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동 칼럼] 이번에도 재난 책임자 처벌만 하고 말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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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살 아파트' 무량판 부실 시공
삼풍백화점 참사 벌써 잊었나
반복되는 재난에서 교훈 못얻고
책임자 처벌에 급급
재난은 정권을 가리지 않아
정치적, 정쟁적 구호 대신
재난예방백서 만들어 대비해야
서화동 논설위원
삼풍백화점 참사 벌써 잊었나
반복되는 재난에서 교훈 못얻고
책임자 처벌에 급급
재난은 정권을 가리지 않아
정치적, 정쟁적 구호 대신
재난예방백서 만들어 대비해야
서화동 논설위원
‘제 눈의 들보부터 빼라’고 할 때 들보는 건축물에서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 위를 가로지르는 수평 부재다. 수직으로 전달되는 건물의 무게를 수평으로 분산시켜 기둥이 하중을 잘 견딜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보 두께만큼 각 층의 높이가 높아져 공간 효율성은 떨어진다. 이런 단점을 개선한 것이 보 없이 기둥 위에 바로 슬래브를 얹는 무량판(無梁板) 구조다. 공간 효율은 좋지만 기둥에 모든 하중이 집중되기 때문에 적절한 보강 조치를 하지 않으면 기둥이 슬래브를 뚫어버릴 수 있는 것은 치명적 리스크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른바 ‘순살 아파트’ 지하주차장도 보강 조치 없이 시공한 무량판 구조 때문이다. 기둥 위에 일정 넓이의 지판을 얹고 철근으로 촘촘히 보강해 하중을 분산해줘야 하는데 핵심 부재인 철근을 빼고 기둥만 세웠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부실한 무량판 구조가 문제가 된 게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은 더 큰 문제다. 1995년 6월 대붕괴 참사로 502명이 사망하고 900여 명이 다친 삼풍백화점이 바로 무량판 구조로 지은 건물이었다. 설계상으로는 기둥과 슬래브 사이에 하중을 분산하는 지판이 있어야 했지만 실제는 지판 두께가 얇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보강 처리가 안 된 무량판 구조에 설계보다 많은 하중이 가해지니 슬래브가 견뎠겠나. 이 사고 이후 건축계에선 무량판 구조 기피 현상까지 있었다는데, 아파트 지하주차장 공사에 이 공법을 적용하면서 과거의 참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면 사고는 예약된 거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설계, 시공, 감리 등 공사 전 분야에서 부실이 드러났다니 두말할 것도 없다.
지난 수십 년의 대형 재난을 돌아보면 특징이 있다. 많은 경우 반복되는 재난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는 사실이다. 1993년 1월 76명의 사상자를 낸 청주 우암상가아파트 붕괴,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이듬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그렇고, 2014년 장성 요양병원 화재(21명 사망),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29명 사망),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47명 사망)가 그렇다. 2008년 1월의 이천 냉동창고 화재(40명 사망)와 그해 12월 서이천 물류창고 화재(8명 사망), 2020년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38명 사망)는 또 어떤가. 탑승객 362명 중 292명이 사망한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의 교훈을 무겁게 되새기고 선박 안전을 강화했더라면 299명이 희생된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각종 재난·재해를 예방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건 헌법이 정한 국가의 의무다. 그런데도 막상 겪고 보면 국가의 역할은 언제나 미흡하다. 원인과 대처 과정을 따져보면 늘 담당 공무원의 무사안일과 무대책이 피해를 키운 것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대형 재난의 책임자를 가려내고 처벌하는 일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물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그 과정이 지난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재발 방지 대책이 뒤로 밀리고 잊힌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참사와 재난을 정쟁 소재로 이용하는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여야는 지난해 서울 물난리 이후 도시하천유역 침수피해방지대책법(도시침수법) 제정안 등 수해 예방·지원법을 경쟁적으로 발의했다. 하지만 물난리가 지나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법안들은 잊혀졌다. 지난달 전국을 덮친 물난리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고서야 여야는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법안들을 이달 중 부랴부랴 처리하기로 했다.
재난은 정권을 가리지 않는다. 재난 대처를 놓고 공수만 바뀔 뿐이다. 세월호 참사 때 수세에 몰려 정권까지 내줬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밀양 세종병원 화재가 일어나자 문재인 정부의 재난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권이 바뀌자 이태원 참사, 오송지하차도 참사 등을 계기로 공수가 다시 교대된 형국이다. 지금까지 재난을 정쟁화해서 달라진 건 없다. 일벌(一罰)만 있고 백계(百戒)의 효과는 부족했다. 검경 수사보다 딱히 더 밝힌 것도 없는 세월호 사고 원인 규명에 들인 그 많은 시간과 돈과 관심과 에너지를 각종 재난방지 대책 마련에 썼더라면 어땠을까. 정치적·정쟁적 구호 대신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재난에 대한 국민 모두의 지식과 지혜, 상상력을 총동원해 예방백서를 만들고 대비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이젠 달라져야 한다.
부실한 무량판 구조가 문제가 된 게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은 더 큰 문제다. 1995년 6월 대붕괴 참사로 502명이 사망하고 900여 명이 다친 삼풍백화점이 바로 무량판 구조로 지은 건물이었다. 설계상으로는 기둥과 슬래브 사이에 하중을 분산하는 지판이 있어야 했지만 실제는 지판 두께가 얇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보강 처리가 안 된 무량판 구조에 설계보다 많은 하중이 가해지니 슬래브가 견뎠겠나. 이 사고 이후 건축계에선 무량판 구조 기피 현상까지 있었다는데, 아파트 지하주차장 공사에 이 공법을 적용하면서 과거의 참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면 사고는 예약된 거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설계, 시공, 감리 등 공사 전 분야에서 부실이 드러났다니 두말할 것도 없다.
지난 수십 년의 대형 재난을 돌아보면 특징이 있다. 많은 경우 반복되는 재난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는 사실이다. 1993년 1월 76명의 사상자를 낸 청주 우암상가아파트 붕괴,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이듬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그렇고, 2014년 장성 요양병원 화재(21명 사망),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29명 사망),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47명 사망)가 그렇다. 2008년 1월의 이천 냉동창고 화재(40명 사망)와 그해 12월 서이천 물류창고 화재(8명 사망), 2020년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38명 사망)는 또 어떤가. 탑승객 362명 중 292명이 사망한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의 교훈을 무겁게 되새기고 선박 안전을 강화했더라면 299명이 희생된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각종 재난·재해를 예방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건 헌법이 정한 국가의 의무다. 그런데도 막상 겪고 보면 국가의 역할은 언제나 미흡하다. 원인과 대처 과정을 따져보면 늘 담당 공무원의 무사안일과 무대책이 피해를 키운 것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대형 재난의 책임자를 가려내고 처벌하는 일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물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그 과정이 지난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재발 방지 대책이 뒤로 밀리고 잊힌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참사와 재난을 정쟁 소재로 이용하는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여야는 지난해 서울 물난리 이후 도시하천유역 침수피해방지대책법(도시침수법) 제정안 등 수해 예방·지원법을 경쟁적으로 발의했다. 하지만 물난리가 지나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법안들은 잊혀졌다. 지난달 전국을 덮친 물난리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고서야 여야는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법안들을 이달 중 부랴부랴 처리하기로 했다.
재난은 정권을 가리지 않는다. 재난 대처를 놓고 공수만 바뀔 뿐이다. 세월호 참사 때 수세에 몰려 정권까지 내줬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밀양 세종병원 화재가 일어나자 문재인 정부의 재난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권이 바뀌자 이태원 참사, 오송지하차도 참사 등을 계기로 공수가 다시 교대된 형국이다. 지금까지 재난을 정쟁화해서 달라진 건 없다. 일벌(一罰)만 있고 백계(百戒)의 효과는 부족했다. 검경 수사보다 딱히 더 밝힌 것도 없는 세월호 사고 원인 규명에 들인 그 많은 시간과 돈과 관심과 에너지를 각종 재난방지 대책 마련에 썼더라면 어땠을까. 정치적·정쟁적 구호 대신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재난에 대한 국민 모두의 지식과 지혜, 상상력을 총동원해 예방백서를 만들고 대비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이젠 달라져야 한다.