2022년에는 멕시코로 돌아와 넷플릭스와 만든 자기풍자 영화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를 선보이면서 자신의 영화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할리우드를 정복한 '멕시코의 세 친구'
한편, 알폰소 쿠아론은 가장 할리우드 친화적인 감독이라 할 수 있다. 멕시코 중산층의 위기를 해부한 2001년 영화 <이 투 마마>는 이냐리투의 <아모레스 페로스>와 같이 엄청난 국제적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멕시코 내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발판으로 미국 영화계에 발탁되었다. 쿠아론은 자신의 작품을 구현하기보다는 주로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이미 기획된 영화에 고용된 감독으로 활동하였다. 2004년에는 해리포터 시리즈 1,2편을 이어받아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연출하여 블록버스터 감독이 되었으며, 2006년에는 SF영화 <칠드런 오브 맨>을 감독하여 비평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2013년에는 조지 클루니와 산드라 블록이 주연한 우주 유영 영화 <그래비티>를 연출하였고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편집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다 그는 멕시코로 돌아와 넷플릭스의 자본을 통해 <로마>(2018)를 만들게 된다. 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감독의 유년 시절인 1970년대의 기억을 통해 멕시코 여성들의 역사를 복원한 영화로, 제작을 전후헤 영화 내부적·외부적 측면 모두에서 화제를 모았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상의 주요 부문의 후보로 선정되면서 극장 상영이 전제되지 않는 OTT 제작 영화에 대한 격렬한 찬반 논쟁이 제기되었다. 그와는 별개로 작품 자체는 거의 만장일치격의 찬사를 받았고 결국 그해 아카데미에서 외국어영화상, 감독상, 촬영상을 수상하게 된다.
할리우드를 정복한 '멕시코의 세 친구'
이제 델 토로, 이냐리투, 쿠아론은 명실공히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들이 제안하는 영화 기획을 수락하지 않을 할리우드 제작자는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1960년대 출생인 이 세 감독은 공통적으로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블록버스터를 연출하는 동시에 예술영화 또는 작가주의 영화를 제작, 감독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델 토로는 이미 ‘판타지 영화’의 전 세계적 거장이 되었고, 쿠아론은 할리우드 대작 영화에서 익숙하지 않은 카메라 워크와 미학을 선보여 대작 영화의 스타일을 변화시켰다. 이냐리투는 작가주의 영화를 상업적 제작 방식과 접목하여 예술영화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할리우드에 완전히 정착한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출신을 잊은 것도 아니다. 이들은 여전히 멕시코 영화인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할리우드에서 큰 성공을 거둔 후에도 멕시코로 돌아와 스페인어로 된 영화를 만들기도 하며, 멕시코 영화 산업의 생존을 위해 제작자로 나서거나 멕시코 영화를 홍보하고 독립영화를 돕고 있다. 또한, 이들은 서로 절친이라는 사실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수상소감으로 다른 두 친구를 언급하기도 하고, 여러 세계 영화제에 함께 몰려다니며 우정을 과시한다. 마리아치 악단을 불러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며 서로의 유대를 강화하는 ‘멕시코적’ 방식으로 이 세친구는 세계 영화계에 멕시코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